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바람 Mar 14. 2024

살다보면

영화 '서편제'를 떠올리게 한 가수


오래전이었다.

청산도를 여행하게 되었다. 꽤 오래전 일이었다. 찾아보니 2010년 4월 초순이었다. 청산도라는 섬은 육지로 갈 수 있는 전남 끝까지 가서 다시 배를 타고 꽤나 들어가야 하는 섬이다. 그 먼 길을 달려가고 다시 거기서 배를 타고서까지 그 섬에 가고자 했던 것은 바로 영화 '서편제' 때문이었다. 서편제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당시 롱테이크로 한국 기네스에 오를 정도였다.)이었던 세 주인공의 진도아리랑 장면을 촬영한 곳이 바로 청산도에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서먹하던 세 주인공이 함께 어우러져 진도아리랑으로 한 판 놀고 사라진 그 길에 당도했을 때 영화에 흘렀던 잔잔한 배경 음악들이 절로 떠올랐다. 


영화 서편제는……

대학 시절에 과제를 하기 위해 처음 접했던 영화였고 그 이후에도 몇 차례가 다시 보았던 영화이다. 철 모르던 시절에 보았던 영화였고, 그 잔잔함과 지난함에 숨 막혔던 영화였고,  대체 恨이란 것이 무엇이길래 이리도 허망하고 알 수 없는 결말을 내었을까 의심했던 영화였다. 그리고 음악이 있었다. 소리꾼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니만큼 민요와 판소리가 영화에 정말 많이 나온다. 그리고 판소리의 그 구구절절한 소리와 내용은 영화의 스토리와 어우러져 함께 간다고 할 만큼 영화라는 하나의 장르로 일체가 되었다. 또 배경으로 깔리는 음악감독 김수철 님의 창작음악 또한 뇌리에 남았다. 그 잔잔하고 구슬픈 음악의 흐름은 어느덧 내 귀와 머리에 계속 흐르게 되었었다.


음악이 주는 힘이 있다. 

누구나 한번쯤 경험한 적이 있겠지만, 어느 날 문득 익숙하게 들었던 노래의 가사가 마치 나의 이야기인 것처럼 내 가슴을 치며 다가왔던 기억, 또 어떨 때는 처음 듣는 노래가 가슴 미어지는 옛 기억을 떠올리게 했던 기억, 그리고 또 어떨 때는 무심코 들었던 한 멜로디가 하루 종일 내 입가를 맴돌며 떠나지 않던 기억 등 ……. 그래서 음악은 힘이 있다. 비단 음악만의 이야기는 아닐 게다. 영화도 그렇고 문학도 그렇고 미술도 그렇다. 그래서 예술은 정서적인 에너지를 공유하며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음악 프로그램을 즐겨 보던 나에게 3년 전쯤 나타난 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직 빛을 보지 못한, 혹은 이제는 잊혀져 가는 가수들에게 다시 한번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숨은 실력자들의 음악을 감상하며 심사위원이나 진행자마저 출연하는 가수들과 따숩게 동기화되는 보기 드문 경연 프로그램이었다. 경쟁을 기본으로 하는 경연에서 냉혹함과 차가움은 돌려 세우고, 그 자리에 응원과 따뜻함이 스며들게 하는 참으로 신기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음악적 즐거움과 따뜻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기분 좋은 충격을 주었던 프로그램이다. 


다시 서편제를 떠오르게 한 무대가 나타났다. 

시즌1이 끝난 지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지금 되돌아보았을 때 가장 떠오르는 무대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단연 이소정 가수님의 "살다보면"이라는 무대이다. 물론 우승자, 준우승자 등 숱한 무대와 가수들이 있지만 가장 뇌리에, 가슴에 깊게 박힌 무대는 바로 그 무대였다. 원곡이 뮤지컬 서편제에서 차지연 가수님이 부른 OST이기도 했지만, 이소정 가수님이 싱어게인 무대에서 노래하는 그 모습은 자연스레 영화 서편제의 '송화'를 떠올리게 했다.


그 느낌이 달랐다.

한동안 영화 '서편제'도, 거기에 흘렀던 많은 음악들도, 그리고 배경이 되었던 청산도도 다 잊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걸 한 번에 되살려 준 것이 바로 이소정 가수님의 그 무대였다. 가녀린 모습이지만 단단한 무언가가 채워져 있는 듯한 그 모습으로 내면에 있던 모든 것을 끌어내어 쏟아내는 듯한 그 모습이 영화 속의 '송화'와 너무도 닮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느낌이 조금 달랐다. 영화를 처음 접한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고 나 또한 그만큼의 세월을 겪으며 살아오다 보니 그 영화에 담긴 정서를 이제는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고 할까. 한 사람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라고 한다는데 우주만큼 거대하고 숱한 사연들이 가슴 이곳저곳에 박혀있는 채로 그저 현실의 삶을 또 살아가야 하는 사람. 자신의 한을 다치지 않으면서도 그 한을 넘어서려 애쓰고, 알지 못하는 어느 순간에 기어이 경지에 다다르게 되는 삶. 그리고 그런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의 정서. 이제 그런 정서를 다 느끼지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나이가 되었다. 


2021년에 다시 만난 '송화'

그런데 바로 그 정서를 싱어게인에 나온 이소정 가수님에게서 보게 된 것이었다. 자신의 생일날, 스케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빗길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멤버들을 잃은 충격, 그리고 그로 인한 고통, 슬픔조차 사치처럼 느껴졌을 자책감과 절망… 그리고 여러 해를 지나 홀로서기를 위해 다시 마이크를 잡고 무대에 올랐지만 온몸이 떨리는 모습으로 공연을 해야 했던 첫 무대… 그리고 기어이 자신의 이야기로 만들어 전달하는 '살다보면' 무대……. 모든 걸 토해낸 무대 끝에 잠시 흐른 정적과 심사위원들의 따뜻한 감상평이 흐르는 동안 김수철 음악감독의 서편제 OST '천년학'이 흐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소리는 영화 서편제의 마지막에 오랜 시간 애타게 찾던 동생 '동호'의 북장단에 '송화'의 소리가 만나 한껏 어우러지는 장면을 떠오르게 했다.


그저 살다보면 살아진다.

'살다보면'이라는 노래의 가사에는 "그저 살다보면 살아진다."라는 가사가 있다. 그 가사를 마음으로 부르는 이소정 가수, 그리고 뮤지컬 서편제에서 복잡 미묘한 감정으로 노래하며 연기한 차지연 배우, 궁극적으로 영화 서편제에서 그 가사를 온몸으로 연기한 극 중 '송화', 이들을 모두 하나로 이어주는 가사가 아닌가 한다. 이루 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쌓여버린 말 못 할 사연들을 음악이라는 장치를 빌려 풀어내는 모습은 그 인물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어딘지 모르게 느껴지는 공감을 만들어 내었다. 


어쩌면……

언어가 사고를 지배하기도 한다는 말이 있다. 어릴 적부터 듣고 배우며 세월을 살아온 恨이라는 말은 같은 한자 문화권인 중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제대로 된 번역을 해가지 못할 만큼 우리만의 독특한 정서이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우리의 마음속 한 편에 조용히 자리를 잡아가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어쩌면 그래서 "그저 살다보면 살아진다."는 노랫말은 우리에게 무척이나 보편적으로 다가올 있는 말이 되는 건 아닐까.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우주만큼의 사연을 지니고 산다. 그래서 삶의 무게에 숨조차 쉬이 쉴 수 없는 사람들에게 굳이 철학자나 심리학자의 분석이 아니라도 그저 세상을 조금 오래 살아온 사람들이 지나온 삶에서 깨달은 것이 바로 '그저 살다보면 살아진다'는 말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이소정 가수를 응원합니다~!





살다보면 가사


                                    서편제 OST Part 1 차지연


혼자라 슬퍼하진 않아

돌아가신 엄마 말하길 그저 살다보면 살아진다

그 말 무슨 뜻인진 몰라도 기분이 좋아지는 주문 같아

너도 해봐 눈을 감고 중얼거려

그저 살다보면 살아진다

그저 살다보면 살아진다

눈을 감고 바람을 느껴봐

엄마가 쓰다듬던 손길이야

멀리 보고 소리를 질러봐

아픈 내 마음 멀리 날아가네

소리는 함께 놀던 놀이 돌아가신 엄마 소리는

너도 해봐 눈을 감고 소릴 질러

그저 살다보면 살아진다

그저 살다보면 살아진다

눈을 감고 바람을 느껴봐

엄마가 쓰다듬던 손길이야

멀리 보고 소리를 질러봐

아픈 내 마음 멀리 날아가네

----------------------------------


영화 서편제의  '진도아리랑' 장면 _청산도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