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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바람 Jun 27. 2022

침묵의 자유

  운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차를 손수 운전하며 이리저리 도로가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차와 함께 카메라를 들고 나다닌다. 운전을 하며 좋아하는 것이 또 음악을 듣는 것이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거대한 풍경의 흐름은 TV나 영화에 나오는, 화면을 통해 전달되는 그것들과는 확연히 다르고, 그런 풍경의 흐름에 음악 한 조각 얹어주면 그 맛이 참 좋다. 더구나 마침 흘러나오는 음악이 그 풍경과 딱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 되면 풍경도 마치 음률처럼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건지(아니면 기억력이 현저히 나빠서 그런건지...) 수십 번을 들은 음악도 그 가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는 제목도 기억하지 못하고 차에 있는 모니터를 흘끗 봐야하는 경우도 흔하다.


  어느 날 출근길... USB에 담아둔 여러 음악들 중에 조용한 피아노곡이 듣고 싶어 이루마의 음악 폴더를 찾아 듣기 시작했다. 여러 곡들이 흘렀고 마침 신호에 걸려 차가 멈추었다. 들리는 그 음악이 너무 좋아 제목을 보려고 창을 보았는데... "time forgets....mp3"

   순간, "뭐지~?" 했다.


  그랬다. forgets 뒤에 이어진 세 개의 점은 말줄임표임에 틀림없었다. 우리말 맞춤법에선 말줄임표를 칸 중앙에 쓰게 되어있지만 이게 웹상에서 구현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마침표 셋을 연달아 쓴 것이다. 혹시나 싶어 인터넷에서 곡정보를 검색해봤더니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다보니 확장자 mp3 앞의 점과 같아져서 점 넷이 된 것이었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말줄임표를 쓰기가 더 어려워진 것이었다.

  말줄임표를 쓰기 어려워진 것은 디지털시대가 된 후 타이핑을 하면서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무언가 대답을 하기 곤란하거나, 혹은 고민이 깊어 즉각적인 대답이 나오지 않거나, 그리고 또 혹은 굳이 대답하고 싶지 않아 침묵하고 싶을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말을 줄이게 된다. 하지만 듣는 이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자꾸 정확한 대답을 듣고 싶어하고, 대답을 강요하고, 침묵을 용인하지 않는다. 빨리빨리를 외치는 이 세상에서 기다림이라는 것은 악이고 불편함이고 무능력함으로 간주된다. 상대방의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지 않음을 탓하게 된다. 그래서 침묵은 쉽게 사용되지 못한다. 말줄임표를 사용하기가 불편해진 것이다.


  생각해보니 어느 순간 우리는 경쟁이 당연한 것이며 공정한 것이라고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세상의 속도에 발맞추지 못하면 뒤쳐지게 되고 그렇게 뒤쳐지면 실패로 낙인찍히며 그런 사람들의 요구는 묵살되어도 당연한 것이 되고 말았다. 충분히 생각하고 고민한 후에 행동하는 것은 즉각적으로 튀어나가는 것에 비하면 미련하고 굼뜬 것으로 비하되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그러면서 여유를, 여백을, 느림을 찾아다니는 일도 많아졌다는 것이다. 슬로 푸드, 슬로 시티를 찾고 혼자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프라이빗한 공간을 추구하고 있다.

  지쳐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게 아닐까 싶다. 지나친 속도 경쟁에 지쳐 때로는 거기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이렇게 발현되는 게 아닐까 싶다.


  말을 참 순간적으로 재치있게 하고 유머러스한 사람이 대우받는 게 일상이다. 사유가 깊고 말이 많은 사람은 인간관계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말을 잘 하는 법을 따로 검색해서 공부하기도 한다니...


  많은 말을 쏟아내며 주변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조용히 미소지으며 그 말을 듣고 곱씹으며 고개만 끄덕이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때로는 말 많은 이도 입을 꾹 닫고 조용히 있고 싶을 때가 있다. 그리고 또때로는 하고 싶은 말이 가슴에 있으나 끝내 입 밖으로 내뱉지 않고 가슴 속에 그대로 남겨두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침묵의 자유가 있다. 언제든 어디서든 누구와 함께 있든 침묵하고 싶을 때는 말줄임표를 쓸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말줄임표를 불편하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명심하자. 말줄임표는 말이 아직 끝나지 않고 남아있음을 나타내는 표시이기도 하다는 점을~!


여백이 있고 침묵의 자유가 있는 세상에 대한 그리움이 한껏 피어오른 날.

말줄임표를 편하게 쓸 수 있었으면······.

"Time Forgets..."이 아니라 "Time Forgets···"이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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