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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바람 Jun 13. 2022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내며...

살암시라... 살아진다...

끝났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는 이제 보내야 한다.


처음에는 내 고향 제주를 배경으로 하고, 찌~인한 제주 사투리가 자막과 함께 등장하는 재미에 끌려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몇 회만에 이내 불편해졌다. 바로 그 사투리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관심과는 별개로 제주 출신 육지 사람인 나에게도 제주 사투리는 무던히도 거칠고 투박하며 인정머리 없어 보였다. 사실 그냥 섬사람들의 일상 대화임을 알면서도, 그 말투 때문에 늘 싸우는 듯한 느낌을 주는 대화가 너무 불편했다. 내가 그렇게 느낄 정도이니 처음 듣는 사람들이야 오죽했으랴.


그런데 첫회부터 주인공급 배우들이 엑스트라처럼 슬쩍 얼굴만 비치고 사라지는 것이 못내 궁금했고 인물들끼리 얽혀 있는 갈등과 내적 사연들을 어떻게 풀어낼지 기대가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한 동네에서 이리저리 얽혀있는 많은 인물들이 각자 자기 마음 속에 우주만큼 큰 사연들을 갖고 있고 그런 사연들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오해로 얼룩진 상처들을 제각기 가슴 아프게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 섬사람들은 그런 사연들을 쉬이 꺼내놓지를 못한다.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격정적인 상태가 되어서야만 폭발하듯 풀어낸다. 아마도 그 섬사람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그 섬이 갖고 있던 오랜 역사 때문일 것이다. 땅은 거칠어 곡식 농사가 제대로 잘 되지 않았고 바다는 그보다 더 무서워 걸핏하면 사람을 잡아갔다. 하지만 살아야 했다. 살기 위해서 죽음을 무릅쓰고 거친 환경과 맞서싸워야 하는 것이 그 섬의 사람들이 살아온 세월이다. 거기에 걸핏하면 쳐들어오는 외지인들, 그리고 그들의 무차별적인 탄압과 핍박. 그러니 말 한 마디 자유롭게 할 수 없고 편안히 세상을 즐길 수 없었다. 자연과 싸우며 살기 위한 먹거리를 찾아내어야 했고, 외지인을 경계하고 그 사람들과 싸우며 자신과 가족들의 안위를 살펴야 했다. 그런 것들이 그 섬의 사람들을 무뚝뚝하고 거칠고 투박하게 만들었으리라. 그래서 가까운 이들에게 더 큰 상처를 주게 되었을 것이다. 가까운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그 가까움 탓에 더 깊은 곳을 찔려 그만큼 더 아프기 마련이다. 그런데 거칠기까지 하니 오죽했으랴. 하지만 누구도 상처받은 이의 아픔을 제대로 잘 이해하지 못한다. 각자의 아픔 탓에 가까운 이의 아픔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고, 표현해야할 것들을 안으로 안으로 삭이며 묵혀놓기만 하는 탓에 갈등을 풀어내고 화해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간절히 화해를 원했음에도 말이다. 가장 극적인 상황에 몰리고 나서야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한다. 하지만 이미 그때는 늦었다.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뒤늦게 깨닫게 된다.


제주를 흔히 아름다운 섬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제주는 살기 좋은 섬은 결코 아니었다.

이 드라마는 그런 섬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거친 이야기이고 그들의 블루스를 담은 이야기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는 제주 사람들의 거칠고 투박한 표현방식을 드라마는 너무나도 잘 담아내었다. 이렇게까지 시나리오를 쓴 노희경 작가님에게 무한 존경의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제주 사람들의 말투와 생활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섬생활을 하며 그들의 삶에 쌓인 내면까지 정말 잘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엄청난 정성과 시간을 들여 깊이 있는 취재를 했을 거라는 짐작이 간다. 게다가 연결된 옴니버스 방식을 통해서 주인공을 따로 설정하지 않고 이 섬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각자 모두 제 삶의 주인공으로 만들었고, 그 각각의 주인공들의 삶에 기승전결을 만들어 준 것은 이런 우주만큼 큰 사연들을 가슴에 품고 사는 일이 어느 한둘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는 일임을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지금은 돌아가신 외할머니생전에 이런 말을 종종 했었다. "살암시라... 살아진다..."

 

거친 환경과 역사만큼이나 거칠게 사는 그 섬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금껏 이렇게 잘 풀어낸 작품은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섬 사람들 사이에서도 사랑은 있고 애정은 있다. 그것을 작가님은 각각의 에피소드의 마지막에 드러내고 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때문에 행복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이다. 마치 제주 사람이 겨울 한라산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것처럼. 비록 백록담은 보지 못해도 그 힘든 길을 걸으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다.


드라마 마지막회의 엔딩 자막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우리는 이 땅에 괴롭고 불행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오직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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