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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바람 May 17. 2022

앗! 나의 실수

버리지 말고 간직해둘 것~!

  보면 볼수록 어딘가 몰입하게 하는 작품이다. 

  붉은 기운이 사진 위쪽을 평온하게 물들이고 있고 그 아래로는 대비를 보여주려는 듯 검은 색으로 차분히 가라앉아 있다. 그 사이로 하얀 무언가가 흐릿하게 연결되어 있다. 마치 화가가 검은색 바탕 위로 흰색 물감을 옅게 묻힌 붓을 부지런히 터치한 느낌이다. 전체적으로 평온한 느낌의 작품이지만 자칫 너무 단순하거나 지루해질 수 있는 부분을 하얀색 터치가 되살려 오히려 편안한 느낌을 들게 한다. 

  사실 이 작품은 그림이 아니라 사진이다. 그것도 의도하지 않았던 사진이다. 


   해외 여행 중에 일출 사진을 찍으러 나섰던 길이었다. 어슴푸레 밝아오는 창 밖을 보고 카메라를 챙겨 좋아보이는 일출 포인트를 찾아 올라갔다. 이미 동쪽 하늘 언저리로 밝은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여행 중이라 미처 삼각대를 챙기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우선 벽돌과 주변 물건들을 이용해 카메라를 고정할 수 있게 거치대를 급하게 만들었다. 그리곤 구부정한 자세로 셔터를 눌렀다. 바로 "앗!"하고 탄식이 흘렀다. 바로 "찰칵" 소리가 나야할 카메라가 "찰"하고는 "칵"을 안 한다.그리곤 조금 뒤에서야 "칵"소리를 내뱉았다. 어젯밤에 야경을 찍던 그 세팅 그대로 셔터를 눌러버린 것이었다. 실수!! 여지없었다. 사진은 꽤나 흔들렸다. DSLR 카메라의 조그만 액정에 담긴 결과물을 보고 "에이~ 망했네~"라는 탄식이 어쩔 수 없이 새어나왔다. 그리고는 다시 카메라를 단단히 고정시킬 수 있도록 급하게 거치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일출 사진을 위해 조리개와 셔터스피드를 조절하고 화이트밸런스와 색온도까지 다시 제대로 세팅을 했다. 다시 샷! 수평도 안 맞고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렇게 일출사진들을 찍어 나갔다. 그리고 실수한 사진은 그렇게 잊혀져 갔다. 


  여행을 다녀온 지는 이미 5~6년이 지났고 찍은 사진 원본을 모두 보관해 놓는 습관이 있어 가끔 한 번씩 필요한 사진이 있을 때마다 하드 털이를 하곤 한다. 그렇게 어느날 하드 털이를 하다가 다시 저 사진에 눈길이 갔다. 

  분명 실수였다. 세팅 잘못이었고 심지어 많이 흔들리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 사진이 마음에 후욱 하고 들어왔다. 그저 쨍한 사진만을 추구하던 그때... 이런 사진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그러고보니 전문 작가들의 예술 사진에는 일부러 이렇게 흐릿하게 만든 사진들이 있었다.) 실수가 새로운 발견의 초석이 된 셈이었다. 그러고 보니 과학이나 발명 등에서는 어떤 실수가 위대한 발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는데...

  

  실수... 두려워 할 일이 아니다.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다. 많이 실수해봐야 많은 내적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그러니 실수했다고 버리지 말고 마음 한 켠 어딘가에 고이 간직해두어야 한다. 설령 조금 아프더라도... 조금 부끄럽더라도... 조금 안타깝더라도...


  그때의 실수가 지금의 나를 평온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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