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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바람 Aug 30. 2022

사라진 것들의 흔적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한창 사진에 재미를 붙여 시간이 날 때마다 카메라를 들쳐메고 곳곳을 돌아다니곤 했었다. 처음에는 훌륭한 작가들이 멋지게 담아낸, 그래서 잘 알려진 아름다운 비경들을 찾아 그들을 따라 그 풍경들을 담아내며 연습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멋진 풍경보다는 주변의 풍경을 캐치하고 싶어졌고 더 근원적으로는 풍경보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그렇다고 인물사진을 찍고 싶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주변 풍경에 담긴 사람의 이야기를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찾아간 곳이 창신동 재개발 구역이었다. 4호선 혜화역에서 내려 대학로를 끼고 낙산공원까지 걸어 올라가면 그 뒤로 성곽이 보인다. 그리고 그 성곽을 넘어간 곳에 내리막 비탈을 따라 이런 풍경이 있었다.일부 사람이 떠났고 그 집마다 붉은색 락카로 저렇게 번지를 표시해두었다. 하지만 남아 있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리고 마치 곧 없어질지도 모르는 운명을 예감이라도 했는지 새로 바른 시멘트 바닥에 신발과 손바닥으로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리고 아이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새로 칠한 시멘트에 아이들은 꼭 저런 장난을 치곤 한다. 그리곤 나중에 발견한 어른들에게 혼이 나곤 한다. 그런데 이 동네 어른들은 무슨 일인지 저렇게 아이들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 두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이 사는 모습은 바뀌어가기 마련이다. 초가 지붕이었던 그 집에 볏짚 대신 슬레이트를 올리고, 그것도 시간이 흘러 집이 위태로워지면 새롭게 콘크리트 건물로 지어 살고, 자식들이 커가면서 집이 좁아지면 1층 옥상에 또 방을 만들며 이층집으로 바뀌어가고... 할아버지에게서 아버지로, 다시 그 아버지에게서 자식들로 그렇게 오랜 시간을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와 함께 집은 이어져 왔다. 집의 모양이 조금 바뀌고, 동네가 조금 바뀌며 집터도 조금 바뀌기는 해도 그 동네가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곳에서 면면히 흘러 내려오는 것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우리네 모습의 변화이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이 아닌 자본의 힘에 의해 바뀌어 가는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더이상 그곳에 살지 못하게 한다. 오래된 주택들을 헐어 새로이 아파트로 재개발하는 곳에서는 그곳에서 원래 살던 사람들이 재입주 하는 비율이 20%를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대부분은 높은 집값을 감당하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밀려난다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멋진 집에서 살고 싶어하는 욕구를 갖고 살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그 욕구를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작지만 포근한 이야기가 살아있는 공간을 침범해서는 안되는 게 아닐까? 사람이 많은 대도시에서 오히려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은 포근한 이야기가 살아있는 마을들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예전에 히트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그 골목같은 동네 말이다. 지금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지만 예전 그 동네가 자꾸 그리워지는 것은 가난하고 별볼 일 없는 그 낡은 집 자체가 아니라 그곳에 오랜 시간 동안 담뿍 담겨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립기 때문일 것이다.

  집은 사람이 사는 곳이지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다.



최근에 다시 이곳 창신동 주변으로 또 재개발 바람이 불고 있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접했다.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때 만난 그 어르신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어르신의 집 대문 위의 오래된 화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좁은 골목길에 피어났던 나팔꽃은 올해도 또 피었을까?

더위에 지쳐 좁은 골목 그늘을 차지하고 드러누워 있던 누렁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붉은 락카가 칠해진 그 집에 작은 형광등을 켜놓은 아저씨의 자전거는 어떻게 되었을까?


사람 사는 냄새가 한 가득 향기로웠던 그곳.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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