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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바람 Feb 24. 2023

가끔씩 되돌아보기

불국사에서...


사진에 한자로 적혀 있듯이 불국사(佛國寺)에 갔었을 때였다.

아침부터 날은 흐렸고 온 사방에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를 것으로 휘감겨 있었다. 마치 속세와 단절된 불국(佛國)의 형상을 중생들의 세계에서 따로 떼어낸 듯한 모습이었다. 가까이 있는 이 절의 나무들 너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런 날이었다. 


불국사 관람이야 중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에서부터 시작해 여러 차례 했던 것이기에 특별히 새로울 것은 없었다. 다보탑과 석가탑을 찬찬히 둘러보고 대웅전과 여러 부속 건물들, 그리고 특이한 형상의 목조각들(예를 들면 극락전 현판 뒤에 숨어있는 멧돼지 등)에 눈길을 주며 여유롭게 걸음을 옮겼다. 많은 건물들의 내부와 외부, 여러 상징물들을 보며 이 사찰의 의미들을 생각해 보고, 수많은 관광객들 사이로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는 스님들과 보살님들을 보며 주변의 수많은 이목들 속에서 어찌 수양 생활을 이어가고 있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음 건물로 가기 위해 천년은 족히 넘겼을 돌계단들을 힘들게 올랐을 때였다. 아픈 다리도 쉴 겸, 살짝 가쁜 호흡도 가라앉힐 겸 계단을 다 오르고 나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올라온 계단 쪽으로 몸을 되돌이켰을 때 이 사진과 같은 풍경이 나를 맞이했다. 순간, 나와 이 절만이 우주 어디엔가서 뚝 떨어져 나온 느낌이 들었다. 저 푸른 듯 하얀 것들에 둘러싸인 이 공간만이 별도로 존재하는 듯한, 그래서 이 공간이 대체 어떤 공간인지 분간하기 힘든 듯한 느낌이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라는 화두를 현실에서 느끼게끔 하는 풍경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들만을 보고 걸어왔고 그렇게 계단을 올랐다가 그저 뒤를 한 번 돌아봤을 뿐인데 놀라운 풍경이 마치 새로운 세계인 양 내 눈앞에 다시 펼쳐진 것이었다. 


사진을 찍을 때 가끔씩은 걷던 길을 되돌아보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앞을 보며 지나쳤던 풍경이 나를 스쳐 지나간 후에 새롭게 변화되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날도 사진 찍으러 다니면서 나도 모르게 내 몸에 습관처럼 붙어버린 그 행동이 이런 풍경을 만나게 해 준 것이리라. 


제주도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놈이 서울이라는 복잡하고 바쁜 대도시에 와서 오랜 시간을 살다 보니 나 또한 어느덧 도시인이 되었는지 그저 앞만 보고 부지런히 걷고 때로는 뛰는 데 익숙해졌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다가올 알지 못하는 미래를 위해 지금 무언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좌우를 살피며 앞만 보고 부지런히 정진하는 느낌! 이런 것들이 나쁜 것도 아니고, 옳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내 가슴속의 정서는 언제나 그런 것들이 느껴지는 순간 그것들을 힘껏 밀어내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헌데 도시 생활의 흐름에 맞춰 살다 보니 자연스레 나 또한 그리 되었을 것이다. 


내가 분명 보고 걸어온 길인데 되돌아보면 그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풍경들이 새롭게 다시 나타난다. 없었는데 있었고, 있었는데 없어져 있다. 그걸 발견한 나는 순간 멍해지며 빠져들게 된다. 그러면서 알지 못하는 이유로 여유를 느끼게 된다. 


불국사는, 이 절은 이런 풍경으로 나에게 그런 깨달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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