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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바람 Mar 07. 2023

역방향의 멀미

익숙하지 않음에서 오는 고통스러움


꽤나 오래 전 일이다.(대략 15년쯤은 된 듯하다.)

대학시절 친하게 지내던 형이 큰 사고를 당했고 뇌를 다치는 바람에 거의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났다. 목숨을 지키긴 하였으나 이전에 우리가 알던 명석함과 날카로움을 갖춘, 그러면서도 약간의 아재개그를 즐겨하는 그 형으로 되돌아오지는 못했다. 이미 사고로 손상된 뇌는 되살아나지 못했고 그저 해맑은 어린아이가 되고 말았다.


그 형을 만나러 대학 때 친하게 지내던 이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춘천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형은 그 사고 이후 형을 돌봐주는 어머니와 함께 춘천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탓이었다. 대학시절의 느낌대로 청량리역에서 완행 열차를 타고 출발했다. 다소의 그리움과 형을 만나는 기대감과 걱정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열차의 맨 뒤칸으로 걸음을 옮겼다. 열차의 꼬리칸 끝으로는 작은 문이 있었고 굳게 잠겨 있었다. 아마도 다른 열차와 이을 때 통로로 사용되는 문이리라. 그 문의 창 밖으로 풍경과 함께 철길이 빠르게 멀어져가는 풍경이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열차의 진행 방향과는 반대로 내 시선도 그 풍경들도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다.


멀어지는 풍경은 익숙하지 않다. 버스 좌석에 앉아도, 자동차를 운전해도, 비행기를 타도 모두 앞을 향해 우리의 시선은 고정되어 있다. 심지어 우리는 대부분 앞으로 걷지 평소 거꾸로 걷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우리의 눈으로 다가오는 풍경과 달리 멀어지는 풍경은 익숙하지가 않다. 

더욱이 꽤 많은 사람들은 역방향으로 앉게 되면 쉽게 멀미를 하기도 한다. 나도 그렇다. KTX역방향 좌석은 좀 덜한 편이지만 예전의 승합차 뒤칸의 역방향 좌석에 앉으면 여지없이 속이 울렁거리곤 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 과학자들은 이런저런 이유들을 들어 설명한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일상적인 움직임과 감각기관이 느끼는 움직임 사이에서 괴리감이 누적되어 그렇다는 것이다. 즉 익숙하지 않은 정보를 처리하는 뇌가 힘들어한다는 얘기인 듯하다.


춘천에서 형을 만났고 어린 아이가 되어버린 형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넘어서 괴로울 지경이었다. 그래도 형은 대학 시절에 찍어둔 사진을 보며 웃기도 했고, 그 시절 운동가요를 부르면 그 음을 따라 익숙하게 흥얼거리기도 했다. 어머니는 조금씩 과거 기억을 떠올리면서 웃을 때가 있다고 했고, 그런 차원에서 우리들의 방문을 무척 고마워했다. 하지만 나는 익숙하지 않은 형의 모습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실없는 농담을 하며, 가끔씩은 후배 녀석의 뒤통수를 치며 웃으며 혼을 내기도 하고, 한없이 진지한 모습으로 담배 연기 자욱해지도록 치열한 토론을 하던 그 모습은 이미 멀리, 저 멀리 떠나버렸음을 절감했다. 이미 멀어진 그 때의 풍경이 다시 돌아올 수 없음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참으로 힘들고 고통스럽게 다가왔던 것이었다.




멀어지는 풍경은 익숙하지 않다. 

다가오는 풍경은 반갑지만 떠나가는 풍경은 안타깝다. 

때론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떠나보냄은 익숙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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