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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옥 Mar 18. 2020

발가락이 닮았다

코로나19 시국에 호주에서 해산간 하기 1.

"항공권이 취소되었습니다. 여행사에 연락하셔서 환불받으시기 바랍니다."

코로나19로 한국인에 대한 전세계의 입국제한 조치가 확대될 즈음, 3월 3일 호주에 들어왔다. 영어도 짧은데 입국심사에서 질문들을 던지면 어쩌나 잔뜩 긴장하고 왔는데 발열체크 조차 없어 싱거웠다. 한국인 전용 전자여권시스템으로  빠르게 입국장을 빠져나왔고, 수하물검역장에서 만난 호주아저씨들은 welcome 이라며 환한 미소로 맞아주었다.

"애기 낳으면 해산간은 해줄께"라던 오래전 sister와의 약속. 어머니 46세에 낳은 막둥이 시누이는 스물다섯인 내가 결혼했을때 초등학교 2학년생이었다. 아 저친구는 시누이가 아니라 딸이네...

나도 어렸던 나이에 막내 sister는 이렇게 다가왔었다.

세월이 흘러 이십대를 꽉채운 29살에 막차타듯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sister는 호주에 유학와 호텔매니저를 하는 인도남자 만나 재작년 결혼했다. 덕분온 온식구가 인도 뭄바이 결혼여행에 나섰고, 이틀간의 인도 전통혼례와 물리도록 다양한 인도카레와 난을 먹어치웠다.


결혼이 늦은 sister는  아이를 간절히 기다렸고 드디어 지난해 5월 임신소식을 전한다.

지난해  3월 한달 장기근속 휴가를 호주로 다녀온터라 어찌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고민하다 연차 몰아쓰고, 무급휴가까지 더해 3주간의 일정으로 호주행 왕복티켓을 끊었다. 코로나19는 신천지를 중심으로 확산일로 였고, 세계는 한국사람들의 입국을 막았던터라, 하루하루 과연 해산간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조마조마했는데 2월말 호주총리로 부터 '한국은 투명하게 코로나19를 관리하고 있으므로 입국제한조치는 없다'는 인터뷰가 떳다. 나의 해산간 여행을 아는 사람들은 드디어 갈 수 있겠네라며 축하(?)했고 운명으로 받아안고 짐을 쌌다.  

3월 2일 마스크로 중무장한 피치못한 사정들로 짐작되는 사람들이 텅빈 인천공항을 소소하게 채웠고  수술용라텍스 장갑에, 손세정제까지 가방에 넣고 비행기에 올랐다. 의외로 많은 한국인들이 호주행 비행기를 탔고, 내 옆자리는 죽비어있던 덕분에  누운채 비지니스클래스를 느끼며 편한 잠을 청하기도 했다.

작년에 한번 왔던 길이라 혼자갈수 있으니 마중따윈 필요없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막상 현지에 내리면 당황하지 않을까 맘졸이며 공항을 나왔다. 유심칩을 사고 공항과 연결된 train을 타고 환승까지 거쳐 웨스트미드역까지 오는동안 마스크 쓴이는 딱 한사람, 동양인이 있을뿐이었다. 공항나오기전 눈치껏 마스크를 제거한 나는 출근과 등교에 바쁜 시드니시민틈에 끼여 막달 잔뜩 부른배를 안고 마중나온  sisiter와 반가운 해후를 했다.


6개월여동안 산불로 호된 고통을 겪은 호주는 늦여름을 지나고 있었다. 작년 끝없이 높고 맑았던 하늘이었는데 올해는 산불끝에 얼마전에 홍수피해까지 겪었던 터였다. 겪어보지 않은 기후위기를 마주한 호주에는 삶의 변화가 찾아왔을까 궁금해진다.

3월 3일 도착한 호주에서 하루를 푹쉬고, 4~5일로 예정된  분만일에 맞춰 오른편 운전 자동차 연습도 하고 병원위치를 알아두는 등 산모 케어일정을 머릿속에 그려갈즈음 저녁때 미드와이프(조산사)로부터 "한국에서 온 sister 병원 접근금지"라는 전화가 왔단다. 흐미, 연일 코로나 확진자 최고치를 찍고 있는 한국상황이고 보니 수긍은 가지만 '바이러스 취급' 당하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여튼 혹시나 모를 바이스러로 공포가 확산되니 그럴 수밖에, 조심하며 방콕에 매진했다. 호주까지 와서 방콕이라니...

김치와 몇가지 한국식료품을 사기위해 한인마트에 가니 평일인데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한인마트 직원들은 모두 마스크를 썼고, 코로나확산에 불안해진 사람들이 장보기에 나섰나보다. 한인마트밖은 어느누구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동네앞 coles. 텅빈 화장지 매대에 안내문이 붙어있다. 이 매대에 화장품이 진열된 것은 이후로도 보지 못했다.

언제 출산할지 모르는 날이 하루이틀 지났고 불안해진 sister 남편이 일주일 휴가를 냈고  우리는 서로 안심했다. 매일저녁 임산부와 동네 산책하기와 집앞 슈퍼 coles 가는 것이 유일한 외출이었다. 호주 마트 양대산맥이라 불리는 coles에 이상하게 텅비어있는 매대가 있었다. 다른 식료품들은 그대로 인데말이다.

그날 이후로 휴지사재기는 호주 뉴스에서도 연일 보도되었다. 급기야 마트에서 머릿채를 잡고 휴지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루 이틀 지나자 휴지와 라이스, 파스타 매대가 비어갔다. 그래도 다른 식료품들은 그득했으니 별 걱정하지는 않았다. 코로나가 이탈리아, 유럽을 넘어 확산일로에 있고 호주도 백여명이 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해산간자로서 본분을 충실히 하기위해 임산부 밥해먹이고 청소하고 집앞 텃밭을 매는데 sisiter가 "Oh, my god!"을 외치며 항공사에서 보낸 문자를 읽는다.  "코로나19로 결항되었으니 구매처에 문의해 환불받으시기 바랍니다" 헐

어제 오늘, 연속 2연타를 맞고 보니, 에고 될대로 되라. 바이러스 시대에 내 맘대로 되는 것이 무었이 있겠냐 외려 마음이 편해진다.


예정일이 일주일도 넘게 지났는데 출산을 위한 몸의 변화는 있지만 본격적인 산통이 오질 않는다. 오늘일까, 내일일까 시간이 갈 수 록 기다림은 간절해졌는데 결국 13일 오전 유도분만 일정을 잡았다. 아이가 눈치챘는지 새벽부터 양수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한다. 서둘러 채비를 하고 든든히 밥도 먹이고 sisiter 부부를 드라이브 스루방식으로 병원에 떨궈주고 차를 몰아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첫애는 보통 15~16시간 진통을 겪는다고 하니 저녁때나 소식이 올것으로 계산했지만 점심때가 지나고 "아직 괜찮다"는 문자를 끝으로 연락이 안되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김밥싸서 보내주기로 했는데 언제 시작을 해야할지, 미역국도 끓여야 하는데 타이밍을 어디에 맞춰야할지 몸과 맘이 따로 논다. sisiter 남편에게 문자를 보내고 전화도 해봤지만 읽지도 통화도 안된다. 한참 진통과 싸우고 있나보다.

아침 7시30분이 병원에 간 sister 남편에게 오후7시 14분 "She is born""Both are healthy"라는 문자가 온다. 그리고 40여분후 아이를 안은 sister과 영상통화를 했다. 4.5kg의 딸을 출산한 sisiter는 죽을뻔했던 고통을 전하며 "아무도 출산의 고통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 해 준 적이 없었다"며  원망과 후련함을 토로한다. 서둘러 김밥을 싸고 미역국을 끓였다. 저녁 8시쯤 올줄 알았던 sister남편은 밤 10시가 넘어 왔고  훌훌 미역국 말아 먹고 기력을 차리길 바라며 국과 김밥, 쌀밥, 씻은 김치와 과일을 싸서 보냈다.

산모는 내일 오전에 퇴원예정이란다. 하룻만에 퇴원이다.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 '안젤리'와 동방에서온 보배라는 뜻의 한국이름 '동주' 동주안젤리를 드디어 내일 만난다. 사진속 동주안젤리는 엄마 어릴적 모습을 똑 닮았고, 귀와 발가락은 인도아빠 하쉬를 똑 닮아있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싱싱한 미역불리고, 쌀 안쳐놓으니 이제사 해산간이 실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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