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아픈 아이는 커서 아픈 어른이 된다.
아픈 아이를 만드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아픈 사회, 아픈 환경, 아픈 부모? 혹자는 아픈 부모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 하는데, 그 또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가정 학대의 문제는 무 자르듯 단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일차적 책임은 부모에게 있을 지 몰라도, 결국 그 아이를 구원하지 못한 데엔 우리의 책임, 그리고 사회의 책임 또한 막중하기 때문이다.
<마더> 의 레나는 겉으로 보기엔 또래보단 조금 작지만 잘 웃고, 어른들의 표정으로 분위기를 금새 읽어낼 만큼 똑똑한 아이다. 그러나 레나가 가정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었고, 실제로 레나의 담임은 레나의 집을 찾아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담임은 이를 모른 척 해 버리고, 레나 또한 어른들에게 말해봤자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체념한다.
주인공 나오 역시 처음엔 레나를 외면하지만, 자꾸만 눈에 밟히는 레나를 외면할 수 없었던 나오는 결국 레나를 납치하는 기행까지 벌여가며 그녀를 구해낸다.
타인의 아픔에 점점 무뎌지는 시대다. 내가 제일 힘들고 내가 제일 아프다고 아우성치는 데에 급급하다. 딱히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여유도, 그럴 마음도 없다.
그러나 내가 힘든 만큼, 타인의 아픈 신호를 알아차리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인간은 힘들수록 기민해지기 때문이다.
또, 내가 겪었던 아픔만큼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아픔도 없다. 작품을 통해 공유되는 누군가의 개인적인 아픔이 누군가에게 공감을 사고, 대중의 지지를 받게 되는 과정도 결국 나의 아픔을 또다른 누군가가 겪었다, 는 그 감각을 많은 이들이 공유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또는 누군가가 보내는 어떠한 신호가 마음에 걸린다면, 애써 외면할 필요까진 없지 않을까.
물어보는 게 그리 힘이 드는 일은 아니니까. 아픔은 혼자 가둬두는 것보다 공유하는 게 덜 힘들다.
그 아픔의 대상이 자신이 되었건, 타자가 되었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