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당신에게 가고 있어> / 김보영 작가
모든 해피엔딩의 결말은 우연으로 회귀한다.
어떠한 고통스러운 과정 속에서도 낙관하는 이유는 이 비극 끝에 결국 서로를 발견할 것이란 근거없는 우연을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실로 경험한 바에 따르면,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끝끝내 또다시 만나게 되는 우연한 경험들이 쌓여 나를 형성한다. 그리고 그 경험들은 단순히 개인의 의지로 연결되고 이어지진 않는다. 아무리 간절히 바라도 닿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것들이 단순히 내 우연의 결과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나는 우연을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인 것 같다.
다만 필연과 우연 사이에 어떠한 간극이 존재하는지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만일 우연 또한 우주의 거대한 계획에 의한 결과물이라면, 필연과 우연은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게 아닐까.
사실 필연과 우연 따위로 이해할 수 없는 경험을 풀이하는 것은 단순히 인간의 결과론적인 판단일 뿐이고, 그 원리와 이치는 결국 같은 게 아닐까.
김보영 작가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트릴로지] 중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와 <당신에게 가고 있어> 는 연작소설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실은 같은 시간대와 같은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다만 화자만이 다른 동일한 이야기 구조의 소설들이다. 1권은 주인공 남자가 여자에게 쓴 편지들의 모음이며, 2권은 그 반대이다.
두 남녀는 단지 서로를 사랑한다는 그 애달픈 마음 하나를 가지고 시공간을 넘어선 항해를 시작하는데, 그 과정은 예상했던 것만큼 수월하지 않다. 예상 항해시간은 몇 개월에서 몇 년, 아니 몇 십년으로 늘어나며, 당신을 만날 것이다 - 라는 서로의 의지는 당신을 만나야만 해 - 당신을 만나고 싶어 -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의 형태로 점점 흐릿해진다.
소설을 둘러싼 여러 근미래적/ SF적 세계관은 차치하고, 오롯이 둘의 감정만으로 진득하게 들어가보자면 - 이야기는 마치 서로를 원하는 그 강렬한 의지가 서로를 서로에게 닿게끔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이 겪는 고통, 무엇보다 기다림이라는 시간이 주는 고통을 생각해본다면, 적어도 우주가 아닌 지구적 시각에서 보았을 때는 그 어떠한 지구인도 겪어볼 기회조차 없는 기다림의 고통이며 - 만약 어떤 남녀가 서로에 대한 강렬한 마음으로 우연이라는 근거 없는 기회를 낙관해야 한다면 우주적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인가 - 라는 물음으로 도달하게끔 만들기도 했다.
픽션이니 당연히, 현실적인 고통보다도 초월적인 고통이 더 낭만적으로 느껴질 테니 충분히 납득할 수야 있지만, 만약 인간에게 우연을 넘어설 수 있는 의지의 수준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나는 과연 어디까지 노력해야 하나, 언제까지 버티고 기다려야 하나.
실은, 정말 어쩌면, 인간의 모든 ‘무언가가 되고자’ 혹은 ‘누군가를 만나고자’ 하는 모든 의지와 노력은 의미없는 헛발질일 수도 있다. 그러니 모든 노력을 내던지고 되는 대로 사는 게 누군가에겐 가장 적합한 삶의 방향성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정말 어쩌면, 우연을 초월한 의지란 것이 존재한다고 감히 믿고 싶다. 그것이 설령 내가 알지 못하는 범우주적 진실과는 길항하는 무언가라 하더라도 말이다.
소설 속 두 남녀 또한 자신들의 노력과 시간들이 결말이 보이지 않는 과정이었다 해도 후회하지 않았던 것처럼, 인간을 움직이는 동력 또한 결국 기약 없는 결과가 아닌, 오롯한 본인의 마음에서 이어진 무언의 발길질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