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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중 Aug 06. 2021

땡처리 김밥을 곱씹으며

합리적 소비에 대한 합리적 의심

밤 10시는 학원이 파하는 시각이기도 하지만 마트 영업 종료 시간이기도 해서, 1타 2피로 아들 픽업하기 전에 학원 옆 마트에서 초치기로 장을 보곤 한다. 글이든 쇼핑이든 마감이 임박하면 초인적 에너지가 작용하는지 폐장을 알리는 음악이 울리면 카트를 끄는 잰걸음에도 각 매대에 붙은 할인 스티커가 눈에 쏙쏙 들어온다.


어제도 땡처리(?) 상품들을 솔찮이 거둬들였는데 그 포획 그물 속에는 50% 할인 딱지가 붙은 마트 김밥도 들어있었다. '수업받느라 배고팠을 아들 줘야겠다' 그러나 차에 올라탄 녀석의 손에는 맥도널드 봉지가 쥐어져 있다. 방금 튀겨낸 포테이토와 공장에서 만든 차가운 김밥. 아들의 거친 표현대로 게임 상대가 안된다. '그래도 지금 안 먹으면 곧 상할 텐데" 라며 자원 활용 측면에서 호소해 보지만 가난한 아빠의 부자 아들은 세일 상품 따위에는 눈길 한번 두지 않는다.     

  

지지리도 궁상맞은 이런 식품 소비 패턴은 내 인생의 두 여자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에구~ 아까워라" 어릴 적 어머니는 생선 대가리나 식구들이 반쯤 남겨놓은 국을 대신 드시곤 했다. 가족끼리 외식을 할라치면 꼭 2번씩 밑반찬을 리필해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셨다.


 "아싸~ 득템" 아내는 알뜰상품 코너에서도 '할인에 할인' 빨간 화살표가 두 개씩 붙어있는 상품을 만나면 이렇게 소리친다. 내가 " 아니, 유통기한 다 된 샐러드잖아"라고 볼멘 목소리를 내면 " 왜 이러셔, 적어도 낼모레까진 먹을 수 있겠구먼"이라며 주부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합리적 소비생활의 노하우를 은근히 뽐낸다.   


어려서는 어머니에게. 자라서는 아내로부터 나도 모르게 스며든 이 합리적 소비의 정체는 무엇일까?  1+1 행사, 무료 쿠폰, 특가 상품... 할인이 일반화된 사회에서 정상 가격이 과연 애초부터 정상이었는지, 1년 365일 세일을 권하는 sale society에서 과연 합리적 가격이 얼마큼 합리적인 것인지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과연 합리적 소비자인가'라는 의심에 트리거가 된 것은 반값에 잘 샀다고 득의양양했던 어제의 김밤. 식구 모두가 외면한 이 계륵을 누군가는 처리해야 했기에 오늘 아침, 냉장고에서 꺼내어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음...


혹시 밥에 섞인 돌에 관한 엣 추억을 떠올리고 싶다면 이 김밥 한번 드셔 보시라. 낮동안 마트에서 1차 냉장, 밤새 우리 집에서 2차 냉장된 결과, 냉장 X냉장은 냉동인지 고슬고슬해야 할 밥알에서 자갈자갈 돌 씹히는 느낌이 나고, 노릇하게 윤기 나야 할 김은 물에 축 젖은 파래 같다. 특히 단무지에서는 달큼한 사카린이 아니라 냉장고 탈취제 냄새가 난다.        


'음식을 먹는다'라는 행위의 주체에는 배와 입 그리고 돈 이 3가지가 있지 않을까?  굳이 층하를 메긴다면 배 고픈 상태에서 필요한 음식만 먹는 것이 최상이요,  입이 즐거워 계속 손이 가서 주워 먹는 것이 중이라면,  배고프지도 않은 상태에서 맛도 없는 것을 단지 돈 아깝다는 이유로 먹는 것이 최하이다.  

 

차가워서 딱딱해진 이 자갈 김밥을 힘겹게 씹으며 전체적인 상황을 곱씹어본다. 누가 시켜서 나는 이 김밥을 먹는 거지? 허기를 달래기 위해서도 미각을 위해서도 아닌데. 혹시 미련하게 본전을 지키기 위해 입속에 꾸역꾸역 처놓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소탐대실. 할인이라는 알량한 이득을 탐하여 더 큰 손실을 보지 않으려면 이쯤에서 이 건강하지 않은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려야겠다. 아직 2/3나 남았지만 아깝다는 생각 자체도 과감하게 손절해야 한다. 미련퉁이 같은 미련도 이제는 잘 소비해서 버릴 줄 알아야 한다. 혹 해서 사지 않으며 버려야 할 때 잘 버리는 것이 합리적인 소비가 아닐까


(모든 상품에서 할인이나 땡처리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건강을 위한 음식만큼은 서로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개인적인 생각에서 쓴 글이니 다른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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