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알람이 아닌 매미들의 아침 떼창에 잠이 깬다. 겉 잠을 자면서도 머릿속 달력을 더듬어보니 오늘은 일요일. 작은 안도감으로 두벌잠을 청하려는데 햇살 가득한 소리들이 귓가를 맴돈다. 왈왈왈... 이 소리는 창문 너머 동네 강아지 같고, 달달달... 이건 보지 않아도 오래된 우리 집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다. 그런데 곁에서 들리는 쌕쌕쌕...이건 뭘까? 왠지 익숙한 듯한 이 소리는.
한낮의 무더위와 열대야가 연일 반복되자, 결국 아내도 올해 들어 처음으로 에어컨 가동을 승낙하고 말았다.
'단, 가족이 다 모여있는 거실에서만'이라는 조건이 달리긴 했지만...
어제저녁, 그동안의 봉인이 해제되고 드디어 윙~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니 마침 학원에서 돌아온 딸내미는 그대로 마루에 널브러지고, 소라게 마냥 방에만 처박혀 있던 아들도 슬금슬금 기어 나온다.
"까짓, 기분이다. 오늘 밤은 에어컨 켜고 다 같이 자볼까?" 말투도 시원시원해진 아내의 파격 선언(?)에 아이들도 각자의 베개며 이불을 주섬주섬 꺼내오니 어느새 마루는 네 식구의 잠자리로 꽉 차 버렸다. 그리고 오늘 아침, 다 큰 딸과 웃자란 아들은 밤잠 많은 아빠만 쏙 빼놓고 제 엄마와 수런수런 밤새 이야기를 나누다 잠들었는지 날이 밝았는데도 여전히 꿈나라 중이다.
이렇게 식구가 한데 모여 옹기종기 잠을 이루던 때가 언제였던가? 발치에서 각자의 잠자는 모습을 보니 새삼 아이들 어릴 적 잠버릇이 떠오른다. 갓난아기 때 머리 위로 두 팔을 만세 하며 나비잠을 자던 남매는 오늘은 엄마를 사이에 두고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은 모양으로 새우잠을 자고 있다. 그때도 누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아들은 딸이 몸을 뒤척이면 잠결에서도 제 누이를 좇아 같이 뒤척인다. 자세히 보니 두 아이의 발가락도 닮았다.
아직 단칸방이던 시절, 여름이면 마루에 모기장을 설치하고 종종 그믈 속으로 들어가 함께 자곤 했다. 서로의 발이 닿는 불편한 발칫잠이지만 가족들의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는 어린 아들을 배 위에 올려놓고 자장자장 재우면서도 하나도 덥지가 않았다. 딸은 엄마의 뱃속을 기억하는지 "여기 아늑해, 우리 여기서 평생 살자"며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제 딴에는 제법 진지한 다짐이겠지만 아내와 나는 그저 식~ 웃을 수밖에...
함께 오래오래 같이 살자던 딸의 바람은 지킬 수도, 지켜질 수도 없는 약속이란 걸 알고 있다. 어린 시절 한 때의 소망은 둥지를 박차고 날아오르는 순간, 바람 따라 흘러가는 법이니까. 내 아이들도 언젠가는 새처럼 자기의 길을 찾아 떠나가겠지. 아니, 당장 이 여름이 끝나면 깍쟁이 딸내미는 깔끔한 자기 침대로, 아들은 다시 제 방에 처박혀 게임으로 밤을 새우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곤히 단잠에 빠져있는 이 모습을 일시 저장 버튼으로 내 인생의 카메라에 찰칵~ 담아 두고 싶다. 일상적이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은 그 계절에만 맛볼 수 있는 제철 풍경이 아닐까. 이 여름, 속살 새하얀 복숭아처럼...
이제 곧 해가 중천인데도 여전히 쌕쌕쌕...일요일이 늦잠 자는 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또 하나의 여름이 지나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