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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중 Nov 09. 2021

오~ 자네 왔는가

"우리 과에는 세 가지 부류가 있지. 공부하는 자와 운동하는 자 그리고 아웃사이더"
신입생 환영회에서 누군가 폼을 잡으며 한 말이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점차 학교 생활을 하면서 나는 어디에 해당하는지 자문하게 되었다. 애초부터 전공에 관심이 없었던 나의 눈에는 오직 시험에 합격해서 자신만을 드높이려는 이들이 천박해 보이기만 했다. 그렇다고 모두를 위해 앞장서서 자신을 던질만한 용기도 없었다. 결국 나는 이도 저도 아닌 주변인이 되어 주위만 배회할 뿐이었다.    


자칭 고시생들은 시험에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로 교수들을 평가했고, 타칭 운동권들은 교수 성향으로 이편과 저편으로 나누었다. 그런데 어느 쪽이 됐든 그런 품평의 대상에서 늘 제외되는 교수가 한 명 있었다. 그 이유가 궁금해서  "o교수님은 어떤가요?" 물었더니 한 선배가 "나중에 수업 들어가면 알게 돼"라며 알듯 말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2학년  o교수님 과목 첫날에 왜 관심 밖 교수였는지, 그 선배의 웃음이 어떤 의미였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백발의 노교수는 이렇다 저렇다 설명 없이 수업 내내 고개 숙여 교과서를 읽기만 했다. 수업 중간 한 두 명씩 자리를 떠도 별다른 간섭을 하지 않으니 곧 만만한 수업이라고 소문이 났다. 출석체크만 끝나면 누군가는 도서관으로, 누군가는 중앙 광장으로 교실을 빠져나갈 때 나는 학교 앞 동시상영관을 찾았다. 그렇게 한 학기 동안 교수 얼굴 대신 극장에서 여배우 얼굴만 감상하다 입대해버렸다. 


3년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학교는 모든 것이 변해버려서 남의 집에 온 것만 같았다. 제대했는데도 입대할 때보다 오히려 고민이 더 많아졌다. 이제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지, 적성에 맞지도 않는 공부를 계속해야 할지 결정 못하고 복학 신청서 앞에서 볼펜만 만지작 거리고 있는데  과사무실로 들어오던 o교수님이 나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 오, 자네 왔는가?" 


평소 무뚝뚝한 교수님이 어떻게 3년 전  땡땡이 치던 학생을 기억할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한마디는 어릴 적 전학가서 쭈뼛쭈뼛하던 내게 짝꿍이 건네준 따듯한 환영인사와도 같았다. '오. 자. 네. 왔. 는. 가' 이 짧은 말에는 스스로 존재감 없다고 믿고 있던 나의 존재를 확인해주고, 3년간의 부재마저 기억해주는 어른의 관심과 배려가 담겨있던 것이다. 아직 군인 정신이 남아있던 나는 학교에서 유일하게 알아봐 준 사람을 위해 결심을 하나 했다. '누가 뭐래도 의리는 지킨다'  


그렇게 나 홀로 강의실을 계속 지키다 보니 작은 변화가 나도 모르게 찾아오게 되었다. 천천히 읊어 주시는 소리 따라 책의 활자를 좇다보니 따로 시간 내지 않고도 교과서 한 권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하고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공부에 재미를 느끼게 되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장학금까지 받게 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교수님은 나를 기억해준 것이 아니었다. 대충 나이 들어 보이는 복학생에게는 누구에게나  "오, 자네 왔는가?" 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날의 진실 여부는 이제와서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상대방이 아무 생각 없이 뱉은 말에 혼자서도 상처 받듯이, 감동의 말도 거꾸로 되짚어보면 상대방이 의미 없이 한 말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공부도 스스로 하는 것처럼,  말 또한  발화자의 의도보다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이는 청자의 태도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세월이 흘렀지만 나도 인사해오는 학생 중에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게는 옛날식으로 인사하곤 한다.  

"오~, 자네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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