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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중 Oct 29. 2021

어른의 시소 타기

재작년 한 해에만 위암과 협심증으로 연이어 대학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원투 카운터 펀치를 맞고 다운당한 심정으로 무엇이 원인인지 곱씹어보니 결국 일과 사람의 스트레스로 귀결되었다. 지금까지 늘 절실하게 살아왔다면 이제부터는 절실해지지 않는 것이 내겐 절실해 보였다. 그때부터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고, 보기 싫은 사람은 보지 않으며 처음으로 마음대로 살아보니 인생이 참 행복했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며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만족하는 순간, 유리창 한편에 마른 낙엽 같은 아내의 모습이 비쳤다.


내게 시집올 때에는 방글방글 피려는 꽃봉오리 같던 아내가 어느 결에 기울어가는 꽃처럼 두 뺨에 선연한 빛이 스러지고 이마에는 벌써 두어 금 가는 줄이 그어졌다.  <현진건, 빈처>


25살 어린 나이에 시집 온 아내에게 어머니는 제사 많은 집 장남 며느리로서의 희생과 순종을 강조해왔다. 별 것 아닌 일에 무릎을 꿇리는 일도 잦아서 세월이 흘렀어도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오면 아내는 "내가 또 뭘 잘못했나?' 미리 심호흡부터 하고 본다. 이젠 구속받지 않아도 될 나이인데도 보이지 않는 족쇄에 묶여 있는 코끼리처럼 여전히 스스로를 얽어매던 아내가 요즘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는 일이 많아졌다. 같이 산책 가자고 해도, 외식하자고 해도 혼자 있고 싶다고만 대답할 뿐이다.


결혼 20년 차, 그저 갱년기이겠거니 했다. 이 시기에는 이유 없이 남편이 미울 수 있으니 옆에서 걸리적거리지나 말라고 누군가 조언해주었다. 처음엔 그 말대로 굳게 입 다문 아내를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그녀의 침묵은 더욱 깊어져 갔다. 서서히 침잠하는 모습을 곁에서 구경만 할 수 없어 갱년기에 이유 없다는 조언을 무시하고 일단 그 원인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원인의 원인을 타고 들어가 보니 그 끝에는 결혼 자체에서 비롯된 근원적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남자의 원죄 같아서 내가 노력해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들이었다.


"어머, 누가 갱년기래? 그건 당신이 글인지 밥인지 끄적거린다고 하루 종일 방에만 처박혀 있으니까 그렇지. 오늘처럼 이렇게 쓰레기도 버려주면 좀 좋아" 어느 날 내가 분리수거를 도와줘서인지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아진 아내가 방언을 쏟아내었다. " 그리고 당신은 꼭 원인을 따지는 게 문제야. 뭐, 분석을 하려면 제대로 하든가. 난 어머님은 좋아, 남편이 얄밉지" 결국 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제대로 보지 못하면서 내게 편리한 쪽으로만 생각하려했나보다.


2년 전 시작한 치유하는 글쓰기에서 혹시 나만 치유하는 글쓰기에 매몰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돌이켜보았다. 그동안 자유롭게 책 보고 글 쓰며 느꼈던 행복한 감정도 어쩌면 누군가로부터 잠시 빌려온 것인지도 모른다. 살면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며 하늘 높이 올라도 보았다. 이제는 상대방을 위해 시소를 아래로 내려할 차례이다. 갱년기든 아니든 여전히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할 사람이지만 나로서는 계속 같이 시소 타 줄 상대가 필요하다. 그래서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나도 즐겁고 아내도 즐거운 우리의 시소 타기를 다시 배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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