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어디까지 가봤니?
밤늦은 지하철 역사, 한쌍의 연인이 개찰구를 사이에 두고 입 맞추는 중이다. 배웅하는 남자는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여자 친구가 무척 아쉬웠나보다. 이렇게 힘겨운 작별 인사를 건네는 걸 보면
사실 요즘 공공장소에서 특별한 장면도 아니지만 이들에게는 다른 부자연스러운 무언가가 있었다. Not mouth to mouth, But mask to mask. 평소 방역지침에 투철한 커플인지 서로 포옹은 하면서도 마스크는 벗지 않은 채, 그대로 입을 맞추고 있다. 아니 적확히 표현하면 입맞춤이 아니라 마스크 맞춤인 셈이다.
위드 코로나 시대 신풍속도가 아니라면 겨우 키스 정도로 귀찮게 마스크까지 벗는 것이 이들에겐 오히려 번거로웠던 걸까? 남의 연애사에 이래라 저래라 논하는 건 아니지만 '여명의 눈동자' 에 나오는 유명한 철조망 키스신을 보고 자란 나로서는 조금 낯설고 어색한 모습이다. 철조망은 아니더라도 개찰구라는 장애물을 극복한 사랑의 세리머니 치고는 어쩐지 20% 부족한 느낌이랄까
'키스란 이런 것이다'라는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입맞춤은 입술과 입술이 맞닿아야 한다고 믿는다. 마스크 따위로 서로의 입술을 가로막아서는 사랑하는 사람의 숨결을 온전히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이십 대 마지막 날, 키스를 배웠던 남자의 고리타분한 로망에 불과하곘지만
로망은 로망일 뿐, 현실은 어느덧 코로나 2년 차. 이전에는 언감생심 택도 없을 거라 생각했던 것들이 슬금슬금 언택트화 되었다. 언택트 수업, 언택트 마라톤, 언택트 입맞춤... 심지어 버튼을 누르려하면 '잠깐! 언택트 하세요'라고 알려주는 정수기까지 나온 걸 보면 과연 이 언택트의 끝은 어디일지 궁금하다.
어쩌면 유모차에 앉아있는 아기는 태어나서부터 착용해온 마스크가 기저귀보다 더 자연스러울지도. 만약 언택트 베이비 세대들이 성인이 되어서 '입맞춤 = 불결한 접촉 행위'로 인식하고 '마스크 맞춤 = 안전한 사랑의 표현'으로 대체한다면?
흠.... 그런 미래야말로 조지 오웰이 걱정했던 인류의 디스토피아일 것이다. 1984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가 마지막까지 갈구했던 것도 진짜 육체에 깃든 진짜 사랑이었으므로
살갗과 살갗의 접촉, 체온과 체온의 교감이 그리워지는 것은 추워진 계절 탓만은 아닐 것이다. 가짜 말고 원초의 생명, 부자연이 아닌 자연스러움이 일상이 되길 소망한다. 그냥 원래처럼....
하여, 코로나는 저 선남선녀들에게 입술을 허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