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중 Apr 11. 2020

한 발로 가는 자전거

한 발로 가는 자전거를 보신 적이 있나요?

아니, 서커스에서 보던 그런 외발 자전거 말고, 오롯이 발 하나로만 페달을 밟아야 하는 자전거 말입니다.   


주말 아침, 한강을 산책하던 중이었습니다. 전날 밤 과식으로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억지로 억지로 걷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어쩐지 부자연스러운 모습의  자전거 한대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 자전거를 탄 사람은 위로는 헬멧에 유니폼까지 갖춰 입어서 일반 라이더와 다를 바가 없어 보였지만, 자전거 아래 페달 한쪽의 모습은 뭔가 허전한 느낌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는 왼쪽 다리 없이, 오른쪽 한 발로만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자전거 탄 풍경이 허전했던 이유는 그에게 한 발이 없었기 때문이었고, 기우뚱 부자연스러웠던 것은 한 발로만 자전거를 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본 순간 '어떻게 한 발로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의아했지만 영차 영차 힘내는 모습을 보니  '어쩌다 다리를 잃게 되었을까? '라는 동정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혹시나 넘어지지나 않을까?'  걱정으로 사라지는 자전거 뒷모습을 한참 지켜보다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현관 한편에서 몇 달째 잠자고 있는 내 자전거가 불현듯 눈에 들어옵니다. 늘 같은 자리에 있었는데, 어째서 오늘에서야 그 존재를 인지하게 된 걸까요? 그제야 오랫동안 방치된 자전거의 이곳저곳을  살펴보았습니다.


자전거는 한 참을 타지 않으면 저절로 바람 빠진다고 하더니,  역시나 두 바퀴 모두 이미 바람이 다 빠져버린 상태입니다. 그동안의 무신경도 미안하지만 이래서야 어디 가서 자전거가 취미라고 말하기도 창피합니다.

창피함은 반성으로 이어져 그와 나, 과연 누가 더  진짜 자전거를 좋아하는 걸까? 생각해보니 그에 대한 나의 어설픈 동정과 섣부른 걱정이 새삼 부끄러워졌습니다. 한강 걷기 30분 조차 숨이 차서 어기적 대던   내 모습을 만약 그가 보았더라면  "내 걱정 말고 너 나 잘하세요~"라고 할 것만 같습니다. 어쩌면 한 발만 가진 그가 훨씬 튼튼한 심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러고 보니 종종 한강공원을 산책하노라면 다양한 인생들을  만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잔디밭에서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기와 이제는 한걸음 한걸음이 힘겨운 늙은 개... 그중에서도 매일 한강길을 걸으면서 동시에 책도 같이 보던, 이름하여 위킹 북  할아버지도 생각납니다. 단순히 특이하다고 말하기에는 남모를  사연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 할아버지에게는 산책만 하기에는 남겨진 시간이 흐르는 강물처럼  아쉬웠을지도 모릅니다.


한강에서 만난 워킹 북 할아버지나 한 발의 라이더에게서 공통점을 하나 찾아봅니다. 어쩌면 자신에게 그어져 있는 한계선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지워가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사실 겉모습만 보고 남을 판단한다는 것이무리겠지만 적어도 그들 모두 인생을 즐기는 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다시 현관문에 서서,  바람 빠진 자전거 타이어를 만지다 우선 축 쳐 저버린 내 마음부터 힘차게 공기 펌프질 하기로 합니다. 언젠가 내 인생도 슉~ 바람 빠지기 전에 미리미리 페달을  밟아야겠습니다. 

내가 주어진 고마운  두 다리로 말이죠 

작가의 이전글 AO형 인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