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스텝‘에서 산다라박이 연기하는 주인공 시현은 사고로 기억을 잃고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 더군다나 가족도 집도 없는 절망적인 상태에서 음악이 색깔로 보이는 ‘색청’까지 앓는다. 하지만 힘든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음악으로 난관을 극복한다는 힐링의 메시지를 갖는 여주인공이다.
2NE1 해체 이후 산다라박이 처음으로 내놓는 영화라, 어떤 이는 그룹이 해체되고 나서 연기로 발걸음을 전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님을 밝힌다. 인터뷰를 해보니 산다라박이 이 영화를 크랭크업한 타이밍은 2NE1 해체 후가 아닌 해체 전이었다, 다시 말해 2NE1 활동을 하는 중에 이 영화를 찍었다는 거다.
- 이 영화에 출연한 계기를 들려 달라.
“음악영화라는 점이 끌렸다. 제가 보여드릴 수 있는 게 많지 않을까 생각했다. 시현이라는 캐릭터 안에도 평소의 제 모습이 들어있다. 시현의 차분하고 얌전한 모습이 저랑 닮은 점도 출연하게 된 계기다.”
- 영화 촬영하면서 NG를 세 번밖에 내지 않았다고 들었다.
“활동하면서 NG를 많이 내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리고 제 스타일이 ‘한 번 할 때 집중해서 하자’는 스타일이다. 여러 번 가는 게 더 힘들기 때문이다. 완벽주의자는 아니지만 완벽하려고 노력하는 성격이다. 실수가 있으면 오래 생각한다. 애초에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준비를 많이 한다. ‘원스텝’을 찍을 때에도 리딩을 많이 하는 등 사전 준비를 많이 했다.”
- 주인공 시현은 음악으로 치유를 받는 캐릭터다. 시현처럼 음악으로 치유를 받은 적이 있다면.
“가수 활동하기 전부터 음악을 무척 좋아했다. 힘들 때면 음악을 찾는다. 어릴 적 스트레스를 받으면 노래방에 가서 소찬휘의 ‘티어스’를 부르고, 슬픈 일이 있으면 ‘이 가사가 내 이야기 같다’고 감정이입해서 듣곤 했다.”
- 시현을 연기하면서 상처를 입은 캐릭터를 연기해야 하면서 동시에 음악도 소화해야 해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입장이었을 것 같다.
“처음 연기할 때는 부담을 갖지 않았는데, 시현이 색청을 앓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부터 연기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음악을 듣는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색청을 앓는) 시현의 입장에서는 음악을 듣는다는 게 괴로운 일이다.
맛난 걸 먹었는데 맛없다고 연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음악을 들으면 힘들다’는 최면을 나 자신에게 걸고 연기했다. 현장에서 밥도 못 먹을 정도로 몰입했다. 촬영이 없는 쉬는 시간에도 혹시나 이 감정이 깨질까봐 걱정했던 것 같다.”
- 영화를 찍으면서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시현이 화를 내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저는 평생 화를 내본 적이 없다. 싸워본 적도 없다. (연기를 위해) 제 딴에는 화를 낸 건데 직접 보니 약했다. 좀 더 화를 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다.”
- 평생 화를 낸 적이 없나.
“화를 낸 적도, 싸워본 적도, 소리 지른 적도 없다.”
- 필리핀에서도 연기 생활을 하지 않았나. 그 때랑 한국에서 활동하는 것과 차이점이 있다면.
“필리핀에서는 영어와 필리핀어를 쓰다가 한국에 와서 한국어 연기를 하는 게 어려웠다. 어릴 적에 필리핀을 간 데다가, 고향이 부산이다. 서울말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투리도 아닌 어정쩡한 어투라 표준어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어떻게 말해야 화가 난 거고, 질문하는 어투 등인가를 잘 몰랐던 것 같다.”
- 연기는 언제부터 관심이 있었으며, 연기 연습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한 시기는 언제인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드라마 보는 걸 굉장히 좋아했다. 당시 아역배우가 많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히트하던 때라, 그 드라마를 보며 ‘내 또래인 것 같은데 나도 TV 에 나오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게 됐다. 그렇게 연기에 관심을 갖다가 중고등학생 때 H.O.T나 브리트니 스피어스 붐이 불어서 가수로 꿈을 바꿨다. 그러다가 ‘만능 엔터테이너’를 꿈꾸게 됐다.
필리핀에서 연기 워크숍을 받기 시작했다. 한국에 와서는 YG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재작년부터 단체 레슨을 통한 연기를 배웠다. 일주일에 두세 번 배우는 레슨이었다. 연기를 혼자 하다가 그룹으로 배우니 힘들었다. 당시 2NE1으로 활동하던 시기여서다. ‘원스텝’ 촬영이 들어가기 바로 직전에 레슨 선생님이 ‘너는 졸업해도 된다’고 해서 단체 레슨 수업은 끝났다.”
- 따로 연기 레슨을 받을 계획이 있다면.
“짧게나마 연기를 하며 느낀 게 있다. 그건 레슨을 열 번, 스무 번 받는 것보다 현장에서 체득하면서 많이 배우겠구나 하는 생각이다. 연습실에서 연습하는 것보다, 현장에서 몰입이 더 잘 되는 편이다.”
- 가수는 작곡가에게 받은 노래를 해석하고, 배우는 대본에 있는 캐릭터를 해석한다. 두 작업의 공통점이 있다면.
“노래는 가사가 나와도 A4 분량으로 한 장 남짓이다. 반면에 처음 연기할 때 두꺼운 대본이라도 받으면 ‘이걸 어떻게 다 분석하지?’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래서 지금도 어렵다. 캐릭터 분석이 난감해서 감독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이제는 네가 스스로 해 볼 때다’라는 답변을 준다.
‘사소한 것부터 생각해 보라’는 감독은 ‘시현이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등, 대본에 쓰여 있지 않은 디테일을 네가 생각하고 만들면 네가 생각하는 시현이가 되는 것’이라는 조언을 주었다. 그런 식으로 노래 해석을 생각하면 똑같은 것이다. 작곡가에게 받은 노래를 어떻게 표현할지는 저의 몫이다.”
- 뮤지컬에 도전할 생각은 있나.
“최근에 옥주현 선배나 바다 선배와 친하게 지내면서, 공연을 보러 다니면서 뮤지컬에 대한 매력을 알게 됐다.”
- 연기를 하면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 있었다면.
“강혜정 선배와 대본 리딩을 함께 한 적이 있다. 어떤 대사를 치다가 선배가 ‘너무 좋다, 귀엽다’고 했는데 그게 진심이라는 게 느껴지더라. ‘그래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하는 자신감이 붙으면서 연기에 보다 흥미를 느끼게 됐다.”
- 연기하면서 이것만큼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신념이 있다면.
“(연기를 위해서라면) 항상 준비된 배우가 되고 싶다. 준비를 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성격이다. 현장에서 몰입 잘 하고, 말 잘 듣고,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을 항상 갖는다.”
- 누나보다 동생 천둥씨가 먼저 뮤지컬에 노크한 셈이 된다.
“너무 기특했다. 동생이 하는 뮤지컬을 어머니랑 함께 보면서 ‘이쁘다, 이쁘다’ 하며 관람한 적이 있다. 동생이 데뷔한 뮤지컬이 1990년대 춤과 노래를 소화하는 뮤지컬이었는데 너무 기특했다. 본 무대에 오르기 전 연습할 때 세 시간 동안 소화하는 춤이 많이 힘들다고 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관람하고 나니 역할도 잘 어울렸다.
천둥이 태어날 때부터 엄마처럼 돌봤다. 6살 차이가 나서 어릴 적에는 업어 키웠다. (동생을) 정말 예뻐했다. 동생이 (엠블랙으로) 데뷔했을 때도 첫 방송 때 직접 찾아가 응원하고, 멤버들이랑 함께 먹으라고 먹을 걸 싸들고 갔는데, 그런 걸 지금도 꾸준히 하고 있다.”
- 솔로 앨범을 동생 천둥씨가 낸다고 했을 때 어떤 심경이었나.
“천둥이는 엠블랙 때부터 곡을 만들어 앨범에 실었다. 가수가 앨범을 하나 낸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라 힘들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천둥이는 앨범 준비를 하면서) 매일 밤을 샜다. ‘체력이 망가지지는 않을까’ 등등 누나로서 걱정을 많이 했다. (앨범 준비하는) 시간이 많이 걸렸음에도 동생 고집이 대단했다.
‘앨범이 나오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방송도 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갖고 있어서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앨범이 완성되고 동생이 누나에게 노래를 먼저 들려줬다. 음악하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의 고집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해서 기특했다. 많이 응원해주고 싶다.”
- 동생 천둥씨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인가.
“고집과 열정이다. 저는 천둥이만큼 연습벌레가 아니다. 천둥이는 집에서도 쉬지 않고 노래하고, 음악을 만들기 위해 몰두한다. 평소에 돈을 쓰지 않다가, 음악 만드는 기계에만 투자한다.”
- 가수 출신 연기자에 대해 대중은 기대 반, 우려 반의 마음을 갖는다. 이에 대한 부담감은.
“그런 생각은 크게 하지 않는다. 제가 계속 하던 일보다 서툰 점이 분명 있을 거다. 하지만 우려에 대한 시선을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기대 반 우려 반의 시선)를 들으면 더 발전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제 꿈이 만능 엔터테이너다. 꿈에 한발자국씩 다가간다는 마음으로 노력하고자 한다.”
- 왜 만능 엔터테이너를 꿈꾸는가.
“카메라 앞에, 무대에 오르는 게 재밌다. 밤을 새서 작업해도 하는 걸 보면 (이 일이) ‘좋긴 좋은가보다’ 하는 걸 실감한다. 한창 만능 엔터테이너를 꿈꿀 때 엄정화, 임창정 선배 붐이 일었다. 노래와 연기, MC 모두 잘 하는 선배들의 모습이 좋아보였다.”
- 그룹은 언젠가는 해체된다. 2NE1 활동하면서 언젠가는 그룹이 해체될 것이라는 예상을 했을 테지만, 막상 그룹이 해체되니 이전에 생각했던 것이랑 어떻게 달랐는가.
“그룹이 영원할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해체할 것이라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었다. ‘헤어지게 된다면 슬프겠지’ 하고 미리 울기도 했다. 어릴 때는 같이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좋았지만 막상 (해체가) 닥치니 일차적으로 ‘멘붕’이 왔다. 많이 외로웠다.
처음에는 해체되었으니까 2NE1이 아니라서 이제는 더 이상 가족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많이 힘들었다. 다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해체를 했다고 해서 변한 건 없다. 같이 연락하고, 밥 먹고... 어찌됐건 가장 친한 친구들이다.”
- 음악 인생에 있어 얻은 소중한 점이 있다면.
“많은 추억들이다. 해외 팬이 많아서 해외 스케줄이 많았다. 해외 스케줄은 무대 투어가 많다. 그런데 그게 잊을 수 없는, 소름 돋는 추억이다. 공항에 마중 나온 팬이나, 공연장에서 맞아주는 팬들이 많게는 만 명 이상 모여서 2NE1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다.
뛰어다니는 노래를 부를 땐 잘 모른다. 하지만 네 명이 앉아서 잔잔한 노래를 부를 때 객석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런 모습을 평생 볼 수는 없을 텐데 (마음 속에) 많이 담아 두어야지’ 하는 생각. 저런 추억들이 정말 소중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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