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을 밥먹듯이 하며 그 친구에 대한 감정을 키우기 시작한 3월이 훌쩍지나 어느덧 8월도 반이 지나가버렸습니다. 이제는 어엿하다곤 할 수 없지만 해가 서서히 짧아지는 가을로 접어들기 직전의 늦여름이 되었네요.
계절이 바뀔동안 나의 감정은 안녕하지 못한 날들이 좀더 많았고, 깊이는 더해졌습니다.
끝나지 않는 야근 속에서 가끔은 둘, 자주 여럿이 함께 하는 만남은 이어졌고 그 중에는 간지러웠던 사주체험도 있었고 불장난같았던 하루도 있었습니다.
평소보다 늦은 야근에 힘들어했던 날,
힘들어하는 저에게 끝까지 기다려줄테니 저녁을 먹으러 오라고 할만큼 우리는 친해져있었고,
저는 당연히 그 제안을 덥썩 받아 밤 열한 시가 되어서야 겨우 그 애를 만나러 갔습니다.
시작할즈음에는 둘이 아니었지만, 끝날즈음은 둘이 되어 그 친구의 집에서 한 시간을 더 떠들다 겨우 수다가 소강되었을 때는 이미 새벽 두 시가 넘어선 시간이었어요. 막차가 끊긴 채로 그 날은 그렇게 그 애의 집에서 눈을 붙이고 아침에 일어나 나왔습니다. 잘자, 잘가라는 낯간지러운 말들도 함께요. 당시에는 너무 피곤하고 얼떨떨했던 나머지 그 날이 가진 의미를 잘 몰랐습니다.
밤이 늦었으니 택시를 타고 가라는 말 대신 단 둘이 있는 집에서 자고 가라고 말했던 그 애의 의도를 조금 더 파고들었어야 했을까요? 그러기에 나는 너무 확신이 없었고 겁이나서 그만 모른 척하는 것을 택했습니다.
그 뒤로도 우리는 여럿이, 가끔은 둘이 종종 만났고 술을 먹었고 즐겁고 슬프고 화나는 이야기들을 공유했습니다. 때때로 카톡을 하기도 했고요.
그렇게 5월, 6월, 7월이 되어서 우리의 연락에는 텀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하리라 믿었던 관계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크게 상심한 저는 그제야 지난 날을 돌아보게 되었네요.
그 뒤로 내가 흘려보냈던 시그널이 있었나 아무리 되짚어봐도 이미 날이 너무 지나 형태를 알 수 없거나 사후변질된 감정들이 대다수였어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사이에는 아직 많은 접점들이 살아있었고 어영부영 단체 엠티날이 다가왔습니다.
가벼운 스킨십, 눈맞춤 하나에 큰 의미부여를 하며 마음을 졸이던 1박2일을 보내고 돌아와 결국은 인정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더 이상 이 관계로 남아있고 싶지 않다는 것을요.
그 애의 감정이 나와 같지 않을까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기엔 이제 내 감정이 너무 커져버렸다는 것도요.
아마 나와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습니다. 내가 지닌 호감의 무게와 상대가 지닌 호감의 무게의 이질성을요.
절대 지는 싸움은 하지 않으려하는 나의 회피적인 성향이 말하길 선뜻 용기내지 못하고 상대가 먼저 다가오기만 기다리며 주변을 서성거린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요.
그래도 이제는 그냥 해보려고요.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그래도 최대한 상대의 의중을 알아보고 나와 같은지, 다른지 알고 그 다음 노선을 정하는 시도는 취해야겠습니다. 아무래도 제자리에 머무는 것은 내가 더이상 즐겁지 않아졌기 때문입니다.
냉장고 안의 음식처럼 감정에도 보관할 수 있는 유통기한이 있음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더 쉬어터지기 전에 발효시킬수 있다면 발효시키고, 그렇지 않다면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갖은 애를 써야할 거고, 때때로 슬플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이 편이 나는 조금 더 즐거울 것 같습니다. 나와 그 애를 위해서도 더 좋을 것 같고요.
다음에는 좀더 진전된 이야기와 함께 브런치를 찾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 또한 장담은 못하겠네요.
그래도 이 감정이 내게 주었던 즐거움이 괴로움보다 크기 때문에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재회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