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은 실패다
회사에서 쓰는 텀블러는 두 개여야 한다.
미니멀리즘을 지향한다면 하나여야 하는것 아니냐고 반문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다. 탕비실에서 설거지를 여러번 하는 근무시간 까먹기를 할 자신도 없다.
그래서 두 개다. 텀블러를 두 개 쓰다보면, 카페에서 음료를 테이크아웃컵으로 받을 핑계를 댈 수도 없다. 책상 위에 버젓이 있는 텀블러 옆에 플라스틱 컵을 둔다는건, 미운 플라스틱 새끼(?)를 만들어내는 꼴이다. 플라스틱이 미움받지 않도록 굳이 곁에 두지 않는다.
하루종일 마실 물을 담아둔 텀블러 하나와 언제든 카페에 갈 때마다 들고갈 수 있고 카페의 용량 차이에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커다란 텀블러 하나는 인체의 70%라는 수분이 휘발될 틈을 주지 않는 든든한 내 지원군이다. 메마른 직장 생활, 진정할 틈을 주는 쉼표이기도 하다.
미니멀한 책상이나 텀블러 하나를 부지런히 쓰는 삶과는 거리가 멀어지지만, 나 나름 친환경에 조금 더 가까워지는 움직임은 ‘텀블러 두 개 쓰기’에 있다. 갑작스레 다가오는 티타임을 대응할 수 있는 ‘비어 있는 텀블러’가 나에겐 ‘친환경 무기’가 된것이다.
텀블러에 붙는 스티커 한장과 티백이 쓰레기의 전부라니, 플라스틱, 종이, 빨대 쓰레기를 줄여낼 수 있다는 것에서 괜한 뿌듯함을 느낀다. 저 스티커는 어쩔 수 없는건가 고민도 해보면서.
티백을 스티커로 붙여주는 카페 직원의 센스에, 텀블러에 빠진 티백을 손으로 건지는 불상사는 피했다. 덕분에 안정적으로 티를 마셨다.
투 텀블러! 이런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부지런하지 않은 사람
설거지를 자주 할수 없는 사람
갑자기 회의에 불려갔다가 점심시간에 풀려나는 사람
평소에 물이나 음료를 자주 마시는 사람
친환경을 실천하고 싶은 사람
텀블러 없이는 카페에 가기 싫어지는 사람
주변에 친환경 실천한다고 외쳐서 텀블러 없이 카페가기 눈치보이는 사람
오늘도 나는 친환경 직장인 흉내를 내어본다. 고작 텀블러 두 개 들고. 이제 또 어떤 흉내내기가
기다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