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육아와 살림에 바쁜하루하루를 보내며 저녁식사를 하는 중 큰애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는 바람에 허겁지겁 밥을 먹고 아이를 씻기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살아가다 보면 서서 아이가 남긴 음식을 대충 먹거나 평소 좋아하는 라면을 먹으려고 끓이면 둘째가 깨서 울어대는데, 편하게 앉아서 밥을 먹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닌듯했다.
샤로프든은 집안일과 육아일을 적극적으로 하는 편이지만 나도 모르게 불쑥 올라오는 육아 스트레스는 나조차도 컨트롤이 안될 때가 있는데 이날따라 무척이나 나 자신이 예민해져 있었던 것 같다.
아이를 씻기고 나왔는데 밥 먹은 것도 치우지 않고 핸드폰을 계속 붙들고 통화 중인 샤로프든이 보였다.
전화는 할 말만 하고 끊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나와는 다르게 샤로프든은 우즈베크 식구들과 전화하면 사돈의 팔촌 안부까지 묻는듯했다. 타지 생활에 가족들이 그리운 건 알겠지만 매일 전화하면서 이모에 고모에, 매형에. 왜 그렇게 안부를 묻는 건지. 어제 물은 이모, 누나 사촌들의 안부를 또다시 묻는 남편을 보면서 들리지 않는 우즈베크 말을 해서일까 오늘따라 유난히 더 심술이 났다.
그 시간에 내 안부나 물어줘라.
라고 속으로 혼잣말을 하며 눈치도 없이 전화통을 붙들고 통화하는 샤로프든을 보고 오늘은 무슨 말이라도 한소리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집중해서 들으니 평소와는 다른 억양과 불안한 단어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통화를 마치고..)
나 : 왜?
샤로프든 : 엄마가 많이 아프대.. 허리도 아프다고 하고 밤엔 계속 토하고.. 아무래도 우즈베크에 갔다 와야 될 거 같아.
그리고는 오늘 아침부터 우즈베크에 있는 가족들과 통화한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었다.
화가 났다.
그걸 왜 지금 얘기해.
방금 전까지 안부전화를 하루 종일 한다고 화가 나있었던 나 자신이 부끄러우면서, 사실 화가 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소외감.
평소에 우즈베크의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 물으면 별일이 아닌 것처럼 짧게 이야기했고 별일이다 싶은 일은 항상 늦게 알게 돼서 서운할 때가 많았다. 예전에 아버님이 아프셨을 때도 나에겐 약 먹으면 괜찮아진다고만 했지, 아버님이 고혈압에 심장질환이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식구들이 아버님께 자주 가며 병간호를 할 때조차도 나는 대수롭지 않게 가족적인 분위기니까 그러려니 했던 게 생각이 났다. 그때 내가심각성을 조금이라도 미리 알았더라면.. 샤로프든 이 고주알미주알 다 이야기해주었더라면.. 내가 우즈베크어를 할 줄 알았더라면..
우즈베크어를 몇몇 단어들과 분위기, 눈치로만 들어야 하기에 식구들과 남편이 전화를 하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자세히 말해주지 않으면 모를 수밖에 없었고 남편은 걱정할까 봐 신경 쓰게 하는 게 싫었다고 이야기하는데 나로서는 가족들에게서 늘 소외감에 서운함이 쌓여가고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님이 아프신 것도 이제야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며 우즈베크에 가는 이야기를 하는데 바이러스도 걱정되고 더운 여름이라 6개월밖에 되지 않은 둘째까지 데리고 가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했고, 어머님도 아프시니 샤로프든 혼자 다녀오는 게 좋겠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샤로프든 은 손주를 보고 싶어 하는 아픈 어머님을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집에서 어린 동생 때문에아무것도 못하고 심심해하는 수마야를 데려가는 게 오히려 아이에게도 좋을 거라며 나를 설득했다. 꼬박 하루를 가야 되는데 엄마인 나도 없이 괜찮을까, 걱정이 됐지만 깊은 고민 끝에 나 역시도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같이 가!
샤로프든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알고 지내는 여행사에 전화해서 최대한 빠른 날짜의 비행기표를 끊었다.
나는 늘 경험 많은 아이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몇 살부터 언제 어떻게 해야 할지를 항상 고민해왔는데 지금이 짧지만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면 다 있다는 남편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예전의 내가 아니기에 우즈베크에 가기로 이야기를 끝내자마자 나는 메모지에 아이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난번 우즈베크에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필요한 것들은 인터넷으로 미리 주문하고, 집에 있는 짐들을 챙기며 아이가 최대한 한국이 그립지 않게 비누 하나 양말 하나부터 아이가 즐겨먹던 편의점 간식과 비행기 안에서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과 말이 통하지 않아도 사촌언니 오빠 동생들과 친해질 수 있게 조카들 선물과 간식들까지 모조리 챙겼다. 한 달간의 헤어짐이지만 출국하기 전까지 5일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마치 오랜 시간 헤어지는 가족인 듯 애틋한 시간들을 보냈는데 남은 시간 동안 샤로프든도 나도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러면서 친정집에도 매일같이 가서 수마야 얼굴도 보여주고 바쁜 시간을 보내는 중 친정집에서 다 같이 밥을 먹는데 아빠는 샤로프든에게 달러가 들어있는 돈봉투를 건넸다.
어머니 아픈데 병원비에보태서 써.
부모님에게 돈을 받는걸 무척이나 부끄러워하는 남편인지라 안 받겠다는 샤로프든을 대신해 감사함을 표하고 샤로프든 가방에 넣어주었다. 이럴 때 문화 차이를 경험하는 듯 남편은 이런 나를 보면 놀라면서도 흐뭇해한다는 걸 이제는 나도 안다.
늘 절약하고 특히 자신에게 돈을 잘 안 쓰는 남편이지만우즈베크에 가는 남편이, 오랜만에 우즈베크 집에 가서 한국에서 왔는데 돈을 아끼고 있다고 생각하면 남편 체면이 말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날 남편을 위해 달러를 두둑이 환전해서 뒀웠는데
이제남편은 달러 부자가 되었다!
여긴 비싸니까 우즈베크 가서 돈 팍팍 쓰고 와!
한 달 갔다 오는데 뭐하러 이렇게 많이 환전했냐고 다그치는 남편이었지만 어머님 병원비에 필요할 수 있으니 가져가 보라는 말에 무척이나 감동받은듯했다.
출국 당일
바리바리 짐을 가지고 인천공항으로 갔다.
아기가 있어서 돌아올 때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친정엄마도 함께 공항에 갖고 우리는 일찍 공항에 가서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즈베크에 가면 커피도 쉽게 못 먹을 테니 좋아하는 커피를마시라고달달한 바닐라라테 한잔을 사주었고 아이랑 처음 떨어지는 것이라 그런지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해 수마야에게 다정하게 대해주었는데 , 이번에 느낀 것이지만 가끔 가족 간에 이렇게 잠시 떨어져 있는 시간도 좋은듯하다. 비행기를 타는 시간이 되자 갔다 온다는 인사와 함께 울지 않고, 아빠 손을 잡고 수마야는 씩씩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친정집에서 지내라고 했지만 집이 더 편할 것 같아 집에 있겠다고 했고 엄마는 나와 아기를 우리를 집에 데려다주고 잠시 뒤 돌아갔다. 멍 때리며 세탁실 앞 비어있는 분리수거함을 보니 불과 몇 시간 전 헤어진 남편 생각이 났다. 아기랑 있으면 외출이 자유롭지 못한 걸 알고 샤로프든은 분리수거부터 세차와 화장실 청소까지, 집을 청소해주고 갔다. 예전에 우즈베크에서 수마야가 세균 감염으로 수술했던 안 좋은 기억 탓에, 사실 보내기로 결심하고도 끊이지 않는 걱정에 남편에게 당부와 잔소리를 계속했던 게 미안해졌다.
어차피 갈 거 좋은 이야기만 하고 쿨하게 보내줄걸.
아이들에게 밀려 늘 신경을 못써주는 남편이 벌써 그리워진 걸까..
집에 오자마자 아기는 힘들었는지 그대로 잠이 들었고, 엄마까지 가고 나니 남의 집에 있는 것처럼 정적이 흐르고 조용했다.
나는 늘 책이 가득한 방에 컴퓨터 책상 하나 넣고 조용한 나만의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현실은 아기 우는소리와 종알종알 잠시도 쉬지 않고 말하는 수마야, 엄마를 가만히 두지 않는 아이들이라 머릿속이 늘 정리되지 않은 채 정신이 없었는데 이곳은 마치 다른 세상에 온듯했다. 그리고 그리움이 1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신기할 정도로 뇌에 반전이라도 온 듯 해방감과 행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조용히 책상에 앉아 알록달록 펜들을 꺼내 계획표를 그리기 시작했다.
남편과 큰딸이 오기 전까지 날씬하게 살도 빼고, 독서도 하고 자기 계발을 하겠어라는 야무진 꿈을 그리며 설레는 목표와 계획을 짜면서 기분은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확실히 두 아이를 키우다 한 명이 없으니, 아니 세아이를 키우다 둘이 없으니 여유가 넘치는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