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이게 왜 나오다 말지?
캡슐에 쓰여있잖아. 에스프레소라고.
......????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커피보다 차를 많이 마시고, 커피는 좋아하지만 우리처럼 카페가 많이 없어 다양한 커피맛을 접해볼 기회도 없을뿐더러 밥값과 맞먹는 커피값에 많이 마시지 않는 듯했다.
커피 없이 못 사는 친오빠는 우즈베크에 놀러 왔을 때 카페가 없어 꽤나 당황했지만 아쉬운 대로 마트에서 파는 네스프레소 스틱커피를 사 마셨고, 나 또한 우즈베크에서 나를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조용한 카페가 있기를 바랐지만 그런 공간조차도 없어 많이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우즈베크 시댁에 있을 때 커피를 페트병에 타서 시원하게 얼려, 집에 놀러 오는 식구들에게 한잔씩 드리면 꽤나 인기가 좋았던 맥심 커피. 우즈베크에선 한국에서 보내는 커피가 선물 중 베스트 선물인데 이렇듯 커피를 좋아하는 우즈베크엔 왜 카페가 한국처럼 보편화되지 않는 걸까. 언젠가 우즈베크 생활을 하게 되면 작은 트럭과 중고 머신을 사 시장에서 커피를 팔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즈베크에서 온 내 남편은 나보다 카페를 더 자주 갔는데,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에 친구들과 만나면 열에 아홉은 카페에, 한 번은 피자집에 가는 남편이었다. 늘 가는 카페지만 샤로프든의 카페에서의 입맛은 조금씩 변해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샤로프든 의 커피 변천사
홍차 라테(홍차 파우더가 들어간 라테를 원하지만, 라테가 티백으로 나오면 당황하고 그냥 마신다.)
> 녹차라테> 바닐라라테(커피 진입)
> 카페라테
> 아메리카노(시럽 세 번)
-차에도 설탕을 넣어먹는 우즈베크 사람인지라 아메리카노에 시럽은 빠질 수 없는듯하다.
우리 부부는 외출을 하거나 같이 공부를 할 때만 가끔 마셨던 커피였는데, 두 아이를 보느라 잠이 부족해서인지 요즘엔 편의점 커피를 사다 놓고 마시거나 누구 한 명이 나갔다 들어오면 커피를 사들고 들어오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그래서 얼마 전 남편의 생일선물을 고민하다 우리에게 요즘 꼭 필요한 커피머신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해외배송이라 커피머신이 늦게 올 거라 생각했지만 감사하게도 커피머신은 생일날 파티 시간에 딱 맞춰 도착해주었다.
풍선도 달고 나름 멋진 서프라이즈를 준비해서 남편을 놀라게 해주고 싶었는데 정신없이 아이들을 보다 보니 풍선도 채 달지 못하고 허겁지겁 파티를 하게 되었다.
붙임성 있는 며느리는 아니지만 커피머신 자랑도 할 겸 파티 전 우즈베크 시댁으로 전화를 걸어 랜선 생일파티를 하였는데
안부를 물어가며 식구들과 함께 하니 진짜 여럿이 모인 기분이 들어 즐거운 생일파티를 할 수 있었다.
커피머신이 집에 온 이후 우리는 아침 저녁으로 커피를 한잔씩 타마시고 있는데 캡슐마다 다양한 커피의 맛에 빠져 골라먹는 재미, 맛과 향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며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중이다.
연애시절 샤로프든 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겨마시는 나를 보며 자주 물었다.
아메리카노는 맛도 없는데 왜 마시는 거야?
깔끔하잖아.
꽤나 도시 여자처럼 도도하게 이야기를 하던 나였지만 아이스 아메리카노 맛을 배우게 된 명확한 계기는 따로 있었다.
결혼 전 술을 좋아했던 나는 어느 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해장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한 게 없음을 알게 되었고 몸속에 남아있는 알코올을 싹 씻어 내려주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맛을 잊지 못해 어느 순간 술을 먹지 않아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게 되었던 건 아직도 남편에겐 나의 소심한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