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큰딸이 우즈베크에 가고 갓난아기와의 첫날밤, 저층에 살아서 가뜩이나 겁도 많은데 하필이면 비까지 내린다. 핸드폰 좀 바꾸라던 남편의 말을 들을걸. 꺼졌다 켜졌다 하는 핸드폰을 미련하게 바꾸지도 않아서 핸드폰까지 말썽인 이때, 샤로프든이랑 범죄 스릴러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지 나와 아이를 보호할 무기를 옆에 두고 자야 안심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쓸만한 호신용 무기가 있을까 찾아보던중 주방 가위를 발견하였고 이불속에 가위를 숨겨둔채 요란한 첫날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기는 잘 자는데 우즈베크에 간 가족 걱정인지도둑 걱정인지 잠을 깊게 자지 못한 나는, 일어나 조용히 책도 읽고 주문해놓은 다이어트 샐러드도 먹으며 우아한 하루를 시작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낮 12시가 다되어가서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샤로프든에게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자기. 우리 막 도착했어
와. 전화 기다렸어!! 수마야는 가는데 안 힘들었대?
차에서 계속 잤어 괜찮아.
(비행기로 7시간, 내려서 차로 9시간을 더 가야 했는데 무사히 잘 가주어 안심이 되었다.)
태어나서부터 4살까지 수마야를 키워준 할머니를 과연 수마야는 기억할까 싶었는데, 들어보니 샤로프든이 짐을 내릴 때 이미 집으로 뛰어들어가 할머니를 찾았다고 한다.
어머님이 얼마나 감격했을까,
내가 그 자리에 없었던 게 살짝 아쉬웠다.
샤로프든은집에 가면 가장 먼저 어머님을 데리고 타슈켄트 병원에 다녀올 생각이었지만 다행히 통원치료를 하면서 많이 나아지셔서 지금은 빵도 만드시고 어머님의 빵 사업이 그간 꽤나 커져서 이것저것다양한 빵과 여러가지 쿠키를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받아 팔고 계신다고 한다.
도착 첫날부터 수마야는 우즈베크에 가니 식구들이 많아 언니 오빠 동생들과 넓은 집에서 맘껏 뛰어놀 수 있어, 영상통화 속 딸의 모습은 무척이나즐거워 보였다. 그곳에서 말이 안 통하는 아이들과 잘 어울려 놀 수 있을까 걱정도 되면서 유치원에 다니지 않아 친구가 없었는데, 가지고간 스티커북과 슬라임,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언니 오빠들과 나눠먹으라고 싸준 킨더초콜릿 덕분에 더빨리 친해지게 되었다고 했다. 아이들이라 그런지 언어는 달라도 서로 이해하며 곧잘 놀고 한국말을 하는 수마야를 보고 나중에는 아이들이 수마야가 하는 한국말을 한두개씩 따라 하기시작했다고 한다.
우즈베크에 가고 얼마 후 어머님이 수마야를 데리고 결혼식에 다녀왔는데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하객들도, 신나는 노래도 새로운 광경들을 보고와 한참을 결혼식 이야기를 했다고 하는데 다섯 살 아이에게는 꽤나 감명 깊었나 보다.
무엇보다 결혼식에서 수마야를 본 사람들이 수마야가 한국인이냐며 여기저기서 물어보고 이뻐해 주었다고 하는데 수마야가 이쁘다는 말을 좋아해서 그런지 더욱 신나 있었다고 한다.
이놈의 한국 인기?
오랜만에 봐서 또 얼마있다가 다시 한국으로 갈 손주이기에 어머님은 수마야에게 뭐든지 다 해주려고 했지만 가끔 떼쓰는 수마야를 보고 화를 내고도 남았을 엄한 샤로프든조차도 엄마 없이 떨어져 외국에 나와있는 딸이 걱정됐는지 아이에게 더욱 다정하게 대하는 중이라고 한다.
엄마보다 이제 아빠가 더 좋다는 수마야.
어느 날은 조카들이 발레학원을 다닌다고 해서 잠깐이라도 좋은 경험을 시켜주고자 샤로프든은 조카들과 함께 발레수업을 듣게 했는데 창문밖에 아빠가 보이지 않는다며 학원이 떠나가라 울었고 그 이후로 아빠의 껌딱지가 되었다고 한다.(여기서 우즈베크 발레학원 수업료가 궁금하다면 한달에 한국돈 오천원.진짜 싸다.)
처음 열흘 정도는 영상통화를 하면 아침저녁으로 한국에 가고 싶다며 엄마를 찾았는데, 그때마다 걱정이 되어 우즈베크에 가야 되나를 심각하게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피는 못 속이는지 찬물을 좋아하던 아이가 이 무더위에 choy(차)를 달라고 하고,밥보다 빵을 더 잘 먹는 걸 보니 우즈베크사람이 따로 없었다. 음식 적응뿐만 아니라 2주 정도가 지나가면서부터 영상통화를 해도 노느라 엄마 얼굴도 안 쳐다보고 뛰어노는 아이가 되었고 지금은 보고 싶다고 한국 언제 올 거냐 물으면 할머니랑 우즈베크에서 살 거라고 하는데 이제는 살짝 서운해지려고 한다.
어머님이 직접 만들어준 수제 초콜릿 케이크/사촌오빠와 뜬금없이 영어공부/폭포 나들이 / 수마야가 좋아하는 마트 구경
어느새 우즈베크에 간지 한 달 정도 지났는데 듣기만 했던 우즈베크어를 이제는 한국어와 조금씩 섞어가면서 말하고 있고, 우즈베크 언니 오빠들과 집 마당에서 물놀이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어느 날은 길에 돌아다니는 염소와 소떼를 보고 놀라기도 하고, 시장에 가서 구경도 하고 결혼식에도 다니며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아빠가 태어난 우즈베키스탄의 시골마을에서 사람들과 정을 쌓으며 즐거운 추억을 쌓고 수마야 나름의 성장을 하고 있는듯 했다.
또 샤로프든은 오랜만에 집에 가서, 쉴줄알았는데 어머님 빵 만드는 일도 도와주고 아버님 산소에도 다녀오고,사람들을 초대하고 음식을 나눠주고.
정을 퍼나르느라 이곳에서보다 더 바빠 보였다.
그리고 오늘은 어머님의 고모에 딸이 시집을 간다고 해서 선물로 결혼식에서 먹을 쌈사(만두)를 300개를 빚었다고 하는데 옆에서 만두소에 넣을 양파 써는 걸 도와준 샤로프든은 평생 흘릴 눈물을 다 흘렸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주엔 우즈베크의 명절, 정확히 말하면 이둘아드하라는 이슬람 명절이었다.이 날은 경제적 여건이 되면 소나 양을 잡아서 가난한 사람들이나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며 선행을 하는 날이라 하는데 이날 시댁에서도 식구들끼리 돈을 모아 소를 한 마리 잡아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집에서도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이렇게나 우즈베크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샤로프든과 수마야와 달리 나는 어떻게 지냈을까.
친정집에 오라는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몇 날을 더 버티다 장마로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안방의 불이 깜빡깜빡하더니 결국 전구가 사망을 하였고 참다못한 무서움에 결국 보따리 싸들고 뒤도 안 돌아보고 친정집으로 직행하였다.이놈의 겁은.
다이어트와 자기 계발의 열의는?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는 결심은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이것저것 먹다가 친정집에 가니 친정엄마의 집밥을 보고, 지금은 반 탄수화물 중독자가 된 것 같다.
그리고 책은 짐이 많아서 들고 오지도 않았다는.
무엇보다 둘째 딸인 6개월 아기가 7개월 8개월에 들어서면서 가장 큰 변화가 있었다.
허리에 힘이 생겨 기어 다니던 아기가 앉아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있고 어딘가를 잡고 일어서서 게처럼 옆으로 이동하기도 하며, 늘 먹여주던 우유병을 두 손도 아닌 한 손으로 원샷을 때리기도 하는데 가장 큰 사건은 아빠 얼굴을 잊어버렸다는 사실.
영상통화를 하면 처음과는 다르게 웃지도 않고 시선을 피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예방접종 수첩을 가지러 집에 간 적이 있는데 집이 낯설었는지 들어가자마자 악을 쓰며 울기 시작했다.
여긴 어디
조만간 우즈베크에서 아빠와 언니가 돌아와 집에 가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하면서도 걱정이다.
그래도 결혼 후 친정집에서 한 달간 지내면서 엄마가 해주는 밥도 먹고, 엄마와 집안일도 분담하며, 엄마와 아빠가 다툴 때는 눈치도 보면서,
결혼전의 딸로 돌아간듯 즐거운 생활을 하고있다.
우즈베크에서 오기로 한 예정일은 원래 이번 주였는데 샤로프든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결국 이주 정도가 미뤄져 더 있다가 오기로 했고, 처음에는 언제 오나
시간이 안 가서 무척이나 그리웠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하루가 빨리 가는가 싶고.
혹시
샤로프든도 같은 마음이려나.
보고 싶지 않냐고 물으면서 더 있다오라고 서로 인심을 쓰고 있다.
샤로프든과 수마야가 돌아오면 우리는 언제 그리워했냐는 듯 우리가 살던 집에서 화냈다가 미안해하고, 잘해주다가 싸우고 지지고 볶아대며 그렇게 또 하루하루를 살아가겠지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이 시간에 감사한 하루를 보내야겠다.
우즈베크의 전통 결혼식 현장 / 이날은 여자들만 참석해서 인사를 나누고 축하를 해주고 있다.
카카오톡은 우즈베크에서 너무 느려서 동영상 전송이 힘들고 우즈베크에서 사용하는 채팅어플은 빠르긴 한데 화질이 좋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