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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in Sep 09. 2021

우즈베크에서 돌아온 가족

몸이 멀어져도 마음이 가까워질 수 있는 것, 가족이 아닐까

코로나로 거리두기가 격상되고 갈 때와는 다르게 다시 비행기 띄어 앉기를 하면서 돌아오는 자리를 예약하기가 더 어려워지긴 했지만 남편과 딸아이는 다행히 표를 구해 돌아올 수 있었다.

새벽같이 나는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는데 자가용을 이용할 때는 정해진 장소에 주차를 하고, 정해진 곳에서 만나 같이 가야 하기에 주차를 하고 입국장으로 향했다. 입국장엔 꽃을 들고 아내를 기다리는 듯 보이는 한국 남자와, 우즈베크 사람, 고려인들도 보였는데 잠시 뒤 우즈베크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가 나도 모르게 눈치껏 조금씩 들리는 게 신기했다.  시간을 비슷하게 맞춰 갔는데도 안에서 이것저것 서류 작성하느라 늦어지는 건지 한 시간이 넘어도 나오지 않고 있는 남편과 딸.  

심장이 두근두근 오랜만에 보는 설렘에 기다리는 게 싫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입국장으로 남편과 딸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55일간의 우즈베크 생황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과 딸아이.


어찌나 반갑던지 반가워 조용히 딸아이의 이름을 불렀지만 내가 생각했던 반응과는 다르게 나를 보고 못 본척하는 딸아이었다.

남편은 어제 본 것처럼 아무렇지 않았는데 아이와는 살짝 거리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집에 가는 길에 말 많은 딸아이가 우즈베크어와 한국어를 반반씩 섞어가며 이야기하는데, 우즈베크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자랑하느라 금세 친해지긴 했지만 며칠간은 큰아이에게 신경을 많이 써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집 앞 보건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하고 들어와 서프라이즈 선물을 본 딸아이가 무척이나 좋아했다.


기쁨도 잠시 우리는 집에서 2주간의 격리생활을 해야 했는데 갓난아이가 집에 있어 특히나 더 조심히 지냈던 것 같다. 한국음식이 그리웠다는 남편과 아이를 위해 우즈베크에서 못 먹었을 생선구이부터 해주었고 비가 오는 날은 부추 호박전을 부쳐 남편이 가장 먹고 싶었다는 냉면과 함께 해주었다.

남편과 딸아이가 돌아온 첫날밤, 아이들이 모두 자고 남편의 핸드폰을 빌려 우즈베크에서 찍은 사진과 영상을 구경했다. 처음 우즈베크에 도착했을 때부터  수마야가  우즈베크어를 하며 아이들과 뛰어노는 모습, 한국에 오기 전 타슈켄트에 유명 관광지에 가고 놀이동산에서 귀신 보고 무서워 우는 모습, 등을 보며 처음에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딸아이에게 좋은 추억을 선물로 준 것 같아 좋으면서 짧을 수 있는 두 달이지만 아이에게는 긴 두 달이었는지 여러 사람을 만나고 보고 하면서 언제 이렇게 컸나 싶을 정도로 훌쩍 커 버린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집에서 각자 생활할 곳을 어느 정도 정리를 마치고 남편이 가져온  짐을 풀어 정리를 하는데 캐리어에 신기한 물건들이 많이 있었다.

기미 잡티를 뿌리까지 뽑아준다는 약을 가지고 왔는데 우즈베크에 있을 때 엄마의 지인 중에  그 약의 효과가 좋다는 이야기를 해서 내가 사 오기를 부탁했던 물건이었다. 그런데 남편의 말을 들으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아주 무시무시했다. 남편이 이야기한 것을 머릿속으로 상상해보면 약을 피부에 떨어뜨리는 순간 염산이 닿은 것처럼 기미 주근깨의 뿌리까지 스며들어 녹여버린다는 대충 그런 이야기 같았는데 그럼 피부 흉터는 어떻게 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남편이 보여준다고 팔에 약을 떨어뜨리려 하는데 겁이나 그냥 아이들이 만질 수 없는 곳에 올려놓으라고 말했고 조만간 엄마 아는 분에게 드릴 생각이다.

이밖에도 나쁜 거 하나도 안 들어있다는 염색약, 또 우즈베크에 가면 늘 가져오는 피스타치오와 녹차 견과류, 우즈베크 음식 먹을 때 쓸 식재료,  친정가족 선물, 우즈베크 사람들이 좋아하는 향수, 가족들에게 가장 많이 받았던 선물인 금.!

 이번에도 남편은 내게 금목걸이를 선물해주었다. 어머님은 아이들에게 주려고 터키에서 미리 공수해온 미아방지 목걸이와 두 손녀딸의 신발과 가방 옷 등을 바리바리 사서 보내주셨는데 빵을 만들어 번 돈으로 그동안 손주들에게 사주고 싶었던 것을 다 사주신 듯했다.

우즈베크에 있을 때 수마야에게 올 때마다 50000만 숨이나 되는 용돈을 줬다는 외삼촌. 차가 없어 늘 와서  도와준 사촌동생 그리고 수마야에게 손님이라고 양보해주고 잘 놀아준 조카들, 초대해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준 식구들.

나도 한국에서 좋은 화장품, 좋은 생필품을 쓸 때면 우즈베크에 보내면 참 좋겠다 하면서도 워낙에 많은 식구들이라 누구누구에게 선물을 해야 할지,  몇 촌의 가족까지 선물해야 하나 고민만 하다가 끝났는데 미안할 정도로 선물과 도움을 많이 받아와서  이번엔 무언가 선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사실 결혼 전에도 결혼하고 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도 우리가 한국생활을 하기 때문에 무언가 더 많이 줘야 하고 우즈베크에 부족한 것을 더 많이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결혼 5년 차인 우리 집 곳곳 우즈베크에서 온 물건들만 보아도  경제적인 요건이나 환경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두 달여간 남편 없이 혼자 아이를 키우는 입장도 되어보고 결혼 전 부모님의 딸도 되어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어머님이 같이 살면서 아이들 봐줄 때는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어머님이 가시고 친정집에서 육아를 하다 보니 내가 생각했던 친정집과는 다르게 육아를 힘들어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어머님이 잠깐도 떨어지지 않고 아이에게 정성을 다해준 것들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게 죄송하면서도, 친정엄마보다 더 나를 많이 이해해주고 도와줬구나 라는 생각에 이제와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남편과 아이가 우즈베크에 있을 때 어머님이 자주 딸아이의 사진을 보내주었는데 생각날 때만 가끔 손주들 사진을 보냈던 게 너무 죄송해서 요즘 나는 아침 하루 일과를 어머님에게 사진 보내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남편은 요즘 이런 나를 보며 가끔씩 떨어져 있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담 같은 농담을 한다.)


드디어,

2주간의 길게만 느껴졌던 격리생활이 오늘부로 끝나는데

빨래며 청소며 삼시세끼 밥을 하는 요즘 그래도 내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족과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감사했다.


긍사행 -긍정 사랑 행복의 줄임말로

근사하다는 느낌이 드는 내가 자주 떠올리는 밀이다.


오늘도 나는 마음속으로 긍사행을 속삭이며 우즈베크 가족과 함께 행복한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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