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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in Sep 20. 2021

우즈베크 네 가족 첫나들이

자가격리 기간이 끝나고 일요일 오전.

아침밥을 먹으며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검색하다, 양떼목장 사진을 보고 아이에게 양을 보여주었는데 양을 보러 가고 싶다는 딸아이의 말 한마디에 우리 가족은 후다닥 아침을 먹고 양들이 있는 대관령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막상 가려니 너무 먼 게 아닌가 싶어 그냥 가까운 곳에 가서 바람이나 쐴까도 생각했지만 이왕 가기로 한 거 아이들에게 양을 보여주자며 남편은 내비게이션에 야ㅇㄷ ㅔ목 장 을 누르고 있었다.

한국생활에서의 샤로프든의 오른팔 역할을 늘 담당했던 나였지만 아이가 둘이 되고부터는 운전도 목적지를 찾아 네비에 누르는 일도 나의 도움 없이 하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지난여름,   친정가족들과 1박 2일로 다 같이 펜션에서 놀다 온 적이 있지만 우리 네 가족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돌도 안된 아기가 있어 어른 둘에 아이 둘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아 가족여행을 미뤄왔었는데, 아기띠만 하면 얌전해지는 둘째는 차에서도 얌전히 잘 있는 아기라 어려움 없이 다녀올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집을 나섰는데 출발 전 큰애가 시작부터 말썽을 부려 우즈베크 아빠의 엄함 덕에 우리 네 가족의 첫 여행의 시작은 독서실 분위기로 침묵 속 출발을 하게 되었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물을 많이 마셔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딸아이. 기저귀를 챙겨 오긴 했지만 간단하게 점심도 먹을 겸 휴게소에 들렀는데, 휴게소에 사람도 많고 복잡해 보여 마실 음료만 사기로 하고 커피와 아이가 먹고 싶다는 치즈구이를 사서 차에 타려는데 그만 치즈를 떨어뜨려 그마저도 먹지 못했다.

그렇게 또 독서실 분위기 속 출발을 하게 되었지만 독서실 분위기 덕분이라고 해야 하는지 금세 아이들은 잠이 들었고 잠을 푹 자주어서 우리 모두 편하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다. 대관령은 여행을 다니며 지나쳐 가기만 했지 처음 간 곳인데, 예전에 티브이 프로 1박 2일의 광팬이었던지라 대관령이 경치 좋고 배추가 유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티브이에서 본 것보다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샤로프든도 가는 도중 내려 사진을 찍고 싶다며 대관령 마을의 매력에 흠뻑 취한 듯 보였다. 드디어 양 떼 목장에 도착하여 표를 사고 언덕 위에 양들을 보기 위해 걸어올라 가는데 조금만 가도 힘들다고 엎어달라고 할 아이가 양들을 볼 생각에 들떠 언덕을 얼마나 잘 오르던지.

언덕 위에 도착하니 풀을 뜯는 양들과 사진을 찍는 사람들, 풀을 뜯어 먹이를 주는 사람들, 우리처럼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온 듯한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양은 우즈베크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동물인데, 시댁에서 집 앞마당에만 나가도 앞집 옆집에서 키우는 양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즈베크의 양은 몸에 비해 얼굴은 많이 작은 것 같고 엉덩이가 유독 토실토실한데, (우즈베크 대표음식 중 하나인 쌈사(만두)를 만들 때 양의 엉덩이에 있는 이 비갯살로 만든다.) 이에 비해 한국에 있는 양은 동화책에 나오는 양처럼 무척이나 귀엽게 생긴듯하다.

 양을 어렸을 때 키워봤던 남편은 무엇을 잘 먹는지 잘 안다며 이 풀 저술 뜯어와 딸아이에게 주었는데 신기하게도 양들이 무척이나 잘 받아먹었다. 겁이 많아 강아지도 조금만 크면 무서워서 잘 못 만지는 나와는 달리 동물을 무척 좋아하는 딸내미.

밑으로 내려가면 양에게 직접 먹이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었는데 입장권을 보여주면 먹이가 담긴 바구니와 교환해준다. 딸아이가 가지고 있는 먹이가 다 떨어지자 가까이 오지 않는 양들에 수마야는 굴하지 않고 저만치 뛰어가 이 풀 저 풀 고사리손으로 한 움큼 뜯어와 먹이를 준다고 풀을 모아 왔는데, 양들은 수마야를 본척만척하더니 눈길도 주지 않는다. 양들에게 서운한지 눈물을 글썽이는데 집에 가자고 해도 양들과 더 있고 싶다며 떼를 쓰는 아이. 내려가는 길에 즐거웠던 양들과의 시간을 기억하라는 의미로 양 인형을 하나 사주니 양양이라는 이름도 지어주고 하루 종일 양과 대화하며 어느새 애착 인형이 되어버린 듯하다. 

바로 집으로 가긴 아쉽고 이참에 우리는 대관령까지 왔으니 바다까지 보고 집에 가자해서 가까운 강릉으로 바다 구경을 하러 갔다. 잘은 못 먹지만 칼국수 먹을 때 한두 점씩 집어먹었던 조개를 제대로 맛보게 해 주기 위해 처음으로 남편과 조개구이집에 갔다.(샤로프든은 여전히 처음이 참 많다)

아이들도 있고 해서 피해를 줄까 싶어 나름 여러 가지를 생각을 하고 야외에 의자들이 따로 있는 곳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먹는 내내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남편은 작은애 이유식을 먹이는데 졸려워서 울고, 나는 조개를 뒤집어야 하는데 큰애는 가만히 안 있고. 힘들어서 한숨을 푹푹 쉬고 있는데 저쪽만치 테이블에 젊은 여자 두 명이 눈에 띄었다.

예쁘게 꽃단장을 하고 와 까르르 웃는 소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조개를 먹고 있었다. 나도 20대 때는 저런 웃음소리였을까.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라는 생각을 하는 것도 잠시 내 눈앞에 보이는 현실.

새우는 까맣게 타고 불판에 오래 구워 질겨진 조개구이는 급하게 건져내야 했다. 6.25 때 전쟁은 전쟁도 아니라며 초장에 대충 찍어 빨리빨리 먹어 치우는데 오늘따라 조개 양도 많아 보였다. 덥지도 않은데 땀을 흘리며 인상도 썼다가 한숨도 쉬다가  남편과 눈이 딱 마주쳤는데.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고 웃음이 빵 터졌다.

우리는 같은 생각을 한 것 같다.


sns에서 행복한 모습을 담는 것과 다르게 우리는 이 상황이 너무 웃겨서 사진을 한방 찍기로 했다.

우리 사진의 콘셉트는 힘들어서 죽겠는 멘탈가출.

(사진을 공개하고 싶지만 사진을 보는 사람도 멘탈가출이 염려되어 생략한다.)


전투 식사를 마치고 바닷가에서 나와 딸아이는 신발을 벗고 파도를 피해 모레를 밟으며 노는데 파도가 칠 때마다 어찌나 즐거워하던지.


아이들을 데리고 첫 여행이라 그런지 미숙한 것 투성이었지만, 힘들다가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행복해지고, 말 안 듣는 아이 때문에 화가 나더라도 곰 세 마리를 파트별로 부르자는 딸아이의 말에 차에서 다 같이 곰 세 마리를 부르는데 웃기게 노래하는 아빠 샤로프든 덕분에 웃고 떠들다가 하는, 긴 것 같으면서도 짧은 하루를 보낸 것 같다.  

아이들과 밖에 나가면 짐을 챙기는 것부터 다칠까 항상 걱정해야 되고 신경 써야 할 것 투성이지만 또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사진으로도 담고 하면,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족여행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중독성이 생겨 계속 가게 되는 것 같다.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과 이곳저곳 많이 다녔던 나와는 달리 여행을 많이 다니지 못한 남편이라 여행하면 늘 아이보다 더  들떠 즐거워하는 남편인데, 그 때문에 남편과 함께하는 여행은  여행할 맛이 난다고 해야 하나. 늘 새롭고 즐거워  다음 여행지를 생각하게 된다.

내가 쓰고 있는 일기장 뒤편엔 남편과 둘이 가고 싶은 여행 목록과 네 가족이 함께 갈 수 있는 여행 목록을 적은 여행 리스트가 있는데,  대관령 여행은 원래는 여행 버켓 리스트에 없었지만, 우리 네 가족의 첫 여행이라는 의미가 있어 리스트에 뒤늦게 추가해 넣고 하나를 이뤘다며 기분 좋게 밑줄을 쫙 그어 놓았다.


두 번째로 밑줄 긋고 싶은 여행지는 어렸을 때 가족과 자주 갔던 사패산.

요즘같이 날씨 좋을 때, 등산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우즈베크 남편을 데리고 단풍도 볼 겸 산에 올라가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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