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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in Dec 01. 2024

우즈베크 남편의 영주권 도전

잘 봤을 거야.

을마나 오래 살았는데 영주권 못 따면 말이 안 되지!

면접 보고 나와 기분 좋아 보였던 남편은 시험 후기를 대충 들어보니 이건 더 들으나 마나 합격인 듯했다.


결과는

불합격이라고 장난치려고 했던 계획과 달리 반전 결과에 물거품이 되어버린 남편의 영주권 시험.

사실 남편은 취업비자로 5년, 결혼이민으로 8년 이렇게 13년 차 한국에서 생활중이고

체류연장 기간이 더 길다는 걸 제외하고 영주권의 별다른 이점을 발견하지 못한 우린 이대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에 그냥 지내왔었는데 그런 남편에게 영주권에 관심을 갖게 된 결정적 계기는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친한 동생의 영주권 취득 소식!

남편은 마치 라이벌 의식이라도 있는지 영주권에 대해 없던 관심이 다시 새록새록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의지가 작심 3일인지라 그런 남편을 대신해 나는 시험 접수일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시험접수를 하고 2~3주 정도 지났을까

기다리단 영주권 시험일.

신분증도 깜박하고 들어가 시험장으로 다시 유턴해 가져다주었는데 제대로 시험지 작성이나 할 수 있을지, 우리 집 5살 둘째보다도 늘 더 걱정인 게 외국인 남편이다.그리고 하원시간 대기하듯 기다리다 남편이 끝났다는 전화에 더 듣지도 않고 곧장 아이들과 차를 끌고 다시 한걸음에 달려간 나는 남편을 보자마자 추궁하듯 그의 표정과 이야기를 통해 시험 난이도를 짐작해 보았고 생각보다 쉬웠다던 면접과

문제를 다 풀고도 시간이 남았다는 남편의 말에 합격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왜 불합격?

문제의 원인을 살펴보니 필기시험에서 평소 모의고사 보다 훨씬 점수가 낮게 나왔는데

사실 더 아쉽고 슬픈 마음이 들었던 건 남편보다 내가 더 컸을지도 모르는 것이 평소에 외국인 남편에게 잘난척하듯 라떼는 말이야 라고 할 때면

어떻게 이렇게 귀신같이 다 알고 있던지.

 마치 여기서 태어난 사람처럼 내가 살던 동네나 예전 역사 건물의 변천사부터 자신이 한때는 이삭토스트와 카페베네 한참 들랑날랑 했다는 말에

누구세요 까지 오고 갔던 우리의 대화들.

10년 넘게 알고 지낸 남편이 한국어가 문제라면 나와의 결혼 생활에서도 우리의 대화는 과연 괜찮았을까 하는 의심도 들었던 것 같다.

또 그럼에도 이만하면 잘하는 거지 싶은 것이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한국에 들어와 공장에서 일만하며 부족한 형편에 버는 돈은 모두 우즈베키스탄 가족에게 보내기 바빴던지라  여행뿐 아니라 한국어에 관심있던 남편이 돈을 내고 학원에 갈 여력도 없었으니 말이다.


남폄은 운좋게 e-9비자를 받아 한국에 왔지만 정해준 취업처에서만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늘 공장에서 주야간을 반복하며 여가 시간도 잠도 늘 부족했을 것같은 스케줄에 유일하게  식당 이모님이나 공장 내 한국인 동료와의 대화가 있어 단어노트를 적어가며 그들과 대화를 하며 틈틈이 한국어를 공부했다고 하는데

그 덕분? 인지 비속어 섞인 구수한 인간미 나는 한국인 말투를 배워 한국생활 5년 차에 나를 만나게 되었고,  외국인 친구들이 주위에 있었지만 언어의 답답함에 오래 연락하는 친구는 드물었던 내게 처음으로 외국인에 대한 불편함 없이 늘 새로운 대화 주제로 서로 다름에 호기심이 생겨 자연스럽게 꾸준한 만남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때도 남편은 한국어가 꽤나 능숙해 보였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한국어를 잘하기보다 대화를 할 때는 몰라도 아는 척, 눈치로 이해하려 했던 소심하면서 착한 성격이 그가 언어를 잘하는 듯 보이게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읽고 쓰기에 약하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몰랐던 때라 연애 시절 문자를 보내면 칼같이 전화를 걸어주는 우즈베키스탄 남자를 보며 배려심 깊고 따뜻한 사람이야 라며 혼자만의 착각에 빠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결혼 9년 차 두 아이 낳고 살면서 한국어 일상에 아직도 우린 풀리지 않은 묘한 오해들이 왠지 더 남아있다는 것 같은 찝찝함이 들기도 하는데 꼭 언어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이것이 국제결혼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닌가도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매일 식탁에 앉아 남편과 수다를 떨고 다름 속에서 교집합이라도 발견하면 척척 맞는 죽에 즐겁게 대화하는 우리 부부.

전혀 다른 관심사의 책을 읽으면서도 함께 미래의 꿈을 그려나간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10년 가까이 살면서 외국인과의 결혼 생활이  어딘가로 튈지 모르는 우리 부부이지만 처음 가본 여행지처럼 아직도 늘 낯설면서도 그것이 싫지많은 않은,

외국인 남편은 한국에선 늘 도움이 필요한 아들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게 설레이게 하는 하루 하루를 선물해 주는 듯 하다.


그리고 그런 남편이 또 한번 설레이는 사고를 쳐버렸는데 

인력에서 시작해 한국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한 우즈베크 남편의 도전,

우리에겐 또 어떤 한해를 마주하게 될까.

영주권은 안드로메다로 가버린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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