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좋다니까.
남들이 다 하니까.
sns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남들의 눈을 의식하게 되고 진짜 내 모습보다는 남들이 원하는 모습, 좋아할 모습만 보이게 돼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듯하다.
그 덕에 집에서도 컴퓨터 하나로 아이들 키우며 용돈 정도의 수입이 생겼지만 좀만 더 하자, 이렇게 쫌만 더 하자 싶다가도 꾸며진 나의 모습의 현실 자각을 하고나면 6년 전 sns를 하기 전 그리고 sns를 막 시작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브런치에 우즈베키스탄 남자에 대해 아무도 하지 않는 이야기를 할 때는 나의 이야기니까 할 말도 많고 누군가 한 사람의 댓글 하나라도 정말 소중했을 때가 있었다.
남들이 다 하는 걸 따라 할 때와는 전혀 다르게 세상에 나만의 색을 가지고 사는 느낌.
하지만 편견 속에서 나의 이야기를 해 나간다는 게 어느 순간 내겐 두려움과 상처로 돌아왔고 이 조차도 하다 보니 좋은 모습만 보이게 되자 한편으로는 어두운 내 모습은 숨기는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어느 한 콘텐츠 제작자는 브이로그 영상을 보는 이유가 누군가의 로망을 보며 힐링을 하기 위함도 있다고 하는데 누군가의 로망이 될 수 없다면 되고 싶은 로망을 만들어가라고 하였고 내 자신도 그런 로망을 만들고자 하였지만 실제로 해보면 로망과 나의의 현실 사이 괴리감에 내가 누구였는지 가끔 잃어버릴때가 있었는데
돈과 민심을 쫒는 방법이 솔직함을 어느 정도 묻어두고 sns를 하는 거라면 내가 정말 원했던 게 무엇이었을까?
이 질문을 안할 수 없는 듯하였다.
남들이 다 하는 걸 쳇 gpt도 할 수 있는 이야기들로 sns로 채워나가는 게 맞는 건지, 이것들이 수입과도 연결이 되었기에 아이들 키우는 엄마로써 중간에서 늘 저울질을 하였지만 그럼에도 솔직함과 내 자신을 잃지말자고 끊임없이 스스로의 대화를 해나갔던것 같다.
그리고 답답한 마음에 예전의 나를 만나기 위에 그동안 써놓은 일기장을 들춰보았는데 이런 나의 소망들이 곳곳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이들이 아플 때 언제든 데리러 나갈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우리 가족 많은 시간 함께 보내고 싶다.
카페에서 글도 쓰고 집에서 일하며 좋아하는 일로 시간을 보내고 싶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어머니께 아이를 맡기고 야간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고 일요일 남편과 나는 녹초가 되어 집에서 휴식하는 것만이 우리 가족의 유일한 행복이었는데 이런 내게 이런 소망들이 있었다니.
이 세 가지를 현재 모두 이룬 이 시점에서 감사함이라는 단어가 나에겐 빠져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다시 용기 내 원하는 미래를 그려보았더니 가장 먼저 지긋지긋한 이 가면부터 벗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 경제적으로 더 여유 있어졌다거나 한 것도 아니고 꼴리는 대로 막살 거라는 것도 아니며
그저 내가 머나먼 우즈베키스탄 무슬림과 결혼했듯 누구의 눈치 보다 내가 전부터 소망하고 있던 것들
거창하진 않지만 소소한 나의 목표를 용기 내어 시작해보고 싶어졌다.
소수일지라도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수 있는 나의 정말 마음속 진솔한 이야기,
그것이 내가 할 수 일, 좋아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얼마 전 유튜브 채널에 오랜만에 접속했는데 업로드 없어 거미줄 잔뜩 낀 채널임에도 구독취소 없이 500분 넘게 계셔준 구독자분들. 형편없고 누추한 채널임에도 댓글 남겨주시는 분께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전 영상 한 개를 업로드하고 50도 안 되는 조회수지만 혼자 몇 번이나 돌려봤는지.
오랜만에 발견한 듯 한 가장 나다운 모습이 얼마나 반갑던지.
나는 이런 걸 좋아했나 보다 싶은 게 가뜩이나 소심하고 눈치 많이 보는 남편대신 조금 더 용기 내 당당하게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 게 어쩌면 내가 가장 하고 싶은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