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보다 빵을 먹어요
사람의 식습관이 쉽게 변할까? 라는 생각을 해보면 나는 환경이 많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친구들이 맛없다고 하는 음식집에 가도 나는 웬만해선 맛있게 잘 먹었다. 자극적인 양념도 좋아했고. 싱거우면 싱거운 대로 많이 먹어서 좋았고. 먹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맛없다는 어느 정도의 개념인지 잘 구분하지 못했던 나이다.
결혼 전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던 나는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밥이 맛있다 맛없다 할 거 없이 아무 생각 없이 30년을 얻어먹어왔었다.
나는 먹는 걸 좋아해서 엄마가 해주는 반찬에 대해 투정하지 않고 뭐든지 잘 먹었는데 삐쩍 마른 오빠와는 전혀 다른 식성을 가지고 있었다. 나에게는 두 살 터울의 오빠가 한 명 있는데 오빠는 비염이 있어서 이것저것 먹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던 오빠였고 이런 오빠에게 밥을 먹이는 엄마의 방법은 바로 고기반찬을 하는 것이었다.
고기만 있으면 전투적으로 밥을 먹는 오빠였기에.
반면 나는 고기보다는 해산물이나 밀가루 음식을 좋아했고 그래서 오빠와는 음식을 두고 싸우는 일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집에 남겨진 나와 오빠는 둘도 없이 친한 사이로 자랐는데 어린 나이에 나는 어쩌면 마른 오빠가 고기를 잘 먹는 것에 기분이 좋아 양보해왔던 것이 내가 고기를 안 먹게 된 이유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빠와 함께 자주 마트에 갔었는데,
아빠는 장을 보러 가는 것도 장을 보고 들어와서 나물을 다듬고 엄마를 도와 음식을 만드는 것도 좋아하셨다.
아빠랑 마트에 가면 아빠는 항상 먹고 싶은걸 다 사라고 하셨지만 나는 아빠가 돈 쓰는 게 싫어서 안 사려고 했고 가격을 보면서 이것저것 계산해가며 물건을 집었는데 아무거나 집는 아빠에게 잔소리를 하며 티격태격 카트에 식품을 담았다. 이런 기억도 까마득하게 잊고 있다가 이렇게 글을 쓰면서 생각이 나니 갑자기 그 시절이 그리워지려 한다.
우리가 카트에 항상 담아 왔던 것은 내가 좋아했던 라면, 과자, 아이스크림 그리고 오빠가 좋아하는 고기. 아빠가 좋아하는 나물 채소들이 있었고 우리 가족은 전형적인 한식을 좋아하는 가족이었다.
까다롭지 않은 나의 식습관 중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나는 먹는 것만 먹는다는것.
먹어보지 않았거나 새로운 걸 시도하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런 내가 우즈베크 사람과 결혼하고 생전 처음 보는 음식들을 먹으려 하니 처음에는 반사적으로 거부반응을 보였었다.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뭘로 만들었는지 일일이 확인을 거치고 아주 조금씩 먹는 법을 터득했다.
다행히 내가 먹은 우즈베크 음식 중엔 내가 못 먹을만한 음식은 없었고 이제는 우즈베크 음식이라고 하면 일단 젓가락부터 들고 본다.
한국음식은 보통 짠 음식과 매운 음식이 있다고 하면 우즈베크 음식은 한국보다 더 짜고 기름이 많다. 그래서인지 우즈베크 음식을 먹으면 탄산수를 먹게 되는데 탄산수를 마시면 기름기가 낀 위를 깨끗이 씻어내려 주는 느낌이 들었고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우즈베크 사람들 대부분이 탄산을 즐겨마시는 듯했다.
탄산수를 내가 좋아하게 된 것도 우즈베크에서 탄산수를 물처럼 마시면서 습관이 되었다.
우리 가족은 코스트코에 장을 보러 자주 가는데 우리가 자주 사는 목록이 꼭 있다.
대용량의 올리브유와 밀가루 그리고 치즈, 탄산수, 피클, 등
밀가루는 한번 갔다오면 보통 6킬로 정도 사고 탄산수는 물보다 더 많이 사는 것 같다. 탄산음료를 안 마시는 대신 탄산수를 마신다 생각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그리고 치즈는 아침마다 빵과 함께 먹는데 우리는 아침에 빵과 치즈, 생크림, 잼, 등을 꺼내놓고 차와 함께 마신다.
우즈베키스탄은 한국과 다르게 주식이 빵인데 아메리칸 스타일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듯했다.
어머님이랑 같이 살기 전에는 남편과 함께 있을 때 우리는 아침은 거의 차려먹지 않았는데 어머님이 계시면서 평일엔 어머님이, 주말엔 보통 내가 아침을 차리는데 그래서 평일은 우즈베크식 식사, 주말은 한식을 먹는 우리집이다.
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처음엔 아침부터 빵을 먹으려니 푸석푸석 목이 메는 느낌도 들고 잘 삼켜지지도 않은 빵을 잘 먹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꾸준히 먹다 보니 괜찮아졌고 이제는 빵에 생크림을 듬뿍 찍어서 촉촉하게 먹고 치즈를 버터와 함께 넣어 먹으면서 누구보다 맛있게 우즈베크 아침을 먹고 있다.
우즈베크 식구들은 차에 설탕을 넣어서 먹는데 녹차에 설탕이라니.
몸에 안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설탕을 넣지 말라고 이야기했었지만 우즈베크 사람들은 아침에 차를 마실 때 설탕을 넣어먹으면 에너지도 생기고 삶의 활력을 더 일으킨다 하여 전통처럼 이어져 그렇게 마신다고 한다.
달게 먹는다고 잔소리하는 나지만 생각해보면 사탕과 과자와 같은 군것질을 입에 달고 사는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가끔 우습기도 하고 뜨끔하기도 했다.
우즈베크 가족과 함께 살면서 바뀐 식습관 중에 한 가지는 우즈베크 가족들은 차가운걸 잘 먹지 못한다.
샤로프든 과 카페에 가서 프라푸치노나 아이스커피를 마시면 남편은 먹고 싶어 주문을 하지만 빨리 먹지 못해서 천천히 마신다. 차가운걸 어렸을 때부터 먹는 습관이 안 돼있어서 차가운걸 조금만 마셔도 기침을 하는 남편이었는데, 물도 음료수도 냉장고에 안 넣어두고 밖에 꺼내 두면 미지근해서 투덜거리던 내가 식사를 할 때 차와 함께 마시면서 어느새 뜨거운 차에 나는 익숙해진 것 같았다.
아침에 눈을 뜨고 컴퓨터 책상에 앉을 때 나는 따뜻한 녹차나 커피를 마시는 습관이 생겼고 그러다 보니 차가운걸 더 이상 찾지 않고 물을 냉장고에 넣어놓지 않고 마시게 되었다.
어머님과 함께 지내면서 어머님이 차려주시는 음식을 먹다 보니 보니 집에서는 우즈베크 음식을 더 많이 먹게 되고 그러다 보니 쌀이 아닌 밀가루가 주식이 되어버렸다.
4년 가까이 먹으니 몸도 어느 정도 적응을 한 모양이다. 우즈베크 음식을 잘 적응해서 먹고살고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친정집에 가서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먹으면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날 것 같다.
대충 반찬을 내어준 엄마의 밥상인데 여전히 엄마가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고 배가 꺼지기도 전에 옥수수도 쪄주고 떡을 구어 꿀과 같이 내어주는 엄마의 간식도 너무 맛있다
한식을 먹을때면 우즈베크 사람과 결혼했어도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가 싶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 살아가면서 의도치 않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 잘 적응해나가는 동물인 것 같다. 먹는 식습관들 까지도.
그렇지만 깊은 어딘가에는 항상 원래의 것을 그리워하는 게 남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우즈베크 음식을 어머님께 많이 배워놔서 남편에게 음식으로부터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채워줄 수 있는 아내가 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