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lin Apr 22. 2020

외국에서 단순노동자로 살아가는 것

모든게 좋은 경험이 될거야

한국어 능력 상

특별한 전문 경력 없음


나의 남편은 한국에서 20대를 몸 쓰는 일로 10년 가까이 살아왔다.

본인은 그렇게 생각 안 하지만 우즈베크 나이로 보면 아직 20대인 젊은 남편이라 나는  남편이 이제는 본인에게 시간을 많이 투자하여 배우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을 해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요즘 그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남편은 현재 비닐공장에 다니고 있고 입사 4개월 차이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공장일을 하는 남편이기에 우리는 평일엔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평일은 오후 1시가 되면 남편의 점심 후 쉬는 시간 이어서 그때가 되어서야 하루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데 월요일인 오늘도 어김없이  남편은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장님이 한 달 전에 말하는 거야라면서 그만두라고라고 했어.

부장님이 한 달 뒤에 그만두라는 건지 한 달 전에 해고할지 말지 정해서 말한다는 건지 이해 못했다고 했다.


남편이 다니는 비닐공장엔 총책임자인 부장님이 있는데 그 사람은 월요일만 되면 사람을 쥐 잡듯 잡으며 잔소리를 하는 것 같다.

하루에 비닐 삼만 장은 만들어야 된다고 압박을 하는데 사람들을 기계로 보는 건가 싶기도 했다.

궁금해서 공장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100장에 팔천 원이 넘는 금액에 판매되고 있었는데 한 명의 인건비로 대체 얼마나 남겨먹으려고 저러는지 악덕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도 남들보다 일찍 하는 남편인데 어느 날은 마스크를 차에 두고 내려서 아침 조회 전  잠깐 나갔다가 고새 안에서는 일찍 오면 뭐하냐며 남편 욕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잘해도 뭐라 하는데 조금 실수하면 쌍욕이 날아오는 한국에서의 근로는, 모든 일터가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특별한 기술 없이 외국생활을 하게 되면 언어가 능통해도 외국인 노동자는 정말이지 외국인 노동자인듯하다.


나는 남편에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라고 얘기했지만 소심한 남편은 쉽게 잊혀지지 않은 듯했고 퇴근 후 남편은 오늘 정말 힘들었다며 나에게 다운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오늘 불량이 많이 나왔는데 또 욕을 엄청 먹었어..

자기만 그런 거야?

다른 사람들도 실수 많이 하는데 유독 나한테는 더 심하게 뭐라고 해.

자기가 맨날 말 안 하고 죄송하다고  하니까 그렇지!

다른 사람들처럼 할 말 좀 하고 살아


사실 나도 썩 할 말 다해가며 사는 성격은 아니지만 남편이 이런 대우를 받고 올 때면 속상해서 남편에게 남편보다 더 그 상사 욕을 퍼붓곤 했다.


내 친구는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이 힘들다고 말하면 와이프가 집안일 다하는데 나가서 그 정도는 해야지 라며 강하게 말하는 친구였고 사회생활하는 게 어렵지 남에 돈 버는 게 쉽냐며 오히려 남편을 타박하는데 그럴 때 보면 친구는 자존감이 높아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하고 오히려 남편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완전히 달랐다.

그냥 남편이 힘든 게 싫고, 가족인데 타지에 사는 외국인이라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느날은 위로금으로 전 직원에게 20만 원씩 통장에 넣어준 적이 있는데 남편도 그날 기분이 좋아서 점심시간에  나에게 자랑을 하고 퇴근하고 부랴부랴 은행에 가서 확인을 했는데 웬걸 남편 통장엔 10만 원이 들어와 있었다.

오래 일한 사람에게 더 주나 싶었는데 그것도 아닌 게 3년 넘게 일한 방글라데시 친구도 10만 원 받았다고 한다.

비닐공장에서 외국인 남자들에겐 큰 봉지 제작을 시키고 힘이 드는 건 전담해서 시킨다더니 상여금까지 차별을 한다.


남편이 10년간 한국 생활하며 외국인의 대우는 대부분이 열악했으니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일을 하면서 국내에서 돈을 벌어 받는 월급인데 그마저도 따갑게 보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외국에서 일하는 한국인도 이처럼 삶에 많은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걸 남편을 보면서 나는 간접적으로 많이 느끼고 있다. 그래서 학창 시절부터 언젠간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에 가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사그라들고 어느새 내가 태어난 곳에서 사는게  최고라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그래서인지 더 남편의 나라에 가서 살아야 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아마 그런 날이 더 빨리 올 것 같기도 하다.


여러 일을 겪으면서 나는 근로자에 대한 법은 무엇이 있는지 폭풍 검색을 했고 나도 모르게 지식이 쌓이기 시작했다.

외국인 근로자에게도 당당히 부당한 것에 대한 권리를 요목조목  따지고 싶었고 부장이 남편에게 버릇처럼 말하는 자른다는 말을 더 이상 못하게 하고 싶어 부당해고에 대한 정보와 해고예고수당에 관한 것들 기타 등등. 대비책으로 열심히 알아보았다

남편은 나에게 가끔 변호사님이라고 장난으로 부르는데 나는 정말이지 아는 것이 힘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남편은 이곳에서 일한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남편에게 꼭 이 공장에서 육아휴직을 쓰라고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직원을 눈에 가시처럼 생각하는 회사에 눈치 볼일도 없다고 생각했다.

합법적으로 체류하며 비자 연장비까지 꼬박꼬박 내고 세금 내면서 직장에서

고용보험 산재 건강 국민연금까지 다 내는데 한국에서 애 키우면서 못 받을 이유도 없지.



하지만 이런 분노가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오히려 감정 소모와 분노로 시간을 쓰고 있다는 것에 더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분노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나는 남편에게 감사하게 생각하자고 말하고 있다.

지금의 한국생활이 남편에겐 값진 좋은 경험이 될 것이고

이런 일들이 있을 때면 또 한편으로는 우리는 이제 두 명의 아이가 있어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하기에 더 열심히 살아보자고 남편과 다짐할 수 있었으니까.


최근에 읽은 책 나는 된다 잘된다에 감명 깊었던 글귀가 하나 있었다

“마음이 단단한 사람은 소원을 향해 가는 중 장애가 와도 개의치 않고 힘차게 전진한다. 그것이 인생의 선물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힘들었던 그때에 독서하는 습관을 갖게  것처럼

힘든 일이 지나가면  좋은 일이 생기고 지금 힘든 상황에서 신세 한탄하기보다 현실을  직시할  있게 되었고  과정에서 단단해질 것이라 믿는다.


쉬는 날이 많이 없어 쉬는 날만큼은 쉬고 싶어 하는 남편이지만 조금 달라져보자고 우리는 굳센 다짐을 하였다.


세상아 다 덤벼라!




매거진의 이전글 우즈베크 가족이 한 명 늘었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