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3년 차의 깨달음
여자는 결혼을 할 때 어떤 것을 따질까. 남자가 집을 해올 능력이 있는지 재산은 어느 정도인지, 직업은 뭐고 유머는 있는지 종교는 무엇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시엄마보다 무섭다는 시누이는 몇 명이나 있는지 외아들인지 아닌지 등등 많은 것을 따지고 본다. 막상 결혼하는 남자는 이에 다 충족되지 않은 채 좋아서 그냥 하는 결혼도 있겠지만 결혼이란 인생의 중대 사이다 보니 많은 것을 따지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우즈베키스탄 남자와 연애를 할 때, 그때까지만 해도 친구들은 설마 결혼까지 하겠어?라고 생각하였다
만남이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결혼한다고 친구들에게 통보하였을 땐 다들 자기 일처럼 나를 뜯어말렸다
그 사람 외국인 노동자잖아....
문화 차이는 어떻게 극복할 건데..
가난한 집에 시집가면 너 고생길이야
너네 부모님 어떻게 설득하려고?
고집 센 나를 끝까지 말리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들 중 가장 친한 친구의 이야기이다
이 친구는 나와 같은 해에 결혼을 하게 됐고 아기도 비슷하게 낳았다 그래서 항상 공감도 많이 가고 서로 의지하며 여전히 연락하며 지내고 있다
친구는 나와 다르게 원하는 조건의 이상형을 찾아 소개팅을 받았고 그 남자는 대기업에 다니며 시부모님은 조물주보다 높다는 건물주였다.
여기서 나의 남편은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아니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많이 고달픈 집안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도 차로 9시간이나 가야 하는 시골에 살고 있고 외아들에 아직 옛날 풍습이 있기 때문에 아들이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게 당연시되는 나라였다 여기에 문화도 다르고 종교도 다른 나는 이런 사람과 결혼을 하였다
왜 이런 남자와 결혼했냐고?
얼굴이 밥 먹여주냐 하겠지만 밥 먹여준다 느낄 정도로 핸썸함에
헌칠한 키, 날씬한 체형과 나와는 다르게 큰 눈과 오뚝한 코가 나를 끌리게 했다 그리고 이 남자.
가난해도 나 굶기진 않겠다는 확신이 있었다 공장에서 일해도 일할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힘들 때도 힘들다는 내색 한번 하지 않았고 무겁든 가볍든 짐 드는 건 항상 남자가 해야 된다는 사랑스러운 고지식? 한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고지식한 남자는 집안일을 안 할 것 같지만 가정적이고 아직까지도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사랑꾼이다
유명한 스타강사가 한 말 중에 현시점에서는 저평가되어있지만 그 사람의 품성을 보아 향후 우량주가 되기에 충분한 사람 즉 저평가 우량주와 결혼해라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런 사람과 함께 성장하며 스스로 나를 키우라고 말했다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가 아닌 나 스스로를 키우고 나 자신이 재산이 되어라라는 이야기다
남편은 현재 인력사무실에 나가서 일을 하는데 주 7일을 나가기도 하고 제발 좀 쉬라고 말리면 주 6일을 나간다. 하루하루 번다고 흥청망청 쓰지 않는데 가난하게 태어나 힘들게 번 돈이기에 더 절약이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이런 남편과 결혼해서일까
부족한 것 없이 태어나 부모님에게 받기만 하고 살았고 서른이 다 되어갈 때까지 결혼할 때 내가 저축한 돈은 고작 500만 원이 전부였다 월급 받으면 옷 사 입고 클럽 가고 새벽까지 달리며 술을 마시고 놀았던 기억이 전부다
이런 내가 갑자기 우즈베키스탄 남자랑 결혼한다고 부모님 앞에 데려갔을 때 어이가 없고 다들 의심하고 반대하기 바빴다
결혼을 한 지 3년 차가 되는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렇다. 아직도 가난하다. 이전에 이야기했던 친구는 서울에 살고 있고 똑같이 세 살 된 아이가 있지만 친구 아들은 항상 옷도 메이커만 입고 제주도 여행부터 기념일마다 호캉스라며 호텔 가서 사진을 찍는다
반면 우리 집은 참 달랐다
지방에 살고 있으며 아기 옷은 인터넷으로 싼 거 여러 장 사 입히고 아기들은 거의 외출을 안 하니 괜찮아라고 스스로 위안 삼고 외출복은 거의 안 사줬다
요즘같이 인터넷에 검색만 하면 육아 템 이라며 없는 물건 없이 다 있는 세상에 어떤 엄마가 안 사주고 안 입히고 싶을까
항상 마음속으로는 아직 멋모를 나이인 아기지만 벌써부터 다른 애들과 비교되게 키우는 것 같아 마음이 쓰라렸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친구는 시부모님이 해외여행에서 사 온 아들의 선물과 받은 용돈을 자랑하기 일쑤였다
나는 좋겠다~ 부럽다~라며 친구의 기분을 맞춰줄 뿐이었다
친구도 친구만의 고민이 있어 보였는데 시부모님이 손주를 보고 싶어 해서 주말마다 시댁에 가서 자고 오고 육아에 관련하여 이것저것 간섭하고 매일같이 카톡 메시지를 보낸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세상이 그렇게 불공평하지는 않네라는 생각도 하였다
엄마 아빠는 결혼 전에 항상 했던 말이 있다
지금 우리 부모님은 남편에게 볼 때마다 고맙다고 말한다
내 딸 사람 만들어줬어~우리 집 복덩이야~
내 남편은 무슨 말인지 잘 모를 것이다. 결혼 전에 내가 어땠는지! 원래 결혼은 100% 다 까고 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현재 시어머님과 같이 살고 있는데 주위에선
그럴 줄 알았어. 너 시집살이하는구나. 가난한 나라 사람들 한국 오는 거 좋아하니까 온 거지..
마음 한편에 있던 나의 생각이었지만 주위에서 이런 이야기를 대놓고 할 때면 현실이 이렇구나라는 생각에 씁쓸했다
결혼 초에는 갑자기 변한 생활환경에 낯설고 가난에 대한 불만과 불편함을 갖었을 때가 있었고 결혼 직후 남들을 많이 의식하고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현재는 내 삶이 그 누구의 삶보다 값지다고 생각된다
직장생활로 집안 일과 아이 볼 시간이 없기에 시어머님이 애기를 봐주면서 밥도 하시고 빨래 청소까지 다 하신다
주말이 돼야 나도 쉬기 때문에 아이와 함께 못한 시간을 채우며 집안일을 한다
손주를 돈을 받고 키우기 싫다며 시어머님은 절대 용돈을 받지 않으시는데. 이런 시어머니가 있을까 싶다
우즈베키스탄 여자들은 집안일의 대가들이 많지만 그중 어머님이 초 고수가 아닌가 싶다
집안에 먼지 하나 없이 매일 쓸고 닦고 하신다
사랑으로 애를 봐주셔서 나는 최대한 어머님과 같이 살면서 어린이집에 아기를 최대한 늦게 보낼 생각이다
물론 육아 방식의 차이로 가끔 트러블이 생기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상황이 아니기에 내 안의 나를 질책하고 다시 어머님께 잘해드린다
나는 새벽 기상을 하는 중인데 새벽에 일어나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신문도 보고 하루를 계획하며 살고 있다
나는 돈이 없지만 시간 또한 돈인 것을 깨닫게 되었고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 노력한다
지금 내 딸이 벌써 세 살이 되었는데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진 아이에게 존경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고
남편이 더 이상 막노동을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자다가도 눈이 떠지고 책을 읽게 된다
내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것도 꾸준히 자기 일하며 나를 응원해주는 남편 덕분이고 애기를 봐주시는 시어머님 덕분이고 엄마가 많이 케어 못해줘도 잘 커주는 내 딸 덕분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게 가난 덕분이다
아무리 바빠도 손주를 보고 싶어 하는 엄마 아빠에게 일주일에 한 번은 친정에 가고 매일같이 엄마 아빠에게 안부전화를 한다 독립 한번 안 하고 부모님과 같이 살아서인지 결혼하고 친정 부모님이 더 그리운 것 같다 반면 엄마 아빠는 드라마 시간에 방해된다고 나를 귀찮아하는데 시집보내고 앓던이 뽑으신 거 마냥 나에 대한 미련이 없어 보였다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나는 우량주가 되기에 충분한 사람과 결혼하였다 생각하고 나를 성장시키고 있는 중이다
아무것도 없이 결혼하면 고달프고 괴로운 삶이 될 것이라는 주위 사람들의 말과 많이 달랐다 어쩌면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더 열심히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다면 어느 순간 발등에 불이 붙는데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어 현재가 고달프지 않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 같다
성장은 빨리할수록 좋은 거니까. 어차피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을 거라면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피가 끓을 때 빨리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 마음을 아는 것이고 굶주린 자가 배고픔을 알기에
돈 많고 능력 있는 배우자를 만나면 꼭 장점만 있는 게 아닌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받는 게 있으면 주는 것도 있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