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남편과의 한국생활

너의 멘토가 돼줄게

by kelin


샤로프 오늘 피곤하지? 힘들면 오늘은 집에서 쉬어

가야지 무슨 소리야~


남편은 작년부터 집 근처 헬스장을 다녔는데 운동하는 걸 좋아했고 이틀에 한번 가는 것을 목표로 꾸준히 헬스장에 다니고 있다

한 달 이용료가 3만 원인 저렴한 곳이었다

나중에 헬스장 사진을 봤는데 엄청 오래되고 낡은 운동기구들로 가득했고 샤워실은 안 봐도 비디오일 것 같았다

이래서 헬스장이 쌌구나 싶어

헬스 이용 날짜가 지나고 나는바로 우리 동네 헬스장을 모두 뒤졌다 그리고

인터넷에 후기 좋은 헬스장 몇 군대를 방문하여 꼼꼼하게 물어보고 그중

생긴 지 얼마 안돼 넓고 깨끗하며 운동기구들도 많이 있는 곳이 있었다

그리고 트레이너분이 참 친절했기에 나는 바로 그곳에 등록을 하고 남편에게 회원권을 내밀었다


샤로프! 툭하면 우즈베크 여자들 살림 잘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지? 나 같은 와이프가 어딨어?

내가 와이프 말 잘 들으면 자다가 뭐가 나온다고 했지? (앞뒤 안 맞는 이 떡 이야기는 생색낼 때 내가 꼭 하는 말이다)

떡이 나온다고!

그래 ~ 그러니까 잘해


내색은 안 했지만 이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난번에 시부모님이 한국에 계실 때가 있었는데 시부모님이 딸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집 앞에 산책하던 중 자전거포를 지나가게 되었다

시아버님께서 우즈베키스탄에 자전거 한대를 사 가지고 가고 싶어 하셨다

시어머님은 아이를 돌봐주시느라 한국에 2년 정도 머물러 한국어 듣고 말하기의 기본적인 회화가 가능했다

자전거포 앞에 새워진 자전거를 가리키며 이거 얼마예요?라고 시엄마가 물었는데

비싸요~ 한마디만 하고는 주인은 바로 매장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들은 이후로 비싸고 사치스러운 물건을 좋아하지 않지만 남편에게만큼은 사치스럽지는 않더라도 한국사람들이 하는 것만큼은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샤로프는 운동이 더 좋아졌나 보다.

이제는 토요일 일요일 빼고 주 5일을 간다

남편은 돈 썼다며 핀잔을 주었지만 헬스장 사진은 보고 내심 좋았는지 흥얼거리며 세면도구를 찾고 있었다

갑자기 제대로 내조해줘야겠다는 발동이 걸려

인터넷으로 단백질 보충제를 검색하기 시작했고 트레이너들이 연신 좋다고 추천하는 보충제를 쿠폰과 카드 할인을 받아 미국 직구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

단백질 보충제는 물이나 우유에 보통 타서 먹는다고 들었는데 남편은 거기에 바나나도 넣고 날계란도 넣고 아몬드도 넣고~몸에 좋다는 건 죄다 넣고 흔들고 있었다


만들어 먹고 있는걸 넋 놓고 보고 있다가 갑자기 예전에 티브이에서 보았던 이상민의 프로틴 빵이 생각났다

이상민 씨는 광고 촬영 때 상반신 노출이 있어 급하게 다이어트 중이었는데 밀가루 대신 프로틴 가루를 써서 단백질 가득한 빵을 만들었었다

(이상민 씨는 상체에 문신이 있어 결국 상반신 노출은 못하고 팬티 광고였기에 애먼 하반신 노출을 해서 남편과 나는 폭소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바로 필요한 재료들을 구매해 레시피를 따라 만들어 보았다

바나나와 견과류 계란 저지방 우유와 마지막으로 프로틴 가루를 넣어 만들었는데 우즈베키스탄은 빵이 주식인 나라이고 샤로프는 평소에 견과류를 즐겨먹어서 잘 먹을 거라고 생각했다

말캉말캉 쫀득한 식감에 초코맛 단백질 파우더를 넣어 초코와 바나나맛이 났고 다이어트 식품으로써는 이거 제대로 맛있었다

무엇보다 건강한 맛이다

이럴 땐 내조 잘하는 아내가 된 것 같아 나 혼자 뿌듯함을 느낀다.


요즘은 시대가 변해 남자들도 육아와 살림을 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집안 살림은 여자들의 비중이 높은 게 현실이다

우리 집은 말할 것도 없이 공과금이나 세금 고지서가 날아오면 내가 도맡아 처리하는데

나는 매일 가계부를 적으며 지출을 관리하고 있다


남편이 외국인이기에 비자도 연장하고 식구들이 방문이라도 한다고 하면 방문 비자를 받아야 하기에 출입국사무소도 자주 가게 된다. 출입국사무소에 필요한 이런 서류를 처리하는 것도 한국어와 한국생활에 더 잘 알고 있는 당연히 나의 몫이다

나는 성격이 급해서 남편이 하기보다 내가 그냥 빨리 해결하려고 하기에 더 그러는 것 같다

보통 남편이 하는 일까지 내가 도맡아 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는데 그러다 보니 가족일이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고 있다


샤로프는 한국생활이 8년이나 되었기에 도와주지 않아도 혼자 잘 해나가지만

나는 아직도 아기 다루듯 하는 것 같다

물가에 내놓은 애 같은 느낌이랄까


자기? 나 허리에 전기 치료받으려고~잘못 잤는지 허리 아파!! 병원 가야겠어

나 일하고 있어서 바빠요!! 사거리에 1층에 화장품 가게 있잖아 병원 거기 있어 알지?

응~


자기? 이비임. 후-과 여기 맞아?

한의원 가야지!! 이비인후과는 코랑 귀 고치는 곳이잖아

아 맞다! 알겠어~

ㅠㅠ (나는 불안한 마음에 지도를 캡처해서 보내주었다)


아직도 2% 부족한 남편이다.


남편에게 점심때면 전화가 오는데 근무 중이라 바쁠 때 꼭 남편은 수수께끼를 낸다


자기? 돈 바꾸는 거 뭐지?

무슨 돈? 환전하려고?

응 거기 어디야?

환전소?

아 맞아! 고마워 자마르(친구)가 물어봐서


자기? 궨우ㅐㄴㄹ 이거 뭔데?

뭐라고?

궨우ㅐㄴㄹ!! 어떤 아저씨가 얘기하길래

자기 나 일하고 있어서 바빠!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정확히 듣고 물어봐야지



자기? 출입국사무소 가야 되는데 다브르형이 예약 좀 해달래(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출입국사무소는 미리 예약을 하고 가야 된다)

맨날 해달래! 예약하는 거 배우라고 해!! 출입국사무소 갈 일이 왜 그렇게 많아 그 집은!!!

부탁했어 한번만 해줘

부탁 넙죽넙죽 계속 받아올 거야?

부탁이야~~(애교)


남편은 가까운 사이가 아니어도 거절을 잘 못해 자기 일처럼 도와주고 지인의 공항 픽업부터 외국인인 누가 한국생활에 어려움을 느끼면 한국인 아내가 있다는 걸 주변에서 알기에

부탁 거리를 받아와 어느 순간부턴 생전 일할 때 말고는 누구를 돕거나 해본 적이 없는 내가 어느 순간 그들의 도우미가 되었다

남편뿐만 아니라 남편의 지인 이제 하다못해 일할 때 만난 나이지리아와 터키 친구들까지도.

해줄 때마다 인상팍팍쓰고 짜증 내곤 했는데 그래도 그렇게 도와주고 나니 남편의 주위에 사람도 더 많이 생기고 그들도 소소하지만 작은 선물들로 보답도 해주었다. 무엇보다 남편이 착한 심성 때문인지 남편은 한국인 외국인 할 거 없이 나가면 아는 사람을 자주 마주치는데 외롭지 않은 한국생활을 하고 있음이 느껴져서 요즘은 누구든 너그럽게 도와주고 있다


때론 귀찮고 지치고 힘들어서 나도 남편에게 기대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렇다고 외국에 나가서 이민자로 사는 건 더 자신이 없다

내 성격도 누구한테 마냥 도움만 받고 사는 성격도 못되고 차라리 내가 알아서 척척 도와주는 게 더 편하다

또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무언가 장벽으로 못하게 되면 그것만큼 답답한 게 없을 것 같다


우즈베키스탄은 이슬람 문화여서 돼지고기를 안 먹고 우즈베크는 바다가 없어 해산물을 접할 기회가 많이 없다 보니 문어나 조개, 킹크랩을 보면 샤로프는 진작에 저만치 도망간다

해산물이 몸에 좋으니 조금이라도 먹이려고 잘게 다지거나 국물을 우려 해산물을 넣기도 하는데 조금씩 해주니까 그래도 지금은 좋아하진 않는데 그럭저럭 잘 먹는다

음식점에 가거나 마트에서 장을 볼 때 못 먹는 음식 때문에 성분을 그때마다 확인해야 되는데

딸내미에게 간식 사줄 때 유기농인지 아닌지, 당과 나트륨이 얼마나 들었는지 성분을 따질 때와 같은 느낌이다

처음에는 식품을 살 때마다 무엇이 함유되어 있는지 보며 사는 게 귀찮고 불편하고 불만스러웠지만 먹는 건 매번 비슷하기에 이제는 안 봐도 대충 어떤 성분으로 만들어진 식품인지 잘 안다

다행히 샤로프는 반찬투정도 안 하고 해주는 음식은 그냥 아무거나 다 잘 먹는데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은 것 같았다

형편없는 나의 요리 실력에도 다 잘 먹고 너무 잘 먹는 남편을 보면 며칠 굶었나 싶은데(이럴 때 보면 짠해진다..........) 엄마의 마음이 이런 걸까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나는 분명 자식이 하나인데 둘을 키우는 느낌이다

남편을 보면 보호본능이 생기는데 아마 남편은 외국인이고 그러다 보니 한국 사람인 내가 한국생활에 더 익숙하고 남편보단 잘 알기에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서 뭐든 내가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가끔 가장이 이런 거겠군 하는 무게감도 느끼기도 한다


작년 우즈베키스탄에서의 3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우즈베크어도 못하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남편에게만 의지하며 살면서 많이 힘들었었다

그때 나의 손과 발이 되어준 남편이 있어줘서 그곳에서의 생활을 조금이나마 적응하며 이겨낼 수 있었지만. 타지에서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나는 그때를 잊지 못한다


한국에서의 외국인들에 대한 거친 시선과 안 좋은 선입견에 8년이 지난 지금도

이민자의 생활은 참 힘들고 험난해 보였기에 제일 가까이에 있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도와주고 싶었고 한국에서 살고 있는 동안만큼은 앞으로도 내가 남편의 엄마가 되어보려고 한다


뭐 나중에 우즈베키스탄이나 한국이 아닌 다른 곳으로 이민 가게 되면 그때는 남편이 나에게 든든한 가장이 되어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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