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
감상 https://youtu.be/mgMLpnocDa0?si=dnjvtC7ntL4Wyei8
1.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이다. 절대적 진리는 사라지고 불확실성이 커진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할지 혼란스럽다. 현대인은 누구나 실체를 알 수 없는 크고 작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산다. 급변하는 미래에 대처하지 못해 뒤처질까 하는 두려움,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 때로는 스스로의 존재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면의 두려움까지 떠안고 살아간다.
두려움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고대로부터 인류는 예측 불가능한 자연과 불가사의한 힘, 강력한 신들의 능력 앞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또 자신이 느끼는 실체 모를 두려움을 신들에 의지해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많은 종교는 그 두려움을 다스리고 평화를 찾으려는 보편적인 통찰을 공유한다. 이런 맥락에서 성경 역시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선포한다.
2.
구약 성경 속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는 전쟁과 주변 강대국들의 억압 속에서 소수자적 처지에 놓이는 일이 많았다. 이러한 국가적 고난의 상황 앞에서 하나님은 격려와 위로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우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 41장 10절) 이 말씀은 고통받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변함없는 임재와 보호를 약속한다. 또 새로운 땅을 정복해야 하는 막중한 사명 앞에서 두려워하는 백성들에게 “내가 네가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게 하느니라 하시니라”(여호수아 1장 9절) 라고 말씀하며 용기를 북돋아 준다. 존재론적인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을 선포하는 이 말씀은 특수한 상황 속에서 주어졌지만,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 속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말씀이자 강력한 약속이다.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곧 용기와 담대함의 근원이라는 사실이다.
3.
신약 성경에 와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더욱 심오하게 완성된다. 외적인 위협으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넘어서는, 내면의 불안과 관계적 두려움을 해소한 핵심 원리가 된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복음 14장 27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상의 일시적 평와와 다른 평안을 주시겠다고 선포한다. 두려움의 근원을 제거하는 근본적 평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가능하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한일서 4장 18절) 이 말씀을 보면 두려움의 궁극적인 해답이 바로 ‘사랑’에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온전한 사랑은 모든 두려움을 내쫓는 강력한 힘을 가진다. 나와 너의 관계를 새롭게 세우는 길은 예수를 통해서 가질 수 있는 두려움 없는 사랑 뿐이다. 이처럼 성경은 하나님의 임재와 예수 그리스도가 완성한 사랑 안에서 우리가 어떤 두려움도 극복할 수 있음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4.
두려움의 방향은 두 가지다. 나를 향한 두려움과 타인을 향한 두려움.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오늘날 우리 사회의 소수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특히 성경에서 그 존재와 해석에서 첨예하게 부딪히는 성소수자의 맥락에서 더욱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다.
성소수자 본인과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각기 다른 종류의 두려움을 경험한다. 먼저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해 사회적 배제와 차별, 폭력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사랑과 인정을 갈망하지만 동시에 깊은 고독과 존재론적인 불안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나는 왜 다른가?”, “나는 정말 괜찮은 존재일까?”와 같은 질문 속에서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의심한다. 사회는 물론 교회 공동체로부터도 배척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 물리적·정신적 안전에 대한 위협은 성소수자들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이런 두려움에 대해 시편 139편의 말씀이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내가 주의 눈 앞에서 벗어날 수 없나이다. 내가 주의 손 안에 있나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 사로잡힌 개인의 내밀한 고백이자, 하나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온전히 아시고 지으셨다는 믿음의 확신이다. “하나님이 너를 지으셨고, 그 형상을 따라 너를 사랑하신다. 그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나의 온 존재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느낄 때, 어미닭이 알을 품듯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 있는 것과 같은 평안함 속에 머물 수 있다.
두려움은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도 존재한다. 익숙하지 않은 것, 이해되지 않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에서 오는 두려움이다. 전통적인 성경 해석과 교리에 반하는 것 같은 성소수자의 존재를 마주할 때 느끼는 혐오와 낯섦은, 실은 두려움이다. 신학적 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두려움, 도덕적 가치관에 대한 혼란과 그로 인해 기존 질서가 무너질 것이라는 불안감이다.
사도행전은 이러한 불안감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사도행전 10장 34-35절) 여기서 베드로가 말하는 ‘외모’는 눈에 보이는 형식, 배경, 사회적 조건이 아니라 한 사람의 내면과 존재 자체를 의미한다. 본문에서 쓰인 헬라어 πρόσωπον(prosōpon)은 문자적으로 ‘얼굴’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모든 외적인 조건과 사회적 지위를 포괄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그 사람의 내면과 경외함, 곧 관계와 행위이지 출신이나 민족, 성별이나 성적 지향과 같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경계선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본문은 고넬료와 베드로의 만남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종교적, 문화적 장벽을 허무는 선언으로 주어졌다. 오늘 우리의 자리에서는 소수자와 비소수자 사이의 ‘두려움의 벽’을 허무는 복음적 원리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조건에 따라 취하지 않으신다면, 우리도 인간이 만들어 놓은 차별의 근거를 절대적인 것으로 삼을 수 없다. 두려움은 하나님의 사랑과 환대를 가로막는 벽이다. 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온전한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사람을 판단하고 배제하는 모든 조건적 잣대를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보시는 본질로 서로를 바라보는 사랑의 시선을 회복해야 한다.
5.
위대한 작곡가에게도 이러한 두려움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을 찾아볼 수 있다.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의 경우다. 차이코프스키는 1840년 러시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였다. 10살인 1850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황실 법률학교에 입학하여 9년간 공부했는데, 이곳은 남학생들만 있는 환경이었다. 전기에 따르면 그는 이 시기에 “몇몇 학우들과 강렬한 감정적 유대”를 형성했다. 이후 그는 음악원의 첫 학생 중 한 명이 되었고,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음악 이론을 가르친다. 그의 작품들은 아름다운 선율과 인상적인 화성, 다채로운 오케스트레이션으로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다.
그의 대표 작품 중 하나인 교향곡 4번은 격정적이고 드라마틱한 전개로 유명하다. 특히 작곡가 자신이 “운명”이라고 명명한 주제가 1악장 도입부에서 강렬하게 등장한다. 끊임없이 다가오는 비극적인 운명과 그에 맞서는 인간의 고뇌를 표상하는 테마는 차이코프스키가 겪었을 개인적인 고통, 특히 당시 사회적 통념에 어긋나는 그의 성 정체성으로 인한 내면의 갈등과 외적인 압박을 짐작하게 한다. 음악이 뿜어내는 다소 어두운 감정은 황실 법률학교에서 겪었던 동성을 향한 ‘강렬한 감정적 유대’와 이후 약혼 실패와 같은 개인적 비극, 사회적 기대와 자신의 본성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 그리고 사회적 비난에 대한 두려움을 반영한 듯하다. 강렬한 금관악기의 팡파르인 ‘운명 동기’는 사회적 편견과 차별, 배제와 같은 피할 수 없는 외부의 압력을 상징하며, 급변하는 음악의 감정선은 작곡가의 내적 혼란과 고뇌를 드러낸다.
6.
성경은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 완전한 사랑, 그리고 서로를 향한 환대의 정신이다. 나와 다른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환대하는 공동체, 바로 그 안에서 우리는 두려움 없는 삶을 배운다. 성소수자가 겪는 사회적 배제를 치유하는 힘도, 그들을 낯설게 바라보는 이들의 경계심을 허무는 힘도, 결국 하나님의 사랑이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이 사랑 안에서 서로의 다름을 두려워하지 않고 맞이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7.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4번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1악장의 격렬한 고뇌와 비극적 분위기 속에서도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서정적인 선율은, 그 고통 속에서도 희망과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인간의 노력이 엿보인다. 또한 다른 악장들로 나아가면서 점차적으로 운명에 저항하고, 삶의 기쁨과 위로를 찾아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비극적이고도 달콤함이 느껴지는 2악장은 두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사랑과 연대를 향한 갈망이 느껴진다. 심심한 유머와 상큼한 농담처럼 터지는 활기찬 3악장, 삶의 축제와도 같은 분위기로 환희를 터트리며 마무리하는 4악장까지, 이 작품은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삶을 긍정하고, 기쁨과 사랑을 선택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교향곡의 흐름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성경의 메시지와도 맞닿는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 속에서 개인의 고뇌와 사회의 압박이라는 ‘운명’에 직면하더라도, 그 안에서 사랑과 용기, 그리고 궁극적인 평화를 찾아가는 여정을 발견한다. 마치 우리에게 끊임없이 다가오는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며, 사랑 안에서 모든 것을 이겨낼 힘을 주신다는 메시지처럼 말이다. 고통을 묘사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마침내 사랑으로 나아가는 용기, 마지막까지 믿는 용기, 좌절과 고통 속에서도 신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 용기가 이 교향곡 속에 담겨있다.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으며, 참 사랑은 모든 두려움을 내쫓는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겉모습을 보지 않으신다면, 교회 역시 마땅히 하나님의 포용적인 사랑을 세상에 실천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단순히 소수자를 ‘참아주는’ 것을 넘어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사랑받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급진적인 환대가 필요하다. 그 사랑은 두려움에 기반한 배제의 벽을 허물고, 모두가 안전하고 가치있는 존재라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사랑과 환대를 강조한 성경의 정신으로 다름을 포용하고 인정할 때, 우리를 얽매는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진정 자유로워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