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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 Apr 16. 2021

우리 동네 피아노 학원은 토끼참새다람쥐병아리가 있어

아이 예찬

아이들은 걷지 않는다. 항상 뛴다. 통통통. 앞다리가 짧고 뒷다리가 유독 길어 걸을 수 없는 토끼처럼. 총- 총- 조그맣게 점프한다. 짧은 거리는 느리게 뛰고, 먼 거리는 전속력으로 빠르게 뛴다. 참새처럼 콩콩, 발을 모아 뛰기도 하고 다람쥐처럼 쌩, 바람 소리가 날듯이 잽싸게 달리기도 한다.


아이들 머리카락에서는 막 쪼갠 수박 향기가 난다. 옅고 투명한 냄새. 여름 냄새. 펌을 한 적도 염색약으로 물들인 적도 없는 머리칼은 베틀로 곱게 짜낸 비단실처럼 윤기가 돈다.


땀에 푹 절은 머리카락이 반질반질한 이마에 딱 달라붙어 있다.

선생님, 땀이 자꾸만 솟아나요ㅡ 심각한 사건이라는 듯이 아이들은 말한다.

그렇네, 땀이 나네, 무슨 일일까? 내가 탐정처럼 물으면 '너무, 햇살이 강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라고 심드렁하게 말하고 땀을 훔친다. 이런 것쯤 염려 마세요, 하는 듯한 의젓함이 날 설레게 한다.


아이들의 부드러운 몸은 뼈가 심긴 인형 같다. 멜론처럼 작고 둥근 머리로 골똘히 생각하고, 하나 둘 셋 숫자를 세고 계이름을 읽는다. 작은 입술로 엄마- 아 선생님이지- 한다. 빠르고 높은 말소리는 배고픈 새끼 새가 노래하는 것 같다. 아침해가 뜰 무렵 뒷산에서 들리던 높고 조그만 울음소리. 연한 마음은 미처 헤아리지 못한 데서 자주 다치고, 울거나 토라지면 달래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 아이들은 언제나 진지하다. 귀여워만 해서는 낭패다. 투명하지만 견고한 세계가 있고, 저마다의 고민과 후회가 있다.


아직 여물지 못한 손 끝을 잡아줄 때면 점토로 빚은 듯한 통통한 손가락은 자꾸만 꼼지락꼼지락, 건반을 간지럽히다가 삐죽 미끄러져 내려오기 일쑤다.

어려워요, 재밌어요ㅡ새끼 새들이 삐약삐약 노래한다.


자, 손가락끼리 동굴을 만들어 주는 거야. 이 동굴 안에 토끼 친구가 있는 거야. 어흥, 무서운 호랑이를 피해서 손 동굴 안에 쏙 숨은 거야. 손 동굴이 무너지면 토끼 친구가 어떻게 될까?

안돼요- 안돼요......

아이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건반 위로 손등을 동그랗게 세운다. 이크. 나는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가끔 아이들은 내게 함부로 몸을 던져 안긴다. 조심성 없이. 한없이 신뢰한다는 듯이. 자신을 받아줄 것이라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전속력으로 달려와 와락, 안긴다.

폭 안기며 일어난 흙먼지 냄새는 씻지 않은 사과처럼 풋풋하다. 집집마다 다른 향긋한 섬유유연제 냄새를 맡으면 사랑받는 아이구나, 안도한다.


몸에 힘을 빼고 치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ㅡ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처럼 녹는 시늉을 하며 주르륵, 나에게 몸을 기댄다. 낑낑거리며 무거운 척을 하니 꺅꺅, 배를 잡고 웃는다. 내 몸과 닿아있는 가느다란 팔에서 콩콩 조그만 맥박이 느껴진다. 작은 심장이 갓 태어난 동물의 날갯짓처럼 파락 파락 뛰고 있다.


아이들은 매일 눈치채지 못할 속도로 자란다.

연둣빛 이파리가 조금씩 녹색으로 짙어지듯이. 성실히 울창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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