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좋은 어른이고 싶은 사람의 5가지 규칙
'좋은 어른'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누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지? 사람마다 마음속에 좋은 어른상으로 꼽는 인물들이 있을 것이다. 유일무이한 존재인 부모님일 수도 있고, 학창 시절 내게 좋은 영향을 끼친 은사님일 수도 있다. 우러러볼 수 있는 인품 좋고 능력 있는 직장상사가 될 수도 있고, 방송 매체에서 가슴을 울리는 명언을 남긴 유명인사나 연예인일 수도 있다.
내겐 내려놓지 못하는 욕심 하나가 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어린이들에게 좋은 어른이 되고 싶은 욕심.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지만, 나를 거쳐가는 모든 어린이들에게는 무조건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모든 어린이들에게 사랑받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어린이들을 존중하는 나의 방식이 그들에게 긍정적 영향과 만족감을 주는 것이다. 어린이들의 속마음을 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오해하지는 말자고 다짐한다.
어린이들에게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 나름대로 세운 규칙 다섯 가지가 있다.
1. 어린이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2.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3. 나와 있었던 모든 일은 보호자에게 숨기지 않아야 한다.
4. 노력으로 이룬 것 아닌 외모나 옷차림, 소유한 물건을 칭찬하지 않는다.
5. 어린이가 약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이 다섯 가지 규칙을 자세히 풀면 다음과 같다.
첫째, 어린이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어른들은 제 경험치가 풍부하고 날카로운 눈썰미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 통찰력이 있다고 자만해서는 안된다. 눈 앞에 있는 특별한 존재를, 살면서 내가 만났던 몇 안 되는 어떤 유형으로 분류하고 속 편하게 집단화시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첫인상이나 한두 시간의 수업태도로 아이를 평가하지 않는다. '이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라는 말로 어린이의 개성을 뭉뚱그리지 않는다.
부모님과 대화하는 만큼 아이와도 깊이 이야기 나누어야 한다. 어린이를 사랑하기에 앞서 존중한다. 존중한다는 것은 어린이를 있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부모에게 딸려있거나 작은 인간 집단의 한 표본처럼 건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린이는 개별적인 존재이며 복잡하고 다층적인 자아를 가진 존재임을 인정한다.
둘째,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노력한 결과에 대한 보상이라던지, 정확한 시간은 정하지 않았지만 미래에 어떤 행사를 하기로 입 밖에 냈다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 지키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 이야기를 분명히 꺼내어 '약속한 내용을 되짚어 말하고, 왜 실행하지 못하는지 이유를 설명하고, 실행하지 못하는 것을 사과'까지 해야 한다. '다음에 꼭 지킬게' 같은 기약 없는 말로 얼버무려선 안된다.
부모님께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한다면 반드시 지켜주어야 한다. 학부형께 이야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되는 사건들도 종종 있다. 하지만 어린이와 이야기 나누었을 때 그가 알리기 원하지 않는다면 나는 부모님께도 말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돈을 훔쳤다거나, 누군가를 괴롭혔거나 반대로 괴롭힘 당했다거나. 나에게 비속어나 욕을 사용하거나 거짓말을 해서 한 차례 야단을 듣고 난 후도 마찬가지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다짐받을 때 어린이가 '엄마한텐 말하지 마세요'라고 한다면, 역시 부모님께 말하지 않는다.
셋째, 나와 있었던 모든 일은 보호자도 알고 있어야 한다.
나는 조금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 어린이와 이야기 나눈 후에 꼭 '오늘 있었던 일을 집에 가서 엄마, 아빠께 말씀드리도록 해'라고 말한다. 나와 어린이 사이에 일어난 일들 중에 부모님이 알아선 안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말과 행동이 왜곡되어 전달되는 일도 없어야 한다. 내 입에서 '이건 선생님과 둘만의 비밀이야'라고 말하는 경우는 다른 친구들 몰래 하리보 곰젤리나 츄파춥스 사탕을 손에 쥐어줄 때뿐이다. 오히려 간식을 선물할 때조차도 '집에 가서 엄마 허락 맡고 먹어야 해'라고 일러둔다.
때론 목소리 높여 꾸중할 일도 생긴다. 그럴 때에도 머릿속으로 '부모님이 옆에 계시는 상황에도 내가 이렇게 했을까'를 생각한다.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학원 CCTV로 찍히고, 부모님들이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물론 그런 이유로 어린이들을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가 가진 스마트폰으로 몰래 내 수업내용을 녹취해간다고 해도 떳떳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예의를 갖추어 대한다. 내가 어린이를 피사체로 사진을 찍거나 연주 동영상을 촬영하거나, 머리를 묶어주거나 수건으로 손을 닦아줄 때도 꼭 이 일을 엄마에게 모두 이야기하라고 말한다. 학원에서 생긴 일 중에 아이가 보호자에게 말할 수 없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넷째, 외모나 옷차림, 소유한 물건을 칭찬하지 않는다. 칭찬은 스스로 노력으로 이룬 것들만.
칭찬과 감탄은 다르다. 공주 드레스를 입고 왔거나 머리카락을 멋지게 염색해서 온 날, 그 변화를 짚어주거나 감탄할 수는 있지만 '칭찬'하지 않는다. 내가 칭찬하는 것은 오직 노력으로 이룬 것들이다. 잘 되지 않았던 부분을 연습으로 잘 연주하게 되었거나, 매번 틀렸던 음악이론을 며칠 동안 공부해서 외우게 되었을 때와 같은. 그때는 호들갑 떠는 과장된 리액션과 함께 달콤한 간식도 보상으로 따라 나간다.
화려한 공주 망토를 두르고 오거나 선물 받은 값비싼 피규어를 들고 학원에 등장했을 때, 생각보다 선생님의 반응이 시큰둥해서 실망한 어린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선생님의 관심사는 타고난 것이나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에 있지 않다는 것을, 오직 그들이 노력으로 이룬 것에만 흥미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더욱 신경쓴다.
다섯째, 어린이가 약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음악교육자 카페에 가면 '아이들이 버릇없어요, 받아주면 기어올라요'라는 토로를 심심치 않게 만난다. 선생님이 감당하기 힘든 어려운 어린이들도 분명 있다. 그럴 땐 어른의 용기로 한발 굽히고 들어가서 일대일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진중하게 이야기를 나누고도 고쳐지지 않는다면 그건 선생님의 잘못이 아니다. 너무 괴로워 할 필요가 없다. 당장 어린이의 행동거지를 내 기준선에 맞춰 바로 잡으려 할 필요도 없다.
어린이가 어른에게 기껏해야 할 수 있는 나쁜 짓은 '예의 없게 구는 것' 뿐이다. 어른을 무시하거나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것에 비해 우리가 어린이에게 할 수 있는 건 훨씬 많다. 언어폭력 및 신체 폭력, 정서적 학대 등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것' 이상의 해악을 끼칠 수 있다. 부드러운 어른이라면 바람에 눕는 풀처럼 어린이에게 져줄 수도 있어야 한다.
단호한 어른의 모습으로 어린이의 태도를 꾸짖을 수도 있지만 그 목적은 그들를 보호하는 데 있어야 한다. 때리면서까지, 인격을 모독하면서까지 훈계하고 교정해야 할 일이 수업 공간에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내 손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면 전문가의 조언을 듣는다. 어린이와 둘만 해결할 게 아니라 학부형과도 대화해야 한다.
이 다섯 가지 규칙은 당연하고 일반적이다. 그래서 더 잊기 쉽다. 늘 입으로 곱씹으며 머릿속에 새겨둔다. 때로는 나의 엄격함이 아이들을 옥죌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공평하지 못한 잣대를 들이대어 그들을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부끄러운 권위주의를 내려놓지 못한 내 태도는 어른의 포용력을 기대했던 어린이들의 말랑말랑한 기분을 종종 얼어붙게 했을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천진하게 웃어 보이며 내 눈 앞의 단단하고 질긴 막을 걷어낸다.
어린이들의 그 눈부신 단순함이 얼마나 빈번히 나를 구원했는지 모른다. 부족한 어른은 아이들의 순수와 너그러움에 언제나 빚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