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알바는 알바일 뿐이다

열심히 일했지만 잘렸습니다

by 글쓰는토마토



미안하지만, 오너로서 냉정하게 말할 수 밖에 없네요




잘리기 하루 전, 퇴근 시간 즈음 사장님은 나를 조용히 불러내더니 이렇게 운을 뗐다.



지난 3개월 동안 열심히 해준 것도 알고, 일도 잘해줘서 이런 말하기 더 미안하고 힘들지만, 오너로서 냉정하게 해야하는 말을 한다고 했다. 요지는 월세가 많이 오르고 수익이 거의 남는 게 없어서 오전 알바인 나를 자른다는 말이었다.



듣자마자 뒤통수가 얼얼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에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꿈이라도 꾸는 듯 그 순간 지난 3개월, 주 6일 동안 열심히 일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정말 가슴에 손을 얹고 열심히 일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나날들이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게 매일매일 엉덩이 붙힐 틈도 없이 일했다. 지난 3개월 동안 실수하지 않으려고 머리를 쥐어짜며 일했다.



이제야 일이 손에 좀 익었다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뒷통수를 맞다니…….

그동안 내가 한 노력들은 뭘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기가 먼저 오래 같이 일해달라고 부탁할 때는 언제고. 이렇게 와서 코풀듯이 간단하게 사람을 자른다고?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빙빙 돌았다.



하지만 그 어떤 말도 내 입에 올릴 수 없었다. 이 상황에서 어떤 말이 침묵보다 의미가 있을까?

허탈해진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다음 날, 마지막 근무를 했다. 반쯤 예상한 대로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셋이 모여 명랑 연극이라도 하듯 활기찬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서로의 입장을 애써 모른 척 하며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유리를 쳐다보듯 조심스레 표정을 살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 날까지 웃으면서 헤어짐을 고할 수 있었다.



나는 마지막 퇴근길을 털레털레 걸어오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억울함, 서운함, 얼떨떨함, 미련, 일말의 후련함.

온갖 감정들이 뒤섞여 가라앉은 마음을 더욱 아래로 짓눌렀다.



이게 을이구나.

고용주가 갑이고 갑이 자르면 잘리는 게 을이었다.

머리로만 알고 있었던 내용들을 실제로 겪고 나니 내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구나 새삼스러웠다.

오랜만에 집을 벗어나 시작한 일이었다. 그래서 매일 최선을 다해 임했다.

하지만 그건 아무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진지하게 열심히 일한 내가 바보같다고 느껴졌다.

알바일 뿐인데. 언제든 잘릴 수 있는 알바일 뿐인데. 난 왜 그렇게 매일 열중했던 거지?

그러는 와중에도 마음 한편으로는 혹시 내가 무언가 실수해서 잘리는 건가?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했다.

그래서 일말의 찜찜함을 남기지 않기 위해 사장님께 직접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자 아무리 알바가 뛰어나도 가게 수익이 남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는 냉정한 현실을 집어주는 말이 돌아올 뿐이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으니 신기하게도 마음 정리가 되었다.

찬찬히 돌아보니 열심히 일한 건 가게를 위한 게 아니었다. 그게 바로 나의 방식이었다. 어떤 일이든 진지하게 임하는.



그래서 후회하지 않았다.

잘려도 떳떳했다.

입장이 바로 서자 마음이 정리되었고,

이번 일을 그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하나의 에피소드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다만 확실히 깨달은 건

알바는 알바일 뿐이라는 것.


열심히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언제든 관둘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는 것.

어느 순간 짐을 싼다고 해도 덜 억울하려면,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경험이 내게 그것을 가르쳐주었다.



이제는 굳이 애쓰지 않아도 내 몸이 먼저 눈치를 챌 것이다.

매번 무거운 책임감으로 일하던 내게 비로소 '선 긋는 감각'이 생겼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뭐라도 남긴 게 있다면 그 시간들이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증거니까.

그것만으로 지금 내겐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었다.












작가의 이전글10. 누군가에 대한 판단은 미룰수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