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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환 Jul 05. 2020

전구

한 밤중에 라면을 끓이다가 문득

머리 위에 떠있는 노란 전구를 바라본다

무슨 질긴 줄 같은 것에 매달린 채

힘겹게 축 늘어져 있는 전구


환한 부엌은 그 전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듯했고

반짝반짝 빛나는 국자, 접시, 냄비, 수저

그런 것들은 그저 저희들끼리 수근댈 뿐이었다


창문을 조금 열자

전구는 건너편 건물 벽으로 건너가

지친 숨을 몰아쉬곤 했고

창문을 닫으면

어김없이 제자리로 돌아와 다시 매달린다


부엌을 나서면서 스위치를 내리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분명히 그곳에 매달려 있을

전구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자신이 뿜어내고 있는 완벽한 어둠 속에

편안히, 심무가애(心無罣礙) 

매달려 있는, 무유공포(無有恐怖)

전구, 구경열반(究竟涅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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