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hm's Implicate Order and Enfolding
어항 속의 물고기
기계론적 세계관이 이 세상을 외재적 질서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전체로서 하나인 우주를 인간이 자의적으로 나누고 그 나눈 부분들을 각각의 독립적인 실체로 파악해서 그것들 사이의 상관관계를 살펴본다는 뜻이다. 봄은 이러한 상황을 또 다른 비유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Bohm, 2002).
아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커다란 직육면체의 어항 안에 물고기가 한 마리 있다고 가정하자. 이 어항 속의 물고기는 측면에서 비추는 카메라A와 정면에서 비추는 카메라 B에 의해서 관측되고 있다. 옆 방에는 두 대의 모니터가 놓여있고 각각 카메라 A와 카메라 B가 송출하는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두뇌라는 방에 갇혀서 의식에 비춰지는 감각자료 (모니터에 비춰지는 영상)만을 통해서 우주의 본모습 (옆방에 있는 어항)을 추론해내야만 한다.
기계론적 세계관은 두 모니터에 나타나는 물고기를 서로 다른 독립적인 실체로 보는 관점이다. 실제로 달라보일 것이다. 하나는 앞모습이 보이고 다른 하나는 옆모습이 보일테니까. 이때 모니터 A와 B에 비춰지는 물고기의 움직임 사이에는 분명 일정한 상관관계가 있기 마련이다. A 영상 속에서의 물고기가 꼬리를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B 영상 속의 물고기의 머리 움직임이 결정되는 것이 "발견"될 것이고 이에 관한 인과론적 이론이 수립될 것이다.
하나의 물고기가 두 화면에 나타나는 상황은 3차원의 2차원적 표현이다. 이 두 이미지 사이에는 분명 상관관계가 있게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3차원의 세계에서 관찰하고 측정하는 모든 사물이나 입자들은 사실 더 상위 차원에 존재하는 실체의 3차원적인 모습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3차원에 존재하는 개별적인 여러 실체들은 사실 상위 차원에 존재하는 동일한 실체의 그림자에 불과할 수도 있는 있는 것이다. 여러 실체들이 서로 상관관계를 갖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상위 차원의 모습을 차원을 낮춰 3차원에서 보자면 각각 별개로 보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림 출처: Bohm (2002, p. 237)
양자장 이론 (quantum field theory)과 홀로그래프
우주를 일종의 투명한 젤리나 점성이 높은 액체로 보는 것은 단순한 비유를 넘어서는 면이 있다. 특수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접목시키려는 노력에서 탄생한 양자장이론(quantum field theory)은 우주를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장(field)"으로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우주는 텅빈 공간에 입자가 몇 개 떠다니는 것이 아니라 텅비어 있음으로 꽉찬 공간이다. 에너지가 뭉쳐서 들떠 있는 상태(excited modes)가 광자나 전자와 같은 입자처럼 보이는 것이고 반대로 에너지가 흩어져서 약한 부분이 진공상태(vacuum modes)인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Carroll, 2019). 입자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필드의 일부분이다. 마치 거대한 투명한 젤리에 살짝 뭉쳐있는 부분이 입자고 옅은 부분이 공간인 것과도 같다. 같은 필드의 일부분이기에 에너지의 상태가 같은 같은 종의 입자는 완벽하게 똑같다. 예컨대 지금 막 탄생한 뮤온이나 1년이 지난 뮤온이나 모두 똑같다. 구분할 수 없다. 남은 평균 수명 역시 정확히 같다. 입자는 시간으로부터 자유롭다. 완벽하게 동일하기 때문에 뮤온이라는 입자에는 시간성이 없다. 마치 완전복제성을 지닌 디지털 정보와 비슷하다. 디지털 정보에도 시간성은 없다. 뮤온이나 디지털 정보는 시간이 흘러간다고 해서 낡지 않는다. 완벽하게 동일하기 때문이다.
공간은 미립자들이 얼마나 얽혀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강하게 얽혀 있을수록 거리는 더 가까운 것이 된다. 거리나 공간은 양자얽힘에서 도출되며, 얽힘으로부터 3차원이든 5차원이든 공간도 정의될 수 있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에너지도 정의된다. 따라서 공간과 에너지는 일정한 관계를 갖기 마련이다. 이것은 자연스레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이론과도 연결이 된다. 시공간이 중력에 의해서 왜곡되는 것은 파동함수로부터 자연스럽게 도출될 수 있는 것이며 따라서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은 통합될 수 있다(Carroll, 2019). 이러한 관점을 더 확장시키면 순수한 양자개념에서 출발해서 파동함수와 양자얽힘을 설명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상대성이론과 나아가 고전역학이론까지 도출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전체를 부분으로 나눠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전체로서 기록하는 기술의 대표적인 것이 데니스 가보르가 발명한 홀로그래프다. 홀로(holo)는 그리스어로 전체(whole)이라는 뜻이고 그래프(graph)는 기록한다 혹은 기술한다는 뜻이다. 홀로그래프는 전체를 다 기록하는 도구라는 뜻이다.
홀로그래프에서는 레이저 빛이 사용된다. 일반적인 빛은 무질서하지만 레이저는 이에 비해 규칙적이고 질서가 잡힌 빛이다. 반투명한 거울에 레이저 빛을 쏘이면 절반은 반사되고 나머지 절반은 반투명 거울 뒤에 있는 사물에 부딪힌 다음에 산란되어서 반투명 거울에 있는 원래 반사된 빛과 한데 합쳐져서 상호 간섭을 하게된다. 이렇게 합쳐진 이미지는 저장될 수는 있지만, 이것은 원래 사물의 이미지와는 전혀 달라보이거나 알아보기 조차 힘든 이미지가 된다. 그러나 이 이미지에 원래 쏘였던 것과 비슷한 레이저 빛을 또 다시 투과시키면 마치 사물에 의해서 반사되었던 빛과 같은 파동을 생산해낸다. 이것이 눈에는 입체적인 이미지로 보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홀로그래프의 모든 부분은 전체 사물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인 포토그래프 사진은 사물의 한 부분과 사진의 한 부분이 일대일로 대응한다. 그러나 홀로그래프는 일부만을 떼어서 봐도 전체 사물의 이미지가 다 담겨있다. 다만 좀 흐릿하고 볼 수 있는 각도도 제한될 뿐이다. 그러한 흐릿한 개개의 전체 정보가 모여서 보다 분명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홀로그래프에서는 모든 부분이 전체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마치 나의 세포 하나에 나의 모든 유전자 정보가 다 포함되어 있는 것과 비슷하다. 홀로그래프의 특징은 전체가 부분에 들어있는 부분의 전체성(the wholeness of the parts)과 전체가 부분으로 드러나는 전체의 부분성(the partiality of the whole)이다(Bohm, 2005, p. 22). 홀로그래프에서 전체에 대한 정보는 모든 부분으로 내적으로 펼쳐진다.
홀로그래프적인 세계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방안에 있을 때, 방 전체의 모든 부분들이 반사하는 빛은 우리의 눈으로, 망막으로, 시신경으로 내향적으로 펼쳐져 들어가며 그 결과 방 전체라는 지각 과 인식으로 외향적으로 펼쳐져 나온다. 물결은 바다 전체로 내향적으로 펼쳐져 들어갔다가 다시 또 다른 물결로 외향적으로 펼쳐져 나온다. 텔레비전에서는 빛과 소리의 정보가 전파라는 시그널로 내향적 펼쳐짐을 했다가 다시 텔레비젼 세트를 통해서 화면과 스피커를 통해 외향적으로 펼져지면서 디스플레이된다 (Bohm, 2005). 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찰 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주 전체의 시공간의 정보가 빛으로 인폴딩(내향적 펼쳐짐)되어 우리에게 전달된다. 마찬가지의 현상이 입자를 관찰할 때도 나타난다. 우주 전체의 움직임이 입자라는 한 부분에 투영되어 내향적 펼쳐짐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홀로그래프적인 특성은 특히 소리에 잘 나타나있다. 소리는 흔히 파동에 비유된다. 하지만 파동보다는 마치 비눗방울과도 같은 일종의 버블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한 비유라 할 수 있다 (Reid, 20107). 구와 같은 한 공간에 가득차 있는 정보 전체는 그 공간의 경계의 한 부분에서 발견되는 정보와 같다. 말하자면 비눗방울의 표면 어디에나 그 비눗방울 전체 덩어리의 모든 정보가 다 들어있다는 것이 바로 홀로그래픽 원칙이다.
소리는 부풀어 오르는 비눗방울과도 같다. 그 경계에 존재하는 분자 하나의 진동에 전체 진동 정보가 다 들어있다. 사운드 스페이스 어디를 봐도 모두 동일하게 진동하는 요소들만이 존재한다. 전형적인 홀로그래프이며 그야말로 내재적 질서의 한 예다. 무대 위의 연주자가 악기를 연주할 때, 그 소리는 버블처럼 구형으로 펼쳐져 방안의 공간으로 퍼져 들어간다(아래 그림 참조). 그렇기에 우리는 음원으로부터 어떤 방향에 있던 그 소리를 동일하게 들을 수 있다. 이렇게 확산되는 소리의 버블 표면 위 특정한 점에서 파동(음파든 전자기파든)을 측정한다면, 거기서 얻어지는 진동의 정보는 버블 내 어느 곳에서 얻어지는 정보와 동일하다.
그림 출처: http://cymatica.com/2009/11/05/cymatics-scientist-says-sound-is-a-bubble-not-a-wave/
우리의 안쪽 귀에는 돌돌 말려있는 달팽이관이 있다. 내부에는 림프액이 채워져 있고 그 액체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섬모 모양의 청각 신경이 분포해 있다. 소리를 듣는 핵심 기관이다. 그런데 이 달팽이관은 쭉 펴봐야 길이가 겨우 30mm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소리 음파의 길이는 피아노의 제일 저음(27.5 Hz)인 경우 약 12.4 미터의 파장(wavelength)을 갖는다. 어떻게 3cm 밖에 안되는 달팽이관이 12미터가 넘은 파동을 감지해낼 수 있는 것일까?
소리 정보는 파동에 실려서 전달되는 것은 맞지만 파동의 각 부위 별로 서로 다른 정보가 실려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달팽이관은 피아노의 다양한 음들을 구분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소리 정보는 한 파동의 모든 부위에 다 고르게 동일하게 실려 있다. 다만 데이터의 밀도가 다를 뿐이다. 피아노의 특정한 음이 공기 분자의 움직임을 통해 고막을 지나 달팽이관 속의 림프액을 진동시키고, 림프액으로 전달된 떨림의 정보가 청각세포의 섬모를 흔들 때, 림프액 분자 하나 하나의 움직임에는 동일한 떨림의 정보가 담겨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소리 정보를 실어 나르는 모든 공기와 림프액 분자의 움직임에는 그 소리 전체의 진동에 관한 정보가 희미하게나마 다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한 희미한 하나 하나의 떨림이 모여서 밀도가 높은, 보다 선명한, 소리의 정보가 된다. 이처럼 소리는 자신의 정보를 공기나 액체 분자에 모두 고르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홀로그래픽한 성질을 갖고 있는 것이다 (Reid, 2017). 연주자의 연주가 발생시키는 소리 정보가 공기 분자의 움직임 속으로 펼쳐져 들어가는 것이 바로 내향적 펼쳐짐의 한 예다.
소리 뿐만 아니라 음악도 내재적 질서를 갖는다. 봄은 음악 역시 홀로그래픽한 성질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음악을 내재적 질서의 한 예로 들고 있다. 우리가 음악 연주를 들을 때면 지금 이 순간 연주되는 음 뿐만 아니라 그 직전이나 조금 더 전에 연주되었던 음도 함께 듣기 마련이다. 피아노 연주를 예로 들자면 연주자가 건반을 두드리는 순간의 음뿐만 아니라 조금 전에 연주되었던 여러 음들의 여운도 함께 듣게 된다. 연주되는 순간의 음과 그전에 연주되었던 음들의 초기 반사음과 잔향(reverberation)이 모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Bohm, 2002, p. 18). 이러한 것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외부로부터의 청각 정보다. 이것은 자유에너지 원칙에 따른 능동적 추론에 의해 우리 내부의 내적인 모델과 결합 되어 지각편린으로 생산되고, 이는 다시 감정이나 기억 등의 생성모델과 상호작용을 하며 우리 의식 속으로 내향적 펼쳐져 들어간다. 많은 파동들이 하나의 홀로그래프 속으로 펼쳐져 들어가는 구조와 매우 비슷한 것이다.
의식과 내재적 질서 consciousness and implicate order
데이빗 봄이 관심을 가졌던 근본적인 문제 역시 실체의 본성을 이해하는 것과 인간의 의식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었다 (Bohm, 2002).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우주에 대한 사유는 필연적으로 그러한 존재에 대해 생각하는 의식에 대한 문제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기계론적 세계관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사물들이 서로 외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한 외적인 상호작용들을 다 모아 놓은 것이 전체다.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물들이 본질적으로 우선하는데 그러한 부분적인 것들을 인간의 의식이 하나로 개념화하는 것이 전체다. 별이라는 실체들이 모인 것이 은하라고 보는 식이다. 이때 본질적인 실체는 "별"이고 "은하"라는 것은 인간의 의식이 자의적으로 개념화한 추상으로서의 전체다.
봄은 이러한 기계론적 세계관은 양자역학이 보여주는 우주의 모습과 전혀 맞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오히려 전체가 구체적인 실체이며 그러한 것을 부분으로 나누어 인식하는 것이 인간의 의식 작용에 의한 추상화의 결과라는 것이다. 우주는 전체로서의 유기적인 하나고, 그것을 부분들로 구분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의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활동이다. 봄이 이처럼 우주를 하나의 "분절되지 않는 전체 (unbreakable whole)"로 파악하는 것은 장자의 만물제동(萬物齊同)의 관점과 매우 비슷하다.
전체로서의 우주는 내적으로 펼쳐지는(enfolding) 전체로서의 내재적 질서(implicate order)다. 내재적 질서의 대표적인 것이 인간의 의식이다. 우주의 다른 모든 에너지처럼 의식도 일종의 흐름(in flux)이다 (Bohm, 2002).
물론 의식도 외재적인 질서의 형태를 갖을 수 있다. 구체적인 생각이나 감정이나 기억이 그러한 사례다. 그런데 항상 이러한 생각이나 감정 뒤에는 그것을 알아차리는 배경자아가 있게 된다. 사물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공간이 배경에 있어야 하고, 소리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고요함이 배경에 있어야 하며, 물결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바다라는 배경이 있어야 하듯이 생각과 기억과 감정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배경자아가 있어야 한다. 즉 구체적인 생각이나 감정에는 항상 그것이 내포(imply)하고 있는 전체로서의 내재적(implicate) 질서인 배경자아가 있게 된다.
봄의 이론을 따르자면 배경자아의 본질이야말로 전체로서의 내재적 질서다. 실제로 생각의 구조, 기능, 작동, 내용 등이 모두 내재적 질서 속에서 이루어진다. 생각의 외재적-내재적 질서 사이의 관계는 사물들의 외재적-내재적 질서 사이의 관계와 유사하다. 외재적 질서가 내재적 질서의 특수하고도 부분적인 존재일뿐이다. 생각이나 감정이나 기억은 배경자아의 일부가 뭉치거나 들뜸상태(excited mode)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치 물결은 바다 전체의 극히 일부가 잠시 들뜸상태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알아차림의 주체로서의 배경자아는 생각, 감정, 기억 등의 마음작용의 일종의 장(field)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