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hm's Implicate Order and Enfolding
능동적 추론, 능동적 정보, 그리고 내재적 질서로서의 커뮤니케이션
우리는 과연 의식에서 내재적 질서를 발견할 수 있는가? (Bohm, 2005, p.12). 의식은 생각의 흐름이다. 모든 생각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함축한다는 것은 하나의 생각(단어, 문장)이 그 자체의 의미를 지니면서도 그것을 넘어서서 더 넓고 깊은 뜻으로 펼쳐져 간다는 뜻이다. 함축하다(implicit)라는 말은 내재적(implicate)이란 말과 동일한 어원을 갖는다. 의미는 항상 생각이나 언어적 표현에 함축된다. 즉 내향적으로 펼쳐지는 내재적 질서다.
하나의 기호는 그 자체로서의 의미를 넘어서서 내재적 질서에 편입됨으로써 다른 의미를 함축할 수 있다. 이것이 곧 가추법적 의미에서의 추론다. 봄의 소마-시그니피컨스의 구조가 퍼스의 기호생산모델과 유사성을 갖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함축이라는 것은 논리적 관점에서 보자면 결국 추론"이기 때문이다(Bohm, 2005, p.16). "닳아서 반들반들해진 소매"는 그 옷을 입은 사람이 타자수라는 사실을 함축하는 것이고 이러한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이 곧 추론이다.
추론은 프리스턴의 자유에너지 원칙과 능동적 추론 모델에서의 핵심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뇌는 기본적으로 능동적 추론을 해내는 시스템이며 그러한 추론 시스템의 정점에 있는 것이 의식이다. 의식은 능동적 추론 과정의 결과로서 생겨나는 것이면서 동시에 추론의 과정을 효율적으로 통합하기 위한 뇌의 기능이다. 기호학자인 퍼스, 뇌과학자인 프리스턴, 물리학자인 봄이 모두 인간 의식 작용의 핵심에 "추론"이 있다고 본다. 추론과 예측 오류는 모두 다 "in-formation"으로서의 특성을 지닌다. 그것은 배를 움직이는 엔진의 힘을 지닌 것은 아니지만 엔진의 힘을 일정한 방향으로 가이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능동적"이다. 봄의 핵심적인 개념 중 하나인 "능동적 정보"와 프리스턴의 "능동적 추론"에서 공통으로 사용되고 있는 "능동적 (active)"라는 말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뜻을 함축하고 있다.
첫째, 피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이라는 뜻. 프리스턴의 자유에너지 원칙에서의 뇌의 추론 과정은 주어진 자극에 수동적으로 반응한다기보다는 역동적 균형상태인 알로스태시스를 향해 끊임없이 능동적으로 예측하고 자신의 모형에 따라 조절을 한다. 그렇기에 동일한 자극에 대해서도 뇌는 상황과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다른 반응을 보이게 된다. 봄의 능동적 정보 역시 양자잠재력으로서 능동적으로 입자를 형성(formation)시키고 가이드한다.
둘째, "행위"와 관련된다는 뜻. 생명이란 움직임이다. 신경시스템 자체가 움직임을 위해 존재하고, 동시에 움직임이 감각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움직임을 전제로 지각하며, 지각된 것을 바탕으로 움직인다. 마코프 블랭킷 모형에서의 감각상태가 추론을 통해 생산해내는 것이 지각(perception)이고 마찬가지 방식으로 내부상태가 추론을 통해 생산해내는 것이 개념(conception)이다. 이것이 의식의 기반이다. 프리스턴의 능동적 추론은 하나의 생명체가 환경 속에서 움직여서 살아남기 위한 시스템이다. 이것이 뇌의 존재이유다.
봄의 능동적 정보 역시 마찬가지다. 봄은 정보의 행위(activity of information)라는 개념을 강조한다. 정보 자체에는 질량이 없지만 에너지에 변화를 주어 질량을 지닌 입자를 형성시키는 "행위"를 한다. "형성 중인 과정(in-formation)"으로서의 정보의 특성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특히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이다. 한 사람의 내부 상태인 의식 속의 의미와 생각이 생각이 일종의 에너지 흐름으로 다른 사람 의식 속으로 펼쳐져 들어가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이다. 봄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이야말로 내재적 질서와 내향적 펼쳐짐의 대표적인 사례로 본다.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에는 전체로서의 우주의 작동 방식 자체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장(field)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텅비어 있음으로 꽉 차 있다.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지각할 수 없기에 암흑 물질 혹은 암흑 에너지로 불리우는 이 배경으로서의 텅 빈 우주는 하나의 온전한 전체다. 거기에 약간의 흠집이나 구멍이난 것들이 물질이다. 혹은 에너지 일부가 들뜬 상태로 진동하면서 뭉친 것이 곧 물질이다. 물질의 본 모습은 암흑 물질이고 순수한 에너지다. 인간의 의식 역시 순수한 에너지의 일종이다. 에너지로서의 의식의 흐름이 일부 들뜨고 뭉쳐진 것이 생각이고, 감정이고, 개념이고, 스토리다. 생각이나 감정이나 개념은 순수 의식 자체와 본질적으로 같다. 모든 물질적 실체가 에너지와 본질적으로 같은 것처럼.
자유에너지 원칙과 기계론적 관점
독립적인 실체로 존재하는 구성 요소들이 외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의 집합체로서의 전체를 구성한다는 고전물리학의 관점은 프리스턴의 자유에너지 원칙에도 여전히 살아있다. 예측 오류의 최소화를 위한 시스템으로 뇌를 파악하는 능동적 추론 모델 역시 기본적으로 기계론적 세계관에 철저히 기반해 있다.
감각 기관을 통해 유입되는 감각 자료(sensory data)는 고정된 실체로 간주된다. 감각 자료를 평가하는 생성모델이나 그로부터 "계산"되어져 나오는 "예측 오류" 역시 특정한 값을 지닌 개별적인 실체들로 간주된다. 뉴런 역시 마찬가지다. 전체로서의 바다에 파도처럼 뉴런이 존재한다기보다는 뉴런이라는 고정적 실체로서의 "입자"들이 모여서 뇌라는 전체 구조물을 이루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내부상태도 하나의 독립적인 실체고 외부 환경도 그러하며 그 사이에 경계로서 존재하는 마코프 블랭킷도 그러하다. 모두 다 고정된 실체다.
뉴런과 뉴런 사이의 "정보" 역시 일종의 입자처럼 간주된다. 정보는 내부상태의 일부도 아니고 감각상태의 일부도 아니며, 단지 감각상태에서 내부상태로 전달되는 어떤 실체일 뿐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정확한 "지각"을 생산해내는 것이 능동적 추론 시스템의 임무다. 행위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지만 이러한 요소들 간의 관계가 작동하는 것이지, 정보 자체가 그 시스템의 일부를 이루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계론적 세계관으로 우주나 생명 현상을 설명하는 것에는 늘 한계가 있다. 언제가는 모순에 부딪힌다. 예컨대 능동적 추론 모델은 추론의 결과로서 자의식이 생긴다고 하고 있는데 사실 능동적 추론이라는 개념 자체가 예측 오류의 최소화를 "의도"하는 일종의 선험적인 에이전트를 이미 전제하고 있다는 논리적 모순에 빠지고 만다. 자의식의 작동 방식이나 특징에 대해서는 자유에너지원칙이 효율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어떻게 생겨날 수 있느냐의 문제에 대해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신생아에게는 훌륭하게 작동하는 마코프 블랭킷이 있고 능동적 추론시스템이 있지만, 만 3세반 이후 마음이론을 지니게 된 후에나 볼 수 있는 자의식은 없다. 만 1세와 4세 사이에 도대체 무슨 변화가 일어나길래 자의식이 생겨나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자유에너지 원칙이나 심층 능동적 추론 모델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의식과 자의식의 문제는 기계론적 세계관을 극복해야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해진다. 독립적인 부분적 실체들이 서로 외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이뤄내는 현상으로 보는 것을 넘어서는 근본적인 관점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봄의 능동적 정보와 내재적 질서의 개념은 우주에 대한 관점뿐만아니라 의식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준다. 프리스턴의 자유에너지 원칙과 능동적 추론 모델이 봄의 내재적 질서, 전체성, 내향적 펼쳐짐 등의 개념을 적극 수용한다면 이론적 설명력에서 그야말로 퀀텀 점프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도 자유에너지 원칙도 에너지에 관한 물리학적 개념을 차용한 것이고, "능동적" 추론의 개념 역시 봄의 "능동적" 정보와 개념적으로 매우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내재적 질서와 내향적 펼쳐짐의 개념을 통해 능동적 추론으로서의 의식 작용이나 생성모델의 작동 방식을 개념화하는 작업은 상당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특히 프리스턴의 능동적 추론 모델을 봄의 능동적 정보의 개념과 결합시킨다면 뇌의 거시적 작동방식과 미시적 작동방식에 관한 새로운 통합적인 모델 구축이 가능해질 것이다. 봄의 내재적 질서의 개념과 프리스턴의 자유에너지 원칙의 이론적 통합의 출발점은 아마도 생성질서 혹은 생성모델의 개념에서 우선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생성 질서(generative order)와 인과관계
라이프니쯔는 시간이나 공간이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적 사건에 의해서 결정되는 상대적인 것이라 보았다. 시간은 연속적인 사건들의 질서 (the order of sequences)에서 나오는 것이고 공간은 동시에 존재하는 것들의 질서(the order of coexistence)에서 비롯된 것이다(Evangelidis, 2018). 시간이나 공간은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사건과 사물들에 의해서 개념적으로 구성되는 질서인 것이다.
라이프니쯔의 시간과 공간의 개념들은 철저한 외재적 질서에 입각한 기계론적 세계관을 반영한다. 사건들의 "연속"이라는 개념 속에 이미 개별적이고도 독립적인 사건들이 전제된다. 공간 속에 흩어져서 동시에 존재하는 "공존"의 개념 속에도 개별적이고도 구분되는 독립적인 사물들이 전제된다. 당구대 위에 공들이 여럿 놓여 있는 것처럼 여러 사물들이 공존할 때 공간은 구성되는 것이고, 공 하나를 쳐서 다른 공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과 같은 연속적 사건들에 의해 인과관계가 생겨나고, 그에 따라 시간이라는 개념도 생겨나게 된다.
일상생활에서는 이러한 기계론적 관점을 갖고 살아가는 것에서 별 문제점을 못 느낄 수도 있다. 당구를 치거나 탁구나 골프를 치거나 자동차 운전을 하는 경우와 같이 일상적인 생활을 위해서는 사물들 간의 외재적 질서와 인과관계를 통해서도 별 어려움 없이 얼마든지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보다 더 깊은 실체의 모습이나 우주의 근본적인 작동원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경우에는 기계론적 세계관은 한계를 노출하기 마련이다. 특히 인간의 의식과정이나 소통과 같은 현상은 외재적 질서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우주의 근본질서나 양자세계 혹은 인간의 내면과 의식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외재적 질서를 포괄하는 내재적 질서의 개념이 필요하다. 내면소통 훈련을 통한 마음근력 키우기와 관련해서도 내재적 질서의 관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뇌의 작동방식이나 의식과 감정을 고정된 실체 사이의 인과적 질서로는 도저히 제대로 설명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기계론적 세계관은 인간의 몸과 마음의 작동 방식을 인과관계론적으로 이해한다. 예컨대 병에 걸리는 것은 외부적인 어떤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침투에 의한 것이고 소통에 의해서 설득이 이루어지는 것은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어떤 메시지에 의한 것이라는 식이다. 이러한 세계관에서는 "바이러스"나 "메시지"는 고정된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이 또 다른 고정된 실체인 인간의 몸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말하자면 바이러스나 메시지는 원인이고, 질병이나 설득은 결과라는 식이다. 하얀 색 당구공이 붉은 색 당구공과 충돌하는 경우에, 움직이는 하얀색 당구공이 원인이고, 그것에 의해 움직이게 되는 붉은 색 당구공이 결과다. 하지만 이러한 기계론적 세계관으로는 내면소통의 작동방식을 충분히 설명해내기 어렵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상황은 독극물에 중독되는 것과는 완전히 그 성질이 다르다. 어떠한 메세지에 의해서 설득되는 것 역시 물감 한 방울을 떨어뜨려 물의 색깔을 변하게 하는 것과는 성질이 다르다. 봄은 기계론적 세계관의 인과관계를 대체할 수 있는 개념으로 "생성질서(generative order)"를 제안한다. 생성질서는 외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기 보다는 능동적 정보로서의 영향을 받아 거기에 반응하여 새로운 질서를 "생성"해낸다는 의미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폐렴을 앓게되거나 소통에 의해 설득이 되어 생각이 바뀌게 되는 것은 인과관계적 설명보다는 생성질서 관점에서의 설명이 더 정확한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인과적 사고 방식은 어떠한 문제나 현상이 있을 때 그것을 낳은 "원인"을 찾으려 한다. 어느 도시에 공해가 심하다면 언제 공장이 세워지기 시작했는가를 묻고, 암에 걸렸다면 어느 유전자가 문제인가를 묻고, 트라우마나 불안 장애가 발생하면 어떤 충격이나 사건에 그러한 정신적 문제를 가져왔는가를 묻는 식이다. 봄은 연속적 사건들의 외재적 질서와 인과적 사고방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개념적 틀을 제시하는데 그것이 바로 "생성질서(generative order)"다.
어느 도시에 공해가 심한 것은 언젠가 처음 공장을 짓기로 한 결정이 공기오염의 계기가 된 것은 맞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다 결정하는 것은 "원인"인 것은 아니다. 하나의 공장이 처음 세워진 이래, 계속해서 여러 개의 공장이 더 들어서게 되고, 그러한 공장들을 계속 지금까지 가동시켜오고 있다는 총체적 사실이 공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과거의 어떤 특정한 계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기서 계속 "생성"되고 있는 질서에 더 큰 의미부여를 해야한다는 뜻이다.
암의 경우에도 유전자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 자체 때문에 암이 생겼다기보다는 그러한 유전자를 갖고 있으면서도 건강하지 않은 특정한 생활 습관을 계속 유지해왔다는 사실이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특정 유전자가 어떠한 조건에서든 항상 암을 일으키는 경우란 없기 때문이다.
과거의 불행한 일이 트라우마나 정신장애의 한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과거의 불행한 일 자체보다는 그 불행한 일이 유발시켰던 고통이나 부정적 정서를 차단시키고 억누르는 메카니즘을 계속 작동시키는 습관이 더 큰 문제를 야기시킨다. 불행했던 일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부정적 정서를 유발시키고, 증폭시켜서 강박적 사고를 하는 등 불행한 일 이후의 지속적인 행동/사고/인지 패턴들의 습관화가 문제를 더 심각하게 한다. 실제로 트라우마를 겪었다고해서 모두 PTSD(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환자가 되는 비율은 훨씬 더 적다. 공해, 암,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 등의 공통점은 분명 그러한 것을 유발시키는데 관여한 "계기"는 있으나 그것을 모든 사태의 "원인"으로 파악하는 것은 전체적인 사태 파악을 제대로 못하게 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생성질서는 이러한 "계기"뿐만아니라 그러한 계기가 촉발해서 지금 이순간까지 계속되는 어떠한 지속적인 과정까지를 전체적으로 다 살펴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생성질서야말로 봄이 계속 강조하는 하나의 전체로서의 우주인 전체성(wholeness)을 잘 구현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바이러스 감염 - 생성질서의 예
바이러스 감염 역시 인과관계보다는 생성질서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2020년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세계적가 고통을 받았던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일상생활 전반과 문화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바이러스의 확산은 생성질서의 대표적인 예라 할만하다. 바이러스 자체는 일종의 능동적 정보에 불과하다. 그것은 생명체라기보다는 RNA 유전자 정보를 담고 있는 단백질 부스러기에 불과하다. 코로나 바이러스 하나의 무게는 0.85 아토그램이다. 1 아토그램은 10의 마이너스 18승분의 1 그램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환자가 되려면 사람 몸속에서 700억개로 늘어나야 한다. 그래봐야 한 사람을 환자로 만드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체량은 0.0000005 그램에 불과하다. 2020년 10월 현재까지 전세계적으로 확진자수는 4천만명에 달한다. 이들 중 대략 3천만명이 완쾌되었으므로 현재 1천만명 가량이 감염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가벼운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훨씬 더 많지만, 모두 증상을 보이는 환자라고 가정을 한다해도, 즉 1천만명이 모두 700억개의 바이러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전세계 경제를 마비시키며 공포로 몰아 넣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총량은 겨우 5그램에 불과하다 (Ganapathy, 2020).
바이러스에 감염된다는 것은 바이러스가 독립적이고도 외적인 실체로서 우리 몸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바이러스는 일종의 DNA 파편들이다. 그것이 우리 몸 속의 세포 속의 유전자를 교란시켜서 바이러스를 증식시키도록 유도한다. 바이러스는 우리 몸의 세포의 복제 시스템을 이용한다. 외부에서 오는 바이러스는 일종의 "능동적 정보"다. 그것의 "안내"를 받아서 우리 몸이 스스로 에너지와 단백질을 공급하고 우리 몸의 화학작용과 대사작용을 통해서 바이러스들을 계속 만들어내도록 하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그 자체로서 질병이라기보다는 우리 몸으로 하여금 질병을 만들어내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생성 질서의 대표적인 사례다. 바이러스가 증식할 수 있는 환경을 우리 몸이 스스로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바이러스야말로 능동적 정보로서의 "인-포메이션(in-formation)"인 것이다.
바이러스는 마치 배의 진행 방향을 알려주는 무선 라디오 신호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배를 움직이는 힘 자체는 라디오 신호에서 오지 않는다. 라디오 신호는 다만 능동적 정보로서만 작동한다. 실제 배를 움직이는 힘은 배 자체의 엔진에서 나온다. 바이러스는 일종의 능동적 정보인 셈이다. 마치 입자 상태에 영향을 주는 양자잠재력과도 같다. 바이러스는 우리 몸 속으로 내향적 펼쳐짐을 하는 것이다.
바이러스 감염병은 숙주인 사람의 몸이 바이러스에 "협조"해서 지속적으로 생성시켜내는 생성질서의 대표적인 예지만, 숙주의 입장에서는 바이러스에 저항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우리 세포 자체의 복제 프로그램 등 단백질 작동방식을 바이러스가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면역력이 있는 경우에는 다르다. 대부분의 사람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겨낸다. 그러나 소수는 위험한 상황까지도 간다. 중증환자가 되는 경우에 폐와 혈관을 비롯해서 온몸의 여러 장기를 파괴시키는 것 역시 바이러스 자체가 아니라 사실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이다. 바이러스에 의한 면역 시스템의 교란으로 인해 우리 몸이 스스로를 파괴시키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우리 몸을 파괴한다고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오히려 우리 몸이 스스로 파멸의 길로 가도록 "가이드"한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바이러스는 능동적 정보다.
하나의 씨가 자라서 나무가 되는 것을 생각해보자. 씨에는 DNA 정보와 약간의 영양분만이 들어 있을 뿐이다. 그것이 나무로 자라나려면 공기, 물, 영양분, 햇빛 등 다양한 요소와 에너지가 주어져야 한다. 씨에 담겨있는 DNA는 일종의 능동적 정보일뿐이다. 하나의 씨가 자라서 나무가 되는 것 역시 외적인 인과관계보다는 능동적 정보의 내향적 펼쳐짐으로 파악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바이러스가 몸 속에서 증식하는 것이나 씨가 자라나서 나무가 되는 것은 모두 생성질서다.
이와 비슷한 것이 프리스턴의 능동적 추론의 과정이다. 헬름홀츠나 프리스턴의 감각경험에 대한 예측모델에 따르면 마코프 블랭킷으로서의 인간의 감각 시스템은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기만 하는 수동적 시스템이 아니라 내부적인 생성모델을 갖고 그것을 바탕으로 추론을 하는 능동적 시스템이다. 감각 자료들은 인간의 뇌가 생산해내는 지각편린(percepts)의 외부적 원인이 아니다. 뇌가 세상 사물을 지각하는 것은 인과론적 과정이 아니다. 뇌는 예측오류를 바탕으로 생성모델 자체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시켜 나간다. 즉 우리의 시각, 청각 등등의 감각 경험은 외부 감각 자료와 내부의 생성모델이 한데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주고 받는 과정 속에서 생성되어져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기계론적 세계관의 인과관계 모델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이것을 보완하기 위해 프리스턴은 역동적 인과관계 모델(dynamic causal modelling: DCM)을 제안한다(Friston, Harrison & Penny, 2003).
역동적 인과관계 모델은 fMRI 분석을 하는데 있어서 외부적인 자극이 뇌에 미치는 단선적인 인과적 영향뿐만아니라 뇌의 내부적인 생성모델(마코프 블랭킷 내부상태간의 상관관계 등)의 베이지안 추론 과정까지를 고려하는 모델이다. 시간에 따른 연속적이고도 선형적인 질서 모델이 아니라는 점에서 봄의 생성질서와 프리스턴의 역동적 인과관계모델은 상당한 공통점을 지닌다.
생성 질서(generative order)와 생성 모델(generative model)
환경을 지각하고 인식하는 과정뿐만아니라 내부모델의 핵심인 생성모델 역시 생성질서의 일종으로 보아야 한다. 일상 생활 속에서의 우리는 특정한 외부적 사건이라는 원인에 의해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이라는 결과가 생겨나는 것처럼 느낀다. 게다가 특정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일어나는 경우에는 더욱 더 생각에 특정한 외부적 "원인"이 있다고 믿게 된다. 하지만 사실 생각은 외부의 특정한 사건을 원인으로 해서 생겨나는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의식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생성"되는 것이다. 외부적인 사건은 마치 바이러스처럼 능동적 정보로서 우리 의식에 특정한 계기를 만들어 줄 뿐이다. 생각을 만들어내고 지속시켜가는 것은 의식이라는 내부시스템이다. 바이러스를 계속 증폭시키는 것이 우리 몸이듯이, 생각이 생각을 낳도록 하는 것 역시 우리의 의식이다. 그렇기에 생각은 강박적으로 반복되기도 하고 강화되거나 확장되기도 한다. 여러가지 생각이 우리 의식 속에서 동시에 공존할 수 있기도 하다. 의식이나 기억 등은 연속적 질서와 공존적 질서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으면서도 그 본질은 생성 질서다. 사실 모든 생성 질서는 연속성과 공존성을 다 구현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넘어선다.
봄은 분노와 같은 특정한 감정 상태 역시 생성질서로 본다 (Bohm, 1987). 기분 나쁜 일이나 모욕적인 언사에 의해 분노가 생기는 경우는 마치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인과관계로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분노의 계기가 되는 사건은 마치 바이러스처럼 외부로부터 주어지지만 일단 그러한 자극에 대해 분노라는 감정을 만들어내고 키워가는 것은 내면적인 의식이기 때문이다. 기분 나쁜 일을 속으로 반복해서 계속 되뇌이고, 스스로의 분노를 끊임없이 합리화하고, 상대방의 잘못에 대해 비난하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증폭시킴으로써 분노라는 감정은 한동안 유지되거나 점차 강화되기 마련인다. 이것은 분노뿐만아니라 불안이나 우울 등 다른 부정적 정서에도 해당된다. 부정적 감정을 유지하고 증폭시키는 과정은 본질적으로 생성질서다. 특정한 부정적 사건은 마치 바이러스처럼 우리 마음에 작용한다. 생성질서로서 특정한 부정적 생각은 우리 마음 속에서 증폭된다. 그러한 부정적 생각을 키우고 에너지와 영야분을 공급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한편, 면역시스템이 바이러스 감영 상태를 이겨내듯이 마음의 면역력, 즉 마음근력이 강한 경우에는 이러한 부정적 사건이 우리 마음을 숙주로 삼아 확산되는 것을 우리 스스로가 막을 수가 있다. 마음근력은 곧 감정적 면역력이기도 하다. 자그마한 부정적 사건이나 트라우마도 감정적 면역력이 약한 사람에게는 큰 후유증을 가져올 수도 있다.
몸의 면역력을 키우는 것은 외부 바이러스에 반응하는 몸의 새로운 생성질서를 만드는 것이고, 마음근력을 키우는 것은 대해 외부의 부정적 사건에 반응하는 마음의 새로운 생성질서를 건강한 방향으로 작동하도록 바꾼다는 뜻이다. 특히 부정적 사건이나 실패, 역경, 혹은 좌절 등에 대해 잘 적응하고 일종의 마음의 항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회복탄력성을 강화하는 훈련이라 할 수 있다. 회복탄력성을 비롯한 여러가지 마음근력을 발달시키는 것은 새로운 생성질서를 만드는 것이다. 외부 자극이 우리 의식 속에서 내향적 펼쳐짐을 하는 패턴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다. 물론 생성질서의 자동화된 반응 방식을 바꿔나가는 것은 체계적이고도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지금 현재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을 겪고있는 사람들은 과거의 부정적 사건 자체가 트라우마를 유발시킨다기보다는 지금 현재 계속 내면에서 부정적 정서를 재생하고 있는 생성질서가 더 큰 문제인 것이다. 과거의 나쁜 경험 자체가 현재의 몸과 마음의 병의 "원인"이 아니다. 과거의 사건은 단지 하나의 계기만을 제공할 뿐이다(Bohm & Kelly, 1990).
부정적 정서나 트라우마에는 생성질서가 있다. 원인과 결과가 명확하게 구분이 되는 단순한 인과관계적 틀을 벗어날 수 있어야 제대로된 처방과 치료가 가능하다. 만약에 과거의 경험이 확정적 원인이라면, 과거를 바꿀 방법은 없으니 원인 치료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지고 다만 대증요법에 만족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정신분석학의 전통처럼 과거의 특정한 경험에 대해 집중하는 것 보다는 지금 현재 몸과 마음이 어떠한 생성질서가 가동되어서 스스로 병을 키우고 유지시키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병을 유지시키고 확대시키는 것은 지금 현재 작동하고 있는 생성 질서다. 과거의 "원인"에 집착하기 보다는 현재의 생성질서를 바꾸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도 올바른 치료 방법이다. 과거의 부정적 사건에 대해서는 그러한 일이 미래에 다시 되풀이 되지 않도록 예방적 차원에서 살펴볼 때에만 의미가 있다.
내면소통과 내재적 질서의 언어 - 레오모드 rheomode of language
내면소통은 봄의 내재적 질서로서의 의식의 개념을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통해 개념화한 것이다. 내면소통은 모든 소통의 보편적인 모습이며 본래적 실체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형태의 소통에도 내면소통이 작동한다. 외재적 질서로 표현되는 여러가지 커뮤니케이션 현상들은 내면 소통의 한 특수한 형태라 할 수 있다. 독립된 실체로서의 두 사람이 서로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영향을 주고 받는 것으로 정의되는 대인커뮤니케이션이나 하나의 소스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는 것으로 정의되는 매스커뮤니케이션 현상 등은 모두 외재적 질서로 드러나는 소통이다. 하지만 모든 외재적 질서가 그러하듯이 소통 역시 모든 외재적 소통은 내재적 질서인 내면소통의 특수한 현상들이다.
봄은 기계론적 세계관의 핵심이라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도 고정된 실체 중심의 사고보다는 유기적이고도 과정 중심적인 사고가 이 세상을 이해하는 더 정확한 방식이라고 본다. "어떤 항구적인 고정된 실체가 있고 그 실체들이 외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이 이 세상의 기본질서"라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양자"역학(mechanics)"이라는 말 속에도 이미 기계론적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다 봄에 따르면 양자역학보다는 양자"유기학(organics)"라고 부르는 것이 더 진실에 부합한다.
내재적 질서로서 이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사유의 단위가 "입자"나 "실체"가 아니라 "사건"이나 "과정"이 되어야 한다(Bohm, 2002). 주어진 고정된 실체들이 먼저 존재하고나서 그들이 상호작용을 해서 일련의 과정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과정 자체가 더 본질적이다. 전체적인 과정 속에서 일정한 부분들을 인간이 자의적으로 추상화하고 개념화해서 이러저러한 사물들을 구분해내고 사물들 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우주는 본래 모습은 전체적인 하나의 과정인데, 인간의 추상화, 언어화가 개념들을 만들고 실체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우리가 실체 중심적인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언어다. 대부분의 현대 언어들은 기계론적 세계관에 따라 "명사" 중심적으로 되어 있다. 대부분의 서술에는 주어와 목적어가 있다. 많은 경우 이 서술의 순서는 인과관계의 순서를 함축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봄은 새로운 방식의 언어 사용을 제안한다. 그것이 바로 레오모드(rheomode)다. 레오(rheo-)는 그리스어로 "흐름(flow)"이라는 뜻이다. 명사보다는 동사에 더 기본적인 기능을 부여함으로써 과정 중심 사유를 할 수 있도로 하는 것이 언어의 레오모드다. 사실 한국어는 유럽어들에 비해서는 주어의 사용이 강조되지도 않고, 시제나 성, 수의 구별이 뚜렷하지도 않아 상대적으로 더 과정 중심적인 레오모드 언어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봄은 다음과 같은 문장을 예로 든다. ‘It is raining’. 여기서 주어는 물론 "it"이다. 그는 묻는다. 도대체 "비 내리기"라는 행위를 하는 주어로서의 "비 내리는자(rainer)"를 반드시 상정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주어가 곧 "비 내리기"라는 사건을 유발시킨 원인이다. 이러한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사태를 더 정확하게 서술하려면 문장은 이렇게 되어야 한다. "rain is going on." 봄의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어가 영어나 다른 유럽 언어들보다는 사태를 더 정확하게 표현하는 언어다. 한국말로는 정확히 봄이 제안하는 것처럼 "비가 오고있다"라고 이야기하니까.
마찬가지로 "개별적인 입자들이 서로 상호작용을 한다"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전체로서의 우주의 장(the whole field of the universe) 안에서 상대적으로 일정한 움직임의 형태를 보이는 것들을 추상화한 것이 입자"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또한 "관찰자가 하나의 대상을 관찰한다"라고 표현하기보다는 "인간과 대상이라고 불리우는, 두 개의 추상화된 존재들 사이의, 분리되지않는 움직임으로서의 관찰이 진행된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것이다(Bohm, 2002).
내면소통 명상 - 마코프 블랭킷 모델을 통해 본 편안전활
마코프 블랭킷 모델을 통해서 살펴보면 내면소통에는 세가지 종류가 있다. 첫번째는 내부상태와 감각상태 사이의 소통이다. 감각 기관을 통해 의식으로 올라오는 다양한 감각 데이터가 능동적 추론과정을 통해 어떠한 감각과 느낌으로 생산되는가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감각에는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뿐만아니라 고유감각과 내부감각도 포함된다.
두번째는 내부상태와 행위상태 사이의 소통이다. 움직임과 감정들이 어떠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의도와 움직임간의 관계에 집중하는 소통이라 할 수 있다.
세번째는 내부상태와 내부상태 사이의 소통이다. 내부상태에는 여러 개의 에이전시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으며 이들간의 관계에 집중하는 소통이다. 스스로의 자의식을 돌이켜보거나 배경자아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이 세가지 종류의 내면소통에 집중하는 것이 바로 내면소통 명상이며, 따라서 내면소통 명상에는 크게 보아 세가지 종류가 있게 된다. 첫번째가 감각 명상이고 두번째가 움직임 명상이며 세번째가 배경자아 명상이다. 이들 모두 다 편도체 안정화와 전전두피질 활성화의 효과가 있지만 첫번째와 두번째는 특히 편도체 안정화와 감정 조절에 촛점을 맞춘 것이고, 세번째는 상대적으로 전전두피질 활성화 효과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세가지 내면소통 모두 다 내향적 펼쳐짐(enfolding)의 성격을 갖는다. 뉴런 하나의 떨림도 그 영향이 다른 뉴런들 속으로 펼쳐져가는 일종의 내향적 펼쳐짐이다. 거기에는 "전달되는 메시지로서의 정보"란 없다. 형태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서의 "형성 중인 과정으로서의 정보(in-formation)" 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능동적 추론의 본질이다. 순차적으로 바텀 업, 탑 다운이 일어나는 듯 보이지만 사실 이것은 마치 바다 위의 파도가 치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전체로서 에너지 장이라는 뉴론의 바다에서 일부 에너지가 뭉치고 들떴다가 (활성화되었다가) 다시 전체 시스템 속으로 펼쳐저 들어가고 펼쳐져 나오는 것이다.
마음근력 훈련으로서의 내면소통 명상은 따라서 외적 개입이 아니다. 인과관계에서의 어떠한 원인을 제공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어떠한 개념이나 메시지를 주입시키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마음근력 훈련은 자기생성적 질서(self-generative order)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자기 생성적 질서라는 뜻은 스스로 알아서 해야한다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뜻이다. 내가 나를 외적인 처치나 트리트먼트 대상으로 보아서는 곤란하다는 뜻이다. 오히려 내가 나를 알아차리면서 나의 내면으로 지속적으로 펼쳐져 들어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자유로움이 일어난다. 그 과정을 내재적 질서(implicate order)로 바라보는 것이 내면소통의 관점이다. 그것이 수행이고 명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