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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환 Jun 01. 2022

유전자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마음근력과 후성유전학

기본적 성취역량인 마음근력을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은 수많은 과학적 연구 결과가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강의나 수업을 통해 만나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는다. 학생이든, 학부모든, 어른이든, 아이든, 학자든, 운동선수든, 대기업 임원이든, 영업사원이든, 연구원이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능력은 주로 선천적으로 결정된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지난 100여년간 수많은 연구들이 인간의 성취역량은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줬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터먼의 연구다. 

1921년 스탠퍼드 대학의 저명한 심리학자 루이스 터먼(Lewis Terman)은 정부로부터 막대한 연구비를 받아서 지능과 성취도 사이의 대대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터먼은 오늘날 널리 사용되는 IQ 테스트를 만든 학자다. 그는 인간의 능력이 선천적으로 결정된다는 강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미국 전역의 초중등학교 교사들로부터 추천을 받아 가장 공부잘하는 아이들 25만명을 선발했다. 터먼은 이렇게 우수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신이 개발한 IQ를 검사를 실시해서 지능지수가 140이 넘는 아이들 1,470여명을 다시 뽑아냈다. 그야말로 영재중의 중의 영재, 또는 “천재”라할만한 아이들을 선발해낸 것이다. 그리고는 수십년동안 이 영재들을 계속 추적 관찰하였다. 터먼은 자신이 선발한 천재들 대부분이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성취를 이룰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수십년이 지나도 터먼의 천재 집단에서는 세상을 놀라게할 만한 뛰어난 업적을 낸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물론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몇몇 있었으나, 그 비율은 그저 평범한 아이들 1,400여명 중에서 성공한 사람이 나오는 비율과 비슷했다. 터먼의 천재 집단 중에서는 단 한명의 노벨 수상자도 나오지 않았지만, 터먼의 지능검사를 통해 IQ가 충분히 높지 않다는 이유로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학생들 중에서는 오히려 두 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 어른이 되었을 때 터먼이 선발한 “천재”들은 대부분 그저 평범한 일에 종사하는 보통 사람들로 살아가고 있었다. 수십 년의 연구 끝에 터먼은 어쩔수 없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IQ와 성취도 사이에는 그 어떠한 상관관계도 없다.”


물론 똑똑한 사람은 있다. 어린 시절부터 비상한 능력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남보다 월등히 뛰어난 사람은 어느 분야에서든 발견된다. 그러나 그 똑똑함과 유능성, 영재성, 업무처리능력 등은 지능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유전적으로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유능성"과 "능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러한 능력차이가 선천적으로 결정되어 있다고 믿는다. 경험적으로 볼 때, 부모가 공부 잘하면 아이들도 공부잘하고, 부모가 음악을 잘하면 아이들도 음악에 재능을 보이고, 부모가 운동 선수면 아이들도 운동을 잘하지 않는가? 이게 유전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이렇게 쉽게 결론을 내리기 쉽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부모가 아이들에게 물려 주는 것이 생물학적인 유전자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수 있다. 음악가인 부모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음악교육에 더 많이 노출이 되고, 운동선수인 부모의 아이들은 운동에 대해 더 많이 접하고 배울 기회가 많다. 부모는 유전자의 원천이기 이전에 엄청나게 중요한 환경적 요인이다. 


모든 것이 유전자에 의해서 선천적으로만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동시에 유전자에 의한 개인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도 우리는 안다. "지 아비를 닮아서 하는 짓이 똑같다." 이 말 속에는 유전자의 영향력에 강한 신념이 담겨 있는 듯이 보이다. 하지만 동시에 "지 아비를 닮은 것"이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것이 그렇다보니 그렇게 학습이 되어서 후천적으로 똑같아 졌다는 뜻일 수도 있다. 

키나 생김새 등 신체적 형질은 유전적 요인에 의해서 강하게 영향 받는다. 동일한 유전자를 공유하는 일란성 쌍둥이는 키나 몸무게가 매우 비슷하다. 하지만 신체적 형질을 넘어서는 성격이나 행동 혹은 능력에 대해서는 유전적 요인이 얼만큼이 되는지는 알기 어렵다. 확실한 것은 성격, 행동, 능력 등은 신체적 형질보다는 훨씬 더 후천적인 환경과 학습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마음근력은 얼마나 선천적으로 결정되고 또 얼마나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서 변화될 수 있는 것일까? 이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앞으로 살펴볼 내용의 핵심이 내면소통훈련을 통해 마음근력과 성취역량을 향상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개인의 역량의 선천적인 차이는 얼마나 결정되어 있는것이고 또 후천적인 노력의 결과는 얼마나 기대해볼 수 있는 것일까? 이 문제를 생각해보려면 지난 수십년간 많은 연구가 쏟아져나온 후생유전학의 성과에 대해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음근력과 후성유전학(Epigenetics)의 관점

후성유전학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환경과 유전자의 상호작용에 의해 이루어지는 유전자의 발현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특정한 유전자가 발현될 것인지 아닌지, 혹은 어떻게 발현될 것인지가 유전자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러가지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 우리 몸을 이루는 모든 세포 하나 하나에는 우리 몸을 이루는 전체 설계도가 다 들어가 있는데 DNA다. 근육세포나 신경세포나 심장세포 하나 하나에는 모두 동일한 DNA 정보가 들어가 있다. 그로부터 어떠한 유전자가 발현이 되느냐에 따라 어떤 세포는 근육이 되기도 하고 어떤 세포는 뇌가 되기도 한다. DNA로부터 RNA 전사(transcription)가 일어나고 이로부터 다양한 단백질이 형성되는 과정을 유전자 조절(gene regulation)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과정은 우리 몸이 경험하는 다양한 환경적 조건에 의해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 결과 대를 이어 전승되는 형질이어서 마치 유전적 영향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 알고보면 환경에 의한 것인 경우도 많다. 


 후성유전학의 관점을 열어준 대표적인 사례가 네덜란드의 겨울 기근이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였던 1944년 9월. 나치 독일군은 연합군의 공격으로 수세에 몰렸고, 나치의 지배하에 있던 네덜란드에서는 저항운동이 더욱 거세졌다. 나치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네덜란드의 모든 식량을 독일로 실어 보낸 후, 완전히 봉쇄해버렸다. 외부로부터의 식량공급이 끊기고 겨울이 닥치자 네덜란드 사람들은 심각한 기근을 겪게되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네덜란드의 겨울기근(Hongerwinter) 사건이다. 1945년 5월 봉쇄가 풀리기까지 불과 몇 달 동안 약 2만 2천 명이 영양실조로 사망했을 만큼 끔찍한 사건이었다.


봄이 되어 독일군은 물러갔지만 그 사건의 여파는 계속되었다. 엄마뱃속에서 이 굶주림의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어 태어난 아이들은 나중에 여러 질병을 앓게 된다. 임신 3기( 임신 마지막 석 달)동안 엄마 뱃속에서 겨울기근을 겪고 태어난 아이들은 다른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에비해 고도비만이 되는 확률이 19배나 높았고, 대부분은 당뇨병 등 심각한 대사증후군에 시달렸다. 뿐만 아니라 30년 후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낳은 아이들조차 비만과 당뇨병을 앓는 비율이 여전히 높았다. 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엄마 뱃속에서 겨울기근을 겪은 태아는 산모가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했다. 이때 태아의 몸은 자연히 자신의 주변 환경에 영양분이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체득하게 된다. 탯줄을 통한 영양공급이 충분치 않은 상태가 몇 달간 지속되면서, 태아의 신체는 영양부족 환경에 적응해간다. 태아의 몸이 절약형 신진대사(thrift metabolism) 시스템을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신체의 각 기관이 영양부족에 대비해 최대한 많은 열량과 염분을 체내에 축적해두는 시스템이다. 예컨대 췌장은 혈액 속에 약간의 당분이라도 남아 있으면 인슐린을 충분히분출해 이를 모두 지방의 형태로 저장해두려 하고, 콩팥은 혈액 속 염분을 충분히 배출하지 않고 몸에 자꾸 저장해두려는 식이다. 힘든 환경에서도 살아남기 위해서 신체는 적응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며, 유전자 조절 과정을 통해서 절약형 신진대사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던 것이다.  


굶주림의 겨울은 단지 수개월 동안만 지속되었고, 곧 다시 풍족한 봄이 찾아왔다. 엄마 뱃속에서 영양부족에 시달리다 태어난 아기들은 출생 후에는 다시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 신생아들의 몸은 이미 절약형 신진대사 시스템을 갖춘 후였다. 따라서 영양분 공급이 충분한데도 당과 염분을 계속 체내에 축적하려는 경향을 보였고, 결국 높은 수준의 비만과 당뇨병을 얻게 된 것이다(Vaiserman,2011).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비만과 당뇨병 등 대사증후군을 겪던 아이들이 어느덧 자라서 어른이 되고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들의 몸은 여전히 절약형 신진대사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었다. 혈액 속 당분을 최대한 빨아들여 자기 몸의 지방으로 축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보통 산모들보다 혈액 속 영양분이 훨씬 부족했다. 그 결과 이들의 태아 역시 자신의 엄마와 마찬가지로 엄마 뱃속에서 영양이 부족한 환경에 직면하게 되었고, 엄마가 할머니뱃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태아시절의 유전자 조절과정을 통해 상당한 정도의 절약형 신진대사 체계를 구축하게 되었다. 결국 이 아이들도 태어난 후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비만과 당뇨병에 시달릴 수 수밖에 없었다. 절약형 신진대사라는 신체적 특성이 세대를 넘어 할머니로부터 손자 손녀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Stöger, 2008).


비만과 당뇨병을 앓는 엄마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자라서 비만과 당뇨병을 앓는다면, 우리는 얼핏 이를 ‘유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는 동일한 환경에 따른 특정한 형질의 세대 간 전승일 뿐, 유전자 자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엄마와 아기 모두 영양부족이라는 동일한환경에 처하면서 비슷한 신체적 반응을 보였고, 이에 따라 비슷한 질병을 앓게 된 것뿐이다. 이렇게 유전처럼 보이지만 비슷한 환경 때문에 자식이 부모의 여러 가지 성향을 닮게 되는 경우가 많다.


과다한 스트레스에 노출된 산모가 있다고 하자. 산모가 평균 이상의 스트레스를 계속 받게 되면 혈액 속 스트레스 호르몬의 수치는 높은 상태로 계속 유지된다. 태아는 산모의 스트레스 호르몬의 영향으로 뇌의 발달이 전반적으로 저조해진다. 출생 후 학습능력과 기억력이 저하될 뿐 아니라, 불안장애를 앓게 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산모의 스트레스 호르몬에 많이 노출된 태아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조절하는 뇌 부위( 글루코코르티코이드의 분비를 억제하는 신호를 보내는 뇌 부위)가 더욱 작아지고 기능이 약화된 채 태어난다. 결국 이런 아이는 평생 다른 사람보다 더 높은 수준의 혈중 스트레스 호르몬을 유지하게 된다. 나중에 이 아이가 자라서 성인이 되어 임신을 하면, 그 태아 역시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 호르몬에 노출되어 자신의 엄마와 마찬가지로 스트레스 호르몬을 조절하는 뇌 부위가 작아진 채 태어나게 된다. 따라서 신경질적이고 불안장애에 시달리는 산모는, 자기처럼 신경질적이고 불안장애에 시달리는 아이를 낳을 확률이 높다. 이 역시 겉으로는 유전적인 영향처럼 보이지만, 유전이 아니다. 비슷한 환경에 따른 후성유전학적 변화가 대를 이어 전승되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네덜란드 겨울기근을 겪은 비만과 당뇨병 환자들과 매우 비슷한 경우다.


그럼에도 스트레스와 불안장애에 시달리는 산모가 스트레스와 불안장애를 보이는 아이를 낳는 것이 전적으로 이러한 환경의 전승 때문인지, 아니면 유전적인 요소도 일부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실험 연구를 해야한다. 그러나 인간을 대상으로 이러한 실험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이클 미니와 달린 프란시스의 일련의 연구들은 쥐를 대상으로 교차육성실험(cross-fostering: 나은 어미와 기른 어미를 서로 바꿔가면서 태아의 성장과정을 비교하는 연구)을 해서 이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했다. 


쥐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자기 나름의 양육 스타일에 따라 새끼를 키운다. 어떤 어미 쥐는 새끼를 자주 핥고 쓰다듬는(licking and grooming) 습성이 있다. 이러한 어미 아래서 자란 새끼 쥐는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으며, 체내 스트레스 호르몬의 수치가 낮고 불안장애도 보이지 않는다. 학습능력과 기억력이 뛰어나‘미로 찾기’등 여러 과제를 잘 수행해낸다. 반면 새끼를 잘 보살피지도 않고, 거의 핥거나 쓰다듬지도 않는 어미의 새끼 쥐는, 체내의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높았으며 불안장애를 보였다. 이들은 학습능력과 기억력도 현저하게 낮았다. 이처럼 어미 쥐의 양육 스타일은 새끼 쥐의 뇌의 건강한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엄마의 애정 표현"이라는 환경적 요인이 새끼 쥐의 뇌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Caldji et al., 1998). 


실험실의 연구원들이 갓 태어난 새끼 쥐를 어미 쥐로부터 격리한 후 일부 쥐만 매일 일정 시간 쓰다듬어 주었더니, 이러한 스킨십을 받은 쥐는 그렇지 못한 쥐에 비해 스트레스 호르몬의 수준이 훨씬 낮았고, 뇌도 더 발달했으며, 기억력과 학습능력도 높았다. 어미의 손길과 사랑, 핥아주고 쓰다듬어주는 행동은 쥐뿐 아니라 원숭이의 두뇌발달과 학습능력 향상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그동안 많은 연구들을 통해 밝혀졌다.

미니와 프란시스는 스트레스 레벨이 높은 어미 쥐에서 태어난 새끼와 보통의 어미 쥐에서 태어난 새끼를 태어나자마자 12시간 이내에 서로 교차해서 양육시키는 실험을 통해 생물학적 어미 쥐 보다는 양육한 어미 쥐의 스트레스 레벨이 새끼 쥐의 유전형질발현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발견했다.(Francis, Diorio, Liu, & Meanye, 1999). 스트레스 레벨이 높은 어미 쥐는 유전자 보다는 행동(양육방식)에 의해서 새끼 쥐의 스트레스 조절관련 유전형질 발현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어미 쥐는 유전자를 통해 새끼 쥐에게 영향을 미친다기 보다는 자신의 행동이라는 환경을 통해 새끼 쥐에게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 


프란시스 교수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태어나기 전의 양육환경을 바꾸는 교차양육(prenatal cross-fostering)까지 시도했다. 임신한 어미 쥐의 배를 갈라서 수정란 일부를 꺼내어 다른 어미 쥐 태반의 수정란과 교환해서 이식하는 실험을 했다. 정교한 수술 덕분에 어미가 바뀐 태아 쥐들은 임신기간을 다 채우고 건강하게 태어났다 (Francis et al., 2003). 바꿔 이식된 쥐들은 서로 다른 유전자를 가졌지만, 엄마의 태반이라는 ‘환경’은 공유하게 된 것이다. 유전적으로 불안증을 지닌 어미 쥐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지만 정상 어미 쥐 태반으로 이식된 쥐는, 태어난 후 불안증세를 거의 보이지 않았다. 반면 유전적으로 정상인 어미 쥐의 새끼는 불안증이 있는 산모 쥐에 이식되어 태어나자 높은 수준의 불안증을 보였다. 태아가 훗날 스트레스와 불안증에 시달릴지의 여부는, 유전자보다도 아니라 임신기간 중 엄마의 태반 속을 흐르는 혈액 속의 스트레스 호르몬의 수준이 얼마나 높으냐에 달려 있음을 결정적으로 보여준 실험이었다. 이러한 종류의 연구들은 태아 때 경험한 "엄마 뱃속"이라는 환경이 출생 후 성인이 될 때까지도 계속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두 다 "환경"이 유전자 발현의 변화를 가져옴을 보여주는 후성유전학적인 연구들이라 할 수 있다.


교차양육 연구 결과가 함의하는 바는 두 가지다. 하나는 얼핏 보기에 선천적이고도 유전적인 영향처럼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부모라는 "환경"에 의한 것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러한 "환경"은 실제로 유전자 조절 과정과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미치며, 그 결과 신체의 작동방식과 뇌의 발달에까지 지속적인 영향을 줄 정도로 강력하다는 것이다. 


환경이냐 유전이냐의 문제와 관련해서 살펴볼만한 또 다른 중요한 연구는 1960년대에 세이무어 케티에 의해 이루어진 입양된 조현병 환자에 관한 것이다(Kety et al., 1968). 195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조현병(정신분열증)의 주된 발병 원인은 부모의 잘못된 양육방식이라고 여겨졌다. 자녀가 조현병을 앓으면 당연히 부모가 뭔가 잘못 키운 것이라는 믿음이 강하던 시절이었고 따라서 환자들의 부모는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조현병을 비롯한 많은 정신질환은 본질적으로 한 인간이 도저히 견뎌내기 힘든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선택한 어쩔 수 없는 전략이라는 것이 당시 널리 퍼진 믿음이었다. 따라서 치료 방법 역시 어린 시절에 겪었던 무언가 나쁜 경험에 대한 기억을 재해석하고 풀어내는 식의 정신분석학적인 상담치료가 주를 이루었다. 케티는 이러한 "상식"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데이터 분석을 통해서 널리 퍼져있는 "의학적 상식"에 도전한다. 


케티 교수와 그의 동료들은 덴마크에서 어린 시절 입양된 5,500 명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생모가 조현병을 앓았던 아이들은 조현병을 앓지 않는 정상 부모에게 입양이 되어 길러졌어도 조현병 발병률이 매우 높았다. 참고로, 조현병은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처음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만약 부모의 양육 방식이 조현병을 유발 시키는 주된 원인이 맞다면, 생모의 조현병 여부는 입양아의 조현병 발병률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입양아의 조현병 발병률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생모의 조현병 여부였던 것이다. 


또한 조현병 입양아의 양부모나 가족 중에 조현병 환자가 있는 비율과 건강한 입양아의 양부모나 가족 중에 조현병 환자가 있는 비율은 서로 비슷했다. 즉 입양아의 조현별 발병률은 생모의 조현병과 관계가 깊을 뿐 양부모와는 별관련이 없다는 사실이 방대한 자료분석에 의해 밝혀진 것이다. 그리고 후속 연구들은 조현병 자체뿐만 아니라 우울증이나 알콜중독 등 다른 정신질환도 이러한 경향을 보인다는 것을 밝혀냈다 (Kety, 1988). 


케티의 연구는 많은 정신질환이 어린 시절의 경험이나 기억보다는 생물학적 원인에서 근본적으로 발생한다는 획기적인 관점의 전환을 가져다 주었다. 정신질환은 유전에 의해서 선천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연구결과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유전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입양아 중에 생모나 양부모가 모두 조현병이 없는 경우의 발병률은 1% 가량이었다. 이것은 조현병의 보편적인 발병률이다. 인구 100명 중에 한두명이 걸리는 것이 조현병이다. 그런데 생모에게 조현병력이 있을 경우 그 입양아의 발병률은 9%로 나타났다. 조현병이 유전적 영향을 받는 것을 강하게 암시하는 수치다. 그런데 생모가 조현병력이 없어도 아이를 입양한 부모중에 조현병 환자가 있는 경우에는, 즉 아이가 조현병 가족이라는 "환경" 속에서 양육된 경우에는 발병률이 3% 였다. 다시 말해서 유전적인 영향이 없어도 환경만으로도 조현병 발병률은 상승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생모도 조현병력이 있고 입양한 부모도 조현병력이 있는 경우는 발병률이 17%로 치솟았다는 사실이다. 이 결과는 유전자와 환경은 서로 상호작용을 하여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한다. 즉 같은 조현병 유전자를 지녔다 하더라도 기른 부모가 조현병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발병률이 9%에서 17%로 상승했던 것이다 (Sapolsky, 2010). 이러한 연구 결과는 유전와 환경은 서로 상호작용하여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유전자에 관한 수많은 연구 결과들을 종합해보면 유전자는 스스로 특정한 생물적 사건을 만들어내는 존재가 아니다. 특정한 유전자가 있다고 해서 항상 그것이 저절로 발현되지는 않는다. 유전자는 일종의 설계도에 불과하다. 그 설계도를 읽는 과정이 전사(transcription)이며 그에 따라 건물을 짓는 과정이 유전자 조절(gene regulation)다. 그런데 이러한 전사와 유전자 조절에 환경이 강한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환경"이란 세포의 분자생물학적 차원에서부터 한 인간이 겪는 개인적 혹은 공동체적 경험에 이르기까지 모든 차원의 환경적 조건을 의미한다. 환경은 유전자 자체의 염기서열을 바꾸기보다는 흔히 전사의 과정을 바꿈으로서 유전자의 작동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Sapolsky, 2017). 이러한 변화의 효과는 어떠한 변화냐에 따라 짧은 시간동안 지속될 수도 있고 평생 지속될 수도 있다.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의 개념을 잘 설명해주는 것은 로버트 새폴스키의 스탠포드대학교 학부 수업인 <인간 행동 생물학> 강의다. 2010년 봄학기에 진행되었던 이 강의는 전체 수업 내용이 애플 아이튠즈에 올라 있으며, 유튜브를 통해서도 쉽게 찾아서 들어볼 수 있다. 이 강의는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수 많은 강의 중에서 단연 최고였다. 나는 이 수업의 모든 강의를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해서 들으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게 되었으며, 세상과 인간과 사회를 보는 관점이 확 바뀌었다. 무언가 속아 살아왔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적어도 인간에 대해 연구하는 사회과학도라면 꼭 알았어야 하는 기본적인 상식들조차 너무도 모르고 살아 왔음을 깨닫게 해주는 수업이었다. 그의 수업을 듣고 나서부터 나는 새폴스키 교수를 나의 지적인 영웅으로 마음 속에 모시고 살고 있다. 이 수업의 많은 내용은 2017년도에 출간된 책 "Behave"에 잘 정리되어 있다 (Sapolsky, 2017).


새폴스키 교수는 가상의 사례를 들어 유전자와 환경간의 관계에 대해 설명한다. 우리도 어떤 식물의 성장과 관련된 세가지 유전자 변형체 1, 2, 3이 존재한다고 가정하자. 


<사례 1> 사막에 사는 이 식물의 경우 1, 2, 3 의 키가 모두 동일하게 50cm이고, 습한 정글 지역 사는 이 식물의 키는 모두 1m다. 

<사례 2> 사막에 사는 이 식물의 키는 1번 유전자변형체를 지닌 경우 10cm, 2 번을 지닌 경우에는 50cm, 3번을 지닌 경우에는 1m다. 한편 정글에 사는 경우에도 이러한 경향이 동일하게 나타난다. 

<사례 3>  사막에 사는 이 식물은 1, 2, 3 유전자 변형체에 따라 각각 키가 10cm, 50cm, 1m다. 그런데 정글에 사는 이 식물은 1, 2, 3 유전자 변형체에 따라 키가 1m, 50cm, 10cm다. 


사례 1의 경우에는 이 유전자는 식물의 키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오직 환경만이 100% 영향을 미친다.  습기가 많은 곳에서는 유전자 변형체와 관계없이 이 식물은 크게 자란다. 사례 2의 경우에는 환경의 영향은 0%이고 유전자의 영향은 100%라 할 수 있다. 즉 습기가 많은 곳이든 건조한 곳이든 상관없이 1번 유전자변형체를 지닌 이 식물은 키가 작고, 2번을 지니면 중간 키, 3번을 지니면 키가 커진다. 


사례 3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이 경우에는 환경과 유전자가 서로 상호작용을 한다. 이 유전자의 1, 2, 3 변형체는 날씨라는 조건에 따라 그 작동 방식이 다르다. 즉 건조한 지역에서는 1번 유전자 변형체는 키를 작게 하고 3번은 크게 하는 반면에, 습한 지역에서는 1번이 키를 크게 하고 3번은 작게 한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는 환경과 유전자의 영향력을 동시에 고려해야만 한다. 이 경우에 이 유전자 변형체가 키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것은 기후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기후가 이 식물의 키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묻는 것 역시 무의미하다. 그것은 어떤 유전자 변형체를 갖고 있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즉 환경의 영향은 유전자에 의해서 조건지워지고, 동시에 유전자의 영향은 환경에 의해서 조건지워진다. 

현실에서는 사례 1이나 2와 같이 유전자나 환경이 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사례 3의 경우처럼 서로 상호작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호작용의 방식이 보다 복잡하고 미묘한 경우도 많다. 예컨대 사막에서는 유전자변형체 1, 2, 3이 키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반면에 정글에서는 매우 강한 영향을 미치는 식이다. 따라서 사막에서 자란 이 식물만 관찰해서는 이 유전자 변형체는 키와는 관련이 없는 유전자라고 잘못된 해석을 내릴 수도 있다. 


사례 3처럼 환경과 상호작용하여 인간의 행동과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로 알려져 널리 연구되어 온 것이 모노아민 산화효소 A(monoamine oxidase A: MAO-A)를 생산해내는 유전자다. 이 효소를 생산하는 유전자의 이름 역시 편의상 MAO-A 유전자라고 불리운다. 즉 MAO-A는 시냅스에 존재하는 세로토닌 등의 신경전달물질을 산화시켜 없애버리는 효소를 생산하는 유전자다. MAO-A 유전자의 변형으로 인해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MAO-A 촉진유전자의 기능 이상으로 인해) 모노아민 산화효소를 제대로 생산해내지 못하는 경우,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신경세포 시냅스 사이에는 보다 많은 세로토닌이 존재하게 된다. 


실제로 모노아민 산화효소를 억제하면 시냅스 사이에 존재하는 세로토닌의 양이 증가하는데, 이를 이용한 우울증 치료제가 MAO 억제제 (MAO inhibitor: MAOI). MAOI는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 SSRI)와 함께 대표적인 우울증 치료 약물이다. 모노아민 산화효소를 억제해서 세로토닌이 산화되는 것을 막든, 한번 분비된 세로토닌이 시냅스 말단에서 재흡수되어 사라지는 것을 막든 아무튼  MAOI나  SSRI 계통의 약물은 모두 시냅스 사이에 세로토닌 레벨을 상승시키는 기능이 있다. 그 결과 기분도 좋아지고 우울증도 사라진다. SSRI 계열 약물의 대표적인 프로작은 별명이 "해피 드럭"이었다. 이는 시냅스 사이에 세로토닌 레벨이 높으면 행복하리라는 지나친 단순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그렇게 단순하게 작동하지는 않는다.  


MAO-A 유전자에 대한 관심을 촉발한 유명한 논문은 1993년에 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된 네덜란드의 한 가족에 관한 논문이다 (Brunner et al., 1993). 이 가족의 구성원들은 MAO-A 유전자의 변형으로 인해 세로토닌 등을 분해하는 효소를 전혀 생산해내지 못했다. 따라서 시냅스 사이에 세로토닌 레벨이 엄청 높았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분노조절 장애와 충동적인 공격성향을 확연하게 보였다. 이러한 성향은 남자 성인에게서 더 확연하게 드러났다. 이 논문의 저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그동안 많은 연구들이 세로토닌 레벨이 낮을수록 공격적 성향을 보인다는 사실을 보고해왔기 때문이다. 이 논문의 저자들은 결론에서 자신들의 발견의 결과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서 다만 몇가지 추측만을 내세웠다. 그러면서 후속연구에서 동물실험등을 통해 이 네덜란드의 가족들처럼 MAO-A 유전자가 작동하지 않도록 해보는 실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에 응답하는 논문이 2년 뒤에 역시 같은 학술지인 사이언스에 게재되었다 (Cases et al., 1995). 이 논문의 연구자들은 쥐를 대상으로 MAO-A 유전자 조작을 해서 마치 네덜런드 가족처럼 세로토닌 등을 분해하는 효소를 생산하지 못하게 했다. 그 결과 쥐들은 지나친 공포반응을 보였고 특히 수컷 어른 쥐에서는 심한 공격성향이 나타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 쥐의 세로토닌 레벨은 정상 쥐에 비해 무려 9배에 달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신체 혈관 속의 세로토닌 레벨을 측정한다든지 약물을 통해 일시적으로 세로토닌 레벨을 조절하는 많은 연구들은 세로토닌 레벨이 낮을 수록 높은 수준의 공격성과 스트레스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편 MAO-A 유전자를 연구하는 논문들은 MAO-A 유전자의 변형으로 모노아민 산화효소가 분비되지 않는 경우 (즉 세로토닌 레벨이 높은 경우)일수록 높은 수준의 공격성과 스트레스 반응을 보인다고 보고 한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이는 우리 신체의 작동 방식 특히 신경체계의 작동 방식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예다. 시냅스 사이에 세로토닌 레벨이 공격성향이 공포반응 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이에 대한 답 역시 경우에 따라 다르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예컨대 스트레스와 우울증 증상으로 인해 정상적인 수준보다 세로토닌이 고갈된 상태인 우울증 환자의 경우라면 SSRI 계통의 약물을 통해서 일시적으로 세로토닌 레벨을 향상시켜주는 것은 공격성을 낮추고 우울증 증세도 가라앉혀 준다. 


반면에 유전적인 결함으로 MAO-A 유전자가 처음부터 작동을 제대로 못하지 않은 경우에는 신체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반응한다. 유전자 변형이 있는 사람은 모노아민을 산화시키는 효소가 처음부터 부족하므로 이 경우 신경세포들은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세로토닌을 재흡수하는 기능을 과도하게 작동하는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뿐만아니라 세로토닌이 신경전달물질로 작동하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상돌기 측에 세로토닌 수용체가 작동을 해야하는데 그러한 수용체의 숫자 자체를 대폭 줄여버림으로써 세로토닌이 시냅스 사이에 아무리 많다해도 그것이 별영향을 미치지 못하게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약물 등을 통해 일시적으로 세로토닌 레벨을 높이는 것과 MAO-A 유전자의 변형으로 인해 세로토닌 레벨이 높아진 상태인 사람은 결과적으로 정반대의 행동 패턴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Sapolsky, 2017). 나는 MAO-A 유전자의 변형과 그에 따른 세로토닌 레벨의 차이가 가져오는 효과에 대해 이렇게 논리적이고도 깔끔하게 정리하는 새폴스키 교수를 존경할 수 밖에 없다. 물론 그의 해석에도 약점이 있을 수 있고 훗날 다른 연구결과에 의해 이러한 해석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밝혀질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많은 MAO-A 유전자 관련 논문과 논의들이 많은 혼란에 빠져 있는 듯한 모습과 비교해보면 새폴스키 교수의 논리적 해석은 매우 매력적이다. 


MAO-A 유전자가 변형으로 인해 효소를 잘 생산해내지 못하는 경우 인간이 공격성향을 보인다는 사실에 흥분한 나머지 일부 학자들은 이를 "전사(warrior)의 유전자"라고까지 부르는 촌극이 벌어졌다(Holden, 2008). 마오리족에는 변형된 MAO-A 유전자, 즉 전사유전자를 지닌 사람의 비율이 높아서 더 폭력적일 수 있다는 해석까지 나왔고( Eccles et al, 2012), 살인자에 대한 법원 판결에서 이 유전자를 지닌 사람의 형을 경감해주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 범죄자는 전사유전자로 인해 폭력성향을 운명적으로 타고 났으므로 이를 감안해주어야 한다는 변호인의 변론이 받아들여졌던 것이다(Halwani & Krupp, 2004). "전사유전자" 개념은 많은 비판에 직면하였으며 (Wensley & King, 2008), 이 논란은 유전자가 인간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섣부른 단순화가 가져올 수 있는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낸 사례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특정 유전자가 마치 위에서 살펴본 <사례2>처럼 작동할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MAO-A 유전자야말로 <사례 3>처럼 작동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MAO-A 유전자의 변형을 지닌 사람은 어린 시절에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는 경우에만 반사회적이고도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다. MAO-A 유전자 변형을 지닌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학대를 받은 경험이 없이 좋은 환경에 자라났다면 폭력성향이나 정신건강 면에서 오히려 MAO-A 유전자가 정상인 사람보다 더 나았다 (그림 참조). 즉 MAO-A 유전자 변형은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에게는 좋은 결과를 가져오고 나쁜 환경에서 자란 사람에게만 폭력성향을 증폭시킨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Kim-Cohen et al., 2006). 다른 연구들도 비슷한 연구 결과를 보고 했다. MAO-A 유전자의 변형은 어린 시절에 학대를 받은 경우에만 감정조절 능력과 사회인지능력을 낮춘다는 것이다 (Buckholtz, & Meyer-Lindenberg, 2008). MAO-A 유전자 변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는 그 사람이 자라온 환경에 달려 있고, 그사람의 환경의 영향은 MAO-A 유전자 변형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사례3>이다. 


(그림 출처: Kim-Cohen et al., 2006)


한편, MAO-A 유전자뿐만아니라 5HTT 유전자 변형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5HTT 유전자는 시냅스 사이의 세로토닌을 재흡수하는 단백질을 생산해내는 유전자다. 5HTT 유전자 변형은 우울증과 연관이 많다고 알려져 있는데 특히 스트레스를 많이 경험한 사람에게서 그 영향력이 크게 나타나는 것이 밝혀졌다(Caspi et al., 2003). 5HTT 유전자 변형이 있으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겪어야 우울증 발병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니 이 역시 전형적인 <사례3>이다.


MAO-A 유전자 변형은 어린 시절에 학대나 트라우마를 겪은 경우에 한해서 성인이 되었을 때 공격성향과 반사회적 행동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는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Checknita et al., 2020; Frazzetto et al., 2007). MAO-A 유전자 (정확하게 말하면 촉진유전자 MAOA promoter)의 변형의 효과를 어린 시절의 학대와 트라우마 경험과 관련지어서 살펴본 27개의 연구에 대한 메타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이러한 경향은 특히 남성에게서 강하게 나타났다. 아마도 MAO-A 유전자가 X염색체 위에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은 MAO-A 유전자의 변형의 효과가 어린 시절의 학대와 별다른 상호작용 효과를 보이지 않았다. 다만 학대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반사회적 행동을 약하게나마 예측했다(Byrd & Manuck, 2014). 즉 여성에게 있어서 공격성향과 반사회적 행동을 유발시키는 것은 MAO-A 유전자의 결함 여부보다 어린 시절의 학대라는 환경적 요인이 더 크다는 뜻이다. 유전자가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은 이처럼 복잡하다. 


한편, 유전적으로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에 관한 연구 결과가 곧 유전자의 선천적 유전 (heredity)효과를 입증하는 한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도 있다. 첫째는 일란성 쌍둥이와 이란성 쌍둥이를 단순 비교 하는데 있어서의 문제점이다. 일란성 쌍둥이는 생긴 것도 비슷하고 성별이 같다. 이란성 쌍둥이는 생긴 것 (몸집, 체형, 얼굴)도 다르고 성별이 다를 수도 있다. 따라서 성장과정 중에 부모나 가족 등 주변 사람들이 이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이 다르게 된다. 


둘째, 주의력결핍장애 (attention deficit disorder: ADD)의 경우 서로 다른 곳에 입양된 일란성 쌍둥이 중 하나가 ADD일 경우 다른 쪽도 ADD일 가능성이 50% 이상이 된다. 이것을 단순한 "유전적 효과"(heredity)로 볼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만약 유전적 효과라면 유전자가 완전하게 똑같은 일란성 쌍둥이라면 환경에 상관 없이 거의 100%의 일치율을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입양"이라는 것 자체가 주는 효과도 있다. 입양되지 않은 다른 보통 아이들에 비해서 "입양"이라는 과정을 거치는 아이들은 어린 시절 엄청난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된다. 새로운 가족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아이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다.


일란성 쌍둥이는 아무리 서로 다른 가정으로 입양된다 하더라도 출생 직전과 직후라는 매우 결정적인 시기에 동일한 환경을 경험하게 된다. 입양은 보통 출생 후 적어도 수개월 이후에 진행된다. 다시 말해서 태어나고 나서 일란성 쌍둥이는 수개월간 이상 동일한 환경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엄마 뱃속에서의 9달이라는 매우 중요한 환경을 동일하게 경험하게 된다. 입양을 결정하게 되는 이유는 보통 아이를 키울 수 없어서다. 그렇기에 입양된 아이들은 온가족이 환영하는 아이로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즉 자신의 아이들을 입양시키는 산모는 임신 기간동안에 다른 산모에 비해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가능성이 있다. 산모의 스트레스는 혈중 스트레스 호르몬의 레벨의 향상시켜서 태아아 두뇌발달과 신체 발달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는 많다. 출생전과 후에 경험하게 되는 이러한 산모의 스트레스는 서로 다른 곳에 입양해서 성장하게 되는 일란성 쌍둥이에게 동일한 조건을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형제 자매들은 비록 쌍둥이 만큼은 아니라할지라도 상당한 정도의 유전자를 공유한다. 그러나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나서 같은 가정환경에서 성장한다 하더라도 첫째냐 둘째냐에 따라 ADD의 발병 빈도가 확연히 달라진다. 보통 첫째 아이에게서 ADD가 더 많이 나타난다. 이유는 물론 유전적인 차이가 아니다. 이 역시 환경의 차이다. 보통 첫째는 인생의 첫 부분을 "유일한 자녀"로서 자라난다. 부모 사이에 끼어든 유일한 존재다. 존재에 대한 불안감이 기본적으로 크다. 그러나  둘째는 다르다. 태어나 보니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동료"가 이미 한명 있는 것이다. 게다가 보통 가정에서는 첫째를 낳아서 기를때보다 둘째를 나아서 기를때 부모의 소득은 더 증가해있고 보다 더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첫째를 낳아서 기를 때보다 둘째를 나아서 기를 때 아이 양육에 대한 부모의 스트레스는 훨씬 더 감소되어 있다. 이미 한번 경험해본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통 부모들의 기대는 첫째에 대해 더 우선적으로 집중되어 있다. 무엇이든 먼저 도달해서 먼저 개척해야 한다. 학교도 먼저 들어가서 학생의 역할도 해내야 하고, 중학생, 고등학생도 먼저 되어서 동생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기대감도 받게된다. 첫째는 보통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첫째의 부모는 양육에 대해 경험이 전혀 없는 미숙한 사람들이고, 경제적으로도 열악하며, 더 큰 스트레스를 스스로 받고 있으면서도, 아이에 대한 기대 수준은 더 높다. 둘째의 부모는 양육에 대한 경험도 있고, 더 여유있으며, 경제적으로도 상대적으로 더 풍족하고, 스트레스도 덜 받고 있으며 아이에 대한 기대 수준도 상대적으로 더 낮다. 말하자면 첫째와 둘째는 서로 "다른 부모"라는 환경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성인 ADD라는 진단을 50세 넘어서 받은 가보르 마테 박사의 경우, 자신은 2차대전 직전, 나치의 헝가리 침공 직전에 태어났으며, 자신의 동생들은 전쟁 후에 평화가 찾아온 다음에 출생했다고 한다 (Maté, 2019).


마테 박사에 따르면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나 같은 가정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같은 집에서 살며, 같은 동네의 학교를 다니고, 같은 음식을 먹는 등의 같은 환경을 경험하지만 이것은 아이들의 두뇌 발달과 관련해서는 부차적으로 중요한 사항일 뿐이라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환경"은 부모의 감정 상태다. 부모들의 심리적인 긴장 상태가 아이들의 ADD를 유발하는 가장 보편적이고도 주된 원인이다. 어린 아이들에게 있어서 세상은 부모를 통해서 나타난다. 부모의 의도하지 않은 미묘한 긴장, 표정, 목소리 등 감정적인 큐는 아이들이 어떻게 세상을 대하느냐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아이들이 세상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는 것은 아이들이 경험하는 세상이 어떤 것인가를 결정짓게 된다.


이제 우리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유전자와 환경 중 어느 것이 중요한가? 물론 둘 다 중요하다. 둘이 함께 인간의 성향에 영향을 미치므로. 이것은 마치 사각형의 넓이가 가로변의 길이와 세로변의 길이에 의해서 결정되는 상황과 비슷하다. 사각형의 면적을 알기 위해서 가로 길이와 세로 길이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고 묻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유전자와 환경 모두 다 중요하다는 답변으로 만족해야 할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우리는 마음근력과 성취역량의 향상을 원한다. 물론 마음근력은 유전자와 환경적 요인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런데 유전자는 이미 주어진 것이다. 유전자 자체를 바꾸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유전자의 작동방식과 발현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을 바꾸는 것은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항상 환경이다. 


MAO-A 유전자 변형으로 인해 공격성향이 높고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은 마음근력이 약하다고 할 수 있다.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이러한 성향은 편도체의 활성화와 관련이 높다. 편도체가 활성화되면 마음근력의 핵심인 전전두피질의 기능은 약화된다. MAO-A 유전자 변형이 있는 사람은 이처럼 허약한 마음근력의 소유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에게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은 MAO-A 유전자 변형이 있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어린 시절 학대를 받지 않는 가정환경과 교육환경이다. 그리고 그러한 환경은 우리가 제도적이고도 문화적인 노력을 통해서 만들어갈 수 있다. 


유전자의 작동 방식에 영향을 주는 "환경"은 세포내 분자생물학의 차원에서부터, 세포, 뉴런, 장기, 개인, 집단, 사회와 문화에 이르끼가지 다양한 층위에 걸친 환경을 다 의미한다. 미세한 차원에서부터 거시적인 차원에 이르기까지 환경은 우리의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우리가 이 책에서 관심을 갖고 살펴볼 "환경"은 우리의 몸과 마음이 일상생활 속에서 겪는 다양한 경험들이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반복적이고도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우리의 몸과 뇌가 경험하는 환경에 변화를 가져오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가 곧 마음근력 훈련이다.


훈련을 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 몸과 마음으로 하여금 일정한 환경에 반복적으로 놓이도록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의 변화는 우리가 지금껏 살펴본 바와 같이 유전자 자체를 바꿀 수는 없지만 그것의 조절과 발현방식은 바꿀 수 있다. MAO-A 유전자 변형 자체를 바꿀 수는 없지만 (그것은 선천적인 것이다) 아이가 학대나 트라우마를 경험하지 않도록 좋은 환경을 조성해줌으로써 MAO-A 유전자의 작동 방식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내면소통훈련을 통한 마음근력 향상은 우리의 몸과 마음이 경험하는 환경을 스스로 바꿈으로써 나 자신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시켜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 없이 몸과 마음에 다양한 환경을 제공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 움직임이나 운동, 감정의 유발, 수면 방식, 생각하고 말하는 방식, 타인과의 소통 방식과 인간관계 등이 모두 우리의 몸과 마음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험들이다. 이 책에서는 특히 내 몸과의 내면소통 방식을 개선함으로써 편도체를 안정화하고, 내 마음과의 내면소통을 통해 전전두피질 활성화를 하는 습관을 들이는 훈련들을 살펴볼 것이다.  마음근력 훈련이란 결국 나와 내 몸, 나와 내 마음 사이의 바람직하고도 건강한 소통의 습관을 들이는 내면소통 훈련이라 할 수 있다. 반복적인 훈련은 우리 몸의 유전자 조절 과정에 영향을 미칠뿐만 아니라 신경세포간의 연결망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 불리우는 신경세포간의 연결망 변화는 기능적 연결성 (functional connectivity)뿐만아니라 구조적 연결성(structural connectivity)의 변화를 통해 행동 방식, 감정 조절, 성취역량 등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신경가소성 덕분에 체계적이고도 반복적인 훈련은 수주 혹은 수개월 내에 뇌의 특정한 뉴럴네트워크를 약화시키거나 혹은 강화시킬 수 있다. 후성유전학적인 연구들과 신경가소성에 관한 다양한 연구들은 내면소통 훈련을 통해 인간의 몸과 마음을 실제로 변화시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훈련을 통해 마음근력을 향상시킨다는 것은 신경가소성에 의해 뇌의 신경망에 일정한 변화를 가져온다는 뜻이다. 


참고사항: 이 글은 출판계약을 맺고 현재 교정작업 중인 책 원고의 일부입니다. 인용이나 복제 사용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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