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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주 사는 이야기 Aug 25. 2022

호주 간호사 되기 우여곡절 4

내 첫 간호사 일 구하기.


시험 점수가 나오고, 간호 등록을 하고, 정식 간호 등록증을 받기까지 6주 정도가 소요되었다.

그런데 이 6 주 동안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신나는, 가슴이 가벼운 6주였지 않나 싶다.


가슴의 돌덩이가 쏙 내려가니, 라면을 먹어도 그렇게 맛있을 수 없고,

공기를 훅 들어마셔도 머릿속에 두통 하나 없이 쑤욱 그렇게 달달하게 내려갔다.

밥을 먹어도 체하지도 않았고, 운동을 할 때도, 몸이 너무 가벼워 날라 갈까 염려될 만큼 몸과 마음이 가벼웠다.


스트레스란 그런 거였던 거다.

날 야금야금 먹어 치우던 개미지옥,

음식 안에 든 독 한 스푼,


그 스트레스를 제거하고 난 이제야 드디어 호주 생활을 즐기기 시작했다.

학교 다니면서는, 학교 공부에 아르바이트에 바빴고,

학교 마치고 나면 바로 달달한 호주 생활이 있을 줄 알았지만, 거진 8개월의 아이엘츠 생활로 나의 영혼은 말라갔었으니,

이제야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6주 동안의 대 작전 중 하나는 일 구하기였다. 김새는 이야기 기는 해도,

이 때는 일을 구하는 것조차도 스트레스 없이 가능했다.


놀기만 할 수도 있었지만, 그건 지나친 사치였고, 정책이 바뀌어서 정리 해고된 경력 간호사들도

요양원으로 크게 유입이 되던 시기라, 어서 빨리 자리를 꿰차야 했다.


그 당시 정부 관계자들 때문에 공립 병원들에서 대규모 인력 감축이 일어났다.( 정말 바보 같은 정치로, 돈을 어마 어마하게 낭비한 사건인데,

공립 병원 관계자들을 대규모 정리해고를 한 것이다. 그러 인해 발생한, 위로금 규모는 상상을 초월하는데, 더 웃긴 건,

결국 그렇게 위로금을 받고 나간 의사 간호사들이 다음날 다시 에이전시로 같은 병원으로 근무를 하러 들어가고,

또다시 1년 뒤에는 다른 공립 병원으로 채용되는 정말! 비 정상적인

정부 정책이었다.)- 아직도 이 정책에 대해 많은 간호사들이 스튜피드!! 하다고 하지만, 사실 그로 인해 적잖은 위로금이 삶에

큰 단비가 된 시니어 간호사들도 많다. ( 대부분, 5 만불 정도 받았다고 한다.)


그 감축으로, 우리 학교에서도 병원으로 일을 구해 나가는 일이 드물었다. - 걱정 마시라 - 지금은 국공립 병원에서 다 모셔 가려고 난리다!

그렇기에 병원은 일단 접어 두고, 나는 요양원을 공략하기로 했다.

일단 AIN (assistant in nursing)이라는 말로, 간호조무사로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들어간 간호조무사로 6주를 보내고, 등록증이 나오면 매니저랑 면답 하여 간호사가 되기로 결정했다.

아직 정식 면허가 나온 상태가 아니므로, 어차피 아직은 조무사로 일하는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만약, 간호 자격증이 있는데, 조무사로 일하는 건 불법이다. 왜냐하면, 간호사 월급을 받아야 하는데, 조무사 월급을 받는다는 이유로….


여하튼, 그렇게 들어간 요양원은 수녀원에서 운영하던 고아원이 요양원으로 변한 케이스였는데, 너무너무 이쁜 곳이었다.

밤에는 무섭긴 해도, 널찍한 땅에, 바닷가가 바로 보이는 정말 아름답고 이쁜 곳!.

사람들도 다들 착했고, 요양원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엄청 착해서 다행히 첫 간호사로서 적응은 쉬웠다.

그리고 널싱홈(요양원)은 널스가 아무래도 제일 윗 간부급(매니저급)이라, 밑에 조무사도 관리 감독도 함께 한다.


그래서 간호조무사와 간호사는 그런 계급 체계가 있다.

그리고 우리 윗 매니저들이 기강을 좀 잘 잡아놔서, 드센 간호조무사들도 함부로 간호사들의 권위에 도전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게으른 간호조무사가 일을 안 하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방치하면, 그건 바로 안전에 관련된 일이라

바로 시정 조치하거나 안되면, 해고를 해서라도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하기에, 그런 관리 감독은 정당한 것이기에,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와서 계급은 당연히 존재했고, 중요한 문제였다.


하지만,

사람을 갈구는(?) 불링은 어디에나 존재했다. 이 아름다운 곳이라고 없을 리 만무했다.

내가 일을 간호조무사로 처음 일할 때부터,

정말 쫓아다니며 잔소리 잔소리하던 두 명이 있었다. 왜 그럴까?? 여하튼, 그냥 힘을 과시하고 싶었던 거 같다.

가르쳐 주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이건 아니다, 그렇게 하지 마라.. 이거였다.

그런데, 자꾸 쫓아다니면서, 잔소리를 하길래, 하아.. 참자, 배우는 거라 생각하고 참자… 부들부들

6주 뒤에 두고 보자며 ( 내가 곧 간호사가 될 거라는 이야기는 절대 이야기하지 않았다.)……


간호조무사는 파란색 셔츠를 입고 일하고, 간호사는 하얀색 셔츠를 입는데,

대망의 6주 후, 간호사로 일한 첫날.

나는 당당히 흰 셔츠를 빳빳하게 다려 입고 나갔다.

새로 산 하얀 셔츠를 더 빳!!!! 빳!! 하게 다려 입고, 간호 구두를 신고 화장도 좀 힘을 주어하고 갔다.

그러고 요양원에 딱 들어선 순간

모든 사람들도 놀랐지만, 딱 그 두 간호조무사의 얼굴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제 판이 바뀌었다.


니 네둘 이제 뒤졌어!

두고 보자.



이 두 친구들의 표정은 아직까지 내 뇌 해마에

똬!! 악 새겨져 있다.


이 통쾌함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아직까지 한 번씩 나를 크게 웃게 해 준다.


뭐 사실 이렇다 할 복수전은 없다. 하하하.

왜냐하면, 그네들의 일이 강약 강약. 강한 자에겐 약하고, 약한 자에겐 강한지라,

그날 이후로 나에게는 약자가 되어. 별다른 문제거리를 보여주지 않았고.

주변에 물어봐도, 이젠 착해졌다고(?) 하기에

열심히 일하는 아이들이기에, 격려만 했을 뿐이다.

사람은 변하기도 하니까..??


ㅎㅎ 이렇게 내 널싱홈 경험은 재미나고도 신나게 이어져 갔다.




널싱홈 후기.


그러나 35 명의 약을 주느라, 상처 치료나 의사나 가족들과의 연락 등을 해야 하기에

항상 일에 쫓겨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바로 임신을 하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따로 임신을 준비했던 것도, 조심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정말 기분이 좋아서(?) 아님 마음이 가벼워서 그랬는지 아기가 덜컥 그제야 들어 섰다.

정말 신기했다.!!

때를 알고 와준 아기가 너무도 신기하고 신비로웠다.

우린 사실 조심도 안 하고 있어서, 둘 다 불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임신을 한 몸으로 물 한잔 마시기 힘든 환경에서 일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매번 점심시간을 놓이기 일수 엿고, 조금 아픈 환자가 생겨서 팔로업을 다 하고 나면, 쉬는 시간도 물 건너가고 다른 일이

왕창 쌓여 있기에 맘 편히 쉴 수 없었다.

그래도 항상, 요양원에서 내 배가 불러 올 수록,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수녀님들과 동료들의 격려와 지지 덕에,

따뜻한 임신 과정을 보낼 수 있었던 거 같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임산부 간호사를 어찌나 아껴 주시는지,

치매이신데도, 배를 살살 문지르며, 옆에 앉으라고 매번 말해주는 할머니.

치매이신데도, 나와 배를 보며 활짝 웃으시는 할아버지.

매번, 간호 스테이션 근처에 와서 약 먹기 싫다 징징대시던 할아버지 ㅎㅎ


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성심성의껏 나의 베이비 샤워까지 해준 동료들에게 정말 차고 넘치는 사랑을 받았던 거 같다.


그래서 나는 그 요양원에 대해 너무 좋은 기억이 남아 있다.


그런데, 내가 거기선 비 정규직으로 있던 터이고( 캐주얼 - 호주에서는 캐주얼 잡이 흔하고, 돈도 정규직보다 더 받는다.) ,

 1년을 다 못 채워서,

정부에서 주는 임신 휴가를 받지 못한 게 좀 타격이 되었다.

그 혜택을 못 받는 게 조금 아쉬웠고, 역시 병원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떠나기로 결심했다.


다음 애기가 나올 때는, 회사에서, 그리고, 정부에서 주는 임신 휴가를 꼭 받기 위해서는 그것이 현명한 결정이었다.


호주는 정부에서 18주  유급 휴가를 주는데, 나라의 최저 월급을 보장해 주는데, 지금은 850 불 가량인 거 같다.

호주 최저 시급이 22 불이니까.. 물론 여기에서 세금을 떼기도 하지만,

이 혜택은 정말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병원에서도 원래 받던 주급 정도를 계산해 12 주 정도 보장해 준다.

그렇기에 두 임신 휴가를 합하면, 거의 30 주 가량 (정부마다 다르고, 회사마다 다르니 참고!) 혜택을 받으며 지낼 수 있으니,

맘 편히 애기와 신나게 지낼 수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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