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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주 사는 이야기 Sep 24. 2022

길을 잃을 용기.

천천히 찾으면 된다.

나는 어째서인지 어렸을 때부터 길을 잘 찾았다.

길치라는 말과 반대가 되게,

아주 길을 기똥차게 잘 찾아서,

어딜 가든, 길을 잃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길을 잃을 용기가 있었다.  무조건 찾을 수 있다는 배짱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길을 가면서 조금 헤매고,

늦게 도착하긴 해도, 가는 길은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일치했기에,

그다지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나만의 길을 찾는 걸 좋아했다.

그 길이 남들이 틀린 것 같다고, 아니라고 해도 내가 좋으면 좋았다.


그런데, 그런 일이 한국에서는 별로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지금 외국에서 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내가 초등학교 때에는,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컴퓨터 학원을 다녀야 했고,

중학교엔 보습 학원을 다니며,

고등학교엔 과목 학원을 다녔다.

나는 영어 공부를 더 잘하고 싶었는데, 나는 영어 외에 언어 수학, 물리, 화학을 많이 공부해야 했고,

하지 않으면, 금방 낙오자가 되었다. 그리고 보충을 하기 위해 수학학원을 따로 다녔다.

12시에 마치는 그 시간에도 학원을 다시 갔다는 생각을 하면,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길을 잃은 듯한 시스템에서도 나는 많은 내 꿈들을 꿨고,

덤불 속에서 내 길을 찾고, 뭔가를 해낸 것 같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야 한다고 해서 대학을 갔는데,

나는 내가 무엇을 공부하는지, 왜 하는지 잘 몰랐는데,

해야 하니깐 다녔다. 열심히.


그런데, 길을 잃은 것 같았다.

길을 잃었는데 그때도 길을 다시 찾았다.


나는 유학을 가고 싶어서, 유학 공부를 했고,

집안이 기우는 바람에 대신 교환 학생을 다녀와서 외국 생활을 경험했고,


그 한풀이를 다 못해서 결혼하고 다시 호주에 와서 공부하고 외국 생활을 하고 있다.


인생이 살다 보니, 어디서건 길을 잃은 느낌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내가 와야 하는 길의 점이 이어져 있는 느낌이다.


내가 잃은 길이 결코 잃은 게 아닌 거 같다.

어쩌면 가야 하는 길의 점들의 연속, 내 인생의 연속

지그재그이긴 해도 내가 가려는 방향으로 가는 내 길이 아닐까……



길을 잃을 용기.


나는 아직도 이런 용기가 있음에 감사하다.


길을 잃으면, 열심히 하다, 또 길을 찾으면 된다.

천천히.


늦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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