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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주 사는 이야기 Jun 13. 2023

트리아지 널스.

응급실에서 트리아지 널스란 총알받이.

트리아지란

환자의 상태에 따라, 응급 기준을 카테고리 별로 나누는 작업을 하는 일을 일컫는데,

응급실에 가게 되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간호사 일 것이다.


트리아지 널스는 메디컬 필드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어, 앉아서 할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이게 완전 정신노동의 상급 수준이다.


일단 환자가 오게 되면,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얼마 정도 고통이 있는지, 누구에게 리퍼를 받았는지,

검사는 했는지, 무슨 약을 먹었는지, 먹고 있는지 등등 모든 일괄 정보를 짧은 시간에 추려내어,

응급 경중을 나누어 카테고리 5개 별로 나누는 작업을 한다.  짧은 시간에 어서어서 순서를 메겨, 응급환자를 치료애햐 하기 때문이다.

카테고리 1, 카테고리 2,, 카테고리 5로 나뉘는데,  카테고리 별로,

의사가 무조건 봐야 하는 의무 시간대가 정해져 있다.


캣 1 (카테고리 1)- 은 응급 중 응급으로 바로 의사가 달려와 봐야 하고, 숫자가 클수록

웨이팅이 길어질 수 있다. 최대 3-4 시간으로.


그러다 보니, 카테고리를 나눌 때 조금 애매할 때가 많은데,

고통이 이게, 너무 주관적이다 보니, 참 어려게 결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나 아프니? 하면, 고통을 잘 견디는 사람은 , 그냥 뭐 좀 아파.. 하면서

꾹 참고 그러고,

고통을 너무 잘 느끼거나 참을성이 별로 없다 그럼 막 죽겠다고 그러는데, 웃으며 핸드폰 하고 있기도 하고.

같이 배가 아파 왔다 하더라도 캣 3을 주긴 하는데, 캣 2 같은 환자가 있고,

캣 5처럼.. 왜 왔니.. 그런 환자도 있고.. 그러다 보니 머리가 잘 판단해야 한다.



- 아 여기서 잠깐,

호주는 메디케어라는 호주 헬스케어 시스템으로, 모든 진료가 무료다!!

그러다 보니, 정말 환자가 환자가.. 많아도 너무 많다. 경증 환자가 많다!!  그냥 약 먹으러, 진찰서 또는 처방전을 받으러 오기도 하다 보니,

더 붐빈다.

여기서, 한마디 더,,
병원에 가서, 우리 한국인들은 어디 안아파요? 하면, 사실 괜찮아요. 한다. 정말 참을성이 많다 ㅎㅎ
그래서 진통제도 못 얻어먹고 있는데. 그러지 말고, 아프면 아프다고 하고, 진통제도 먹고, 안 아프게 있었으면 좋겠다.
매번 다들 괜찮다고 ㅎㅎ 그러고, 그러지 말자! ㅎㅎ 아프면, 아프다고 당당히 말하고 약 먹으면서 기다리자..!!

그리고 쉴 새 없이 오는 환자를 봐야 하니 말도 한수억 마디는 하는 것 같고,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진이 많이 빠진다.


오늘도, 한 수천억 마디하고 오다 보니, 머리가 노래지는 너낌이라,

트리아지 할 땐, 주머니 가득 초콜릿을 쟁여 놓고,

물통에 물도 가아 아득 떠 놓고 마시며 일했다.


우리 병원엔 멘털 환자들도 자주 오다 보니, 아무래도 욕도 많이 듣기도 한다.

기다리다 지쳐서 화가 난 건 알겠는데, 왜 나에게.. 이러나 싶어, 트리아지 초반엔,

또르르. 눈물을 닦아 내기도, 마음이 많이 상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단련되어.. 그려려니.. 너는 그래 질러라.

나는 어쩔 수 없다. 내가 없는 베드를 만들어 낼 순 없잖니.. 그냥 집에 가든지..라고 혼자 중얼 대기도 한다.

이럴 땐 정말 전쟁터에서 총알받이가 되는 느낌이다.

이 모든 총알을 내 몸으로 온전히 받고 있는 느낌.


오늘도 실컷 검사 다하고 이것저것 받아 놓고도,

아무것도 안 해준다며, 욕을 실컷 하고 가버리는 환자를 보자니.

하아..

참.

잘해줘도 소용없구나. 를 되뇌었다. ㅎㅎㅎ- 물론 나는 잘해줘도 소용없어라고 생긴 사람들이 있다..-

트리아지 간호사분들은 공감하실 듯..


실컷 해주고 욕을 먹는 기분은 정말..

전쟁터에서 도와주고, 총 맞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ㅎㅎㅎ 배신감이 상상을 초월한다. ㅎㅎ



그에 반해,

딱 봐도, 너무 응급인 상황을 발견해 어서 진료해 호전되는 경우를 보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간호사 된 보람을 한껏 느낄 수 있고, 역시 간호사 되길 너무 잘했어. 하며 직업 부심을 단단히 느낀다.

누군가 생명이 오갈 때 도와주는 기쁨.

손 내밀어 주는 기쁨은 정말 즐겁고 뿌듯하다.

딸기 알레르기 반응으로 딸기가 되어 온 아이에게 약을 주고 낫게 하고.

숨을 못 쉬는 환자를 숨을 쉬게 도와주고,

피가 철철 나는 환자 지혈을 돕고,

뱀에 물러온 환자에게 안티 베놈 약을 주고,

애가 급작스럽게 나올 때 애도받고..

심장이 멈추면 심장압박도 하고..

그렇게 한 가족의 엄마도 살리고, 아이도 살리고, 아빠도 살리고, 할아버지도 살리고  할머니도 이모도 고모도 살린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서는 사실, 아이들 환자를 보는 게 조금 힘들 때가 있다.

물론 작게 아프거나, 살짝 다쳐온 경우야 금방 낫는다고 하지만,

심하게 아파서, 다쳐서, 오는 경우는

엄마의 마음, 부모의 마음이 너무 이해가 되어,

환자 부모랑 이야기하다가 같이 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럴 땐, 내가 좀 더 거리를 둬야겠다 싶다가도, 아픈 아이 얼굴을 보고, 둘러업고 있는

너무너무 걱정하는 엄마 아빠들 얼굴을 보자면,

그 마음이 천 번 만 번 이해가 되기에,  눈물이 거의 자동으로 나온다.

그럴 땐 마음이 좀 힘들긴 한데..

그래도 뭐, 울면서라도 이야기하고, 나도 애가 있어서 니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더 잘 알 거 같다고 하면,

엄마 아빠 100 이면 100 더 신뢰하고 잘 이해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역시나,

트리아지는 힘들긴 했지만, 결국 다시 생각해봐도,

간호사 참 좋네..라고 생각하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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