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에 매물 보러 간지 3시간 만에 계약서를 썼다

by 김시현

공부방 창업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다음날 부동산에 갔다.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엄마는 취업 대신 창업을 선택한 나를 여전히 탐탁지 않아 했는데 정 그러면 혼자 집 알아보러 갈 테니 신경 쓰지 말라는 내 말에 투덜대며 따라나섰다. 사업자가 실거주하는 집에서 운영하는 것이 방침이라 보통은 살고 있던 집의 남는 방을 예쁘게 꾸며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나의 경우 가족과 함께 사는 본가에서 공부방을 시작하는 건 무리였다. 6년이라는 긴 시간이 켜켜이 쌓여 조그만 집에 잡동사니로 꽉 찬 방 어디에도 학생들을 들일 공간은 없었다. 애초에 가족들도 공간을 내줄 생각이 없었다. 오겠다는 학생도 아직 없었지만 집은 어찌 되었든 구해야 했다.


"이 김에 자취하는 거지 뭐. 자취 한 번은 해보고 싶었는데 잘됐네."


엄마에겐 별 거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그래 망해도 600만 원이다. 사업을 시작해서 쫄딱 망해도 600만 원이면 도전하는 게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다(물론 당시 나에게는 큰돈이었다. 월 55만 원에 보증금 1000만 원의 월세방을 구하기로 했다). 조그만 공부방에 사업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 거창한가 싶지만 틀린 말은 또 아니니까.


"공부방을 하려고 하는데 괜찮은 집 있을까요?"


부동산 아주머니는 동네 지도를 쭉 훑더니 몇 군데를 짚어주며 공실이 있으니 차를 타고 가보자고 하셨다. 부부가 같이 하는 부동산이었다. 엄마랑 나랑 부동산 아저씨랑 셋이서 차를 타고 아주머니께서 짚어준 매물을 하나씩 보러 가기로 했다. 첫 번째 집은 공실이 아니었는데 세입자 분들이 천천히 둘러보라며 친절하게 얘기해 주셔서 화장실도 보고 벽지 상태도 차근히 둘러볼 수 있었다. 하지만 체리몰딩에 옥색 벽지는 내가 생각하는 공부방의 이미지와 너무 달라서 바로 두 번째 집으로 가기로 했다. 두 번째 집은 공실이었는데 깔끔한 화이트톤으로 리모델링되어 있어서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이 집으로 그냥 할까?'


마음에 들었는데 너무 급하게 결정하는 것 같아서 부동산 아저씨랑 딱 한 군데만 더 보기로 했다. 마지막 집은 다른 집들보다 월세가 5만 원 정도 더 나가는 집이었는데 집주인 말로는 얼마 전에 화장실 리모델링을 해서 월세를 다른 집들보다 더 올려 받는 거라고 했다. 확실히 앞에서 본 집들보다 전체적으로 깨끗했다. 이전에 본 집은 13층이었는데 7층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공부방을 운영할 때 너무 고층이면 아이들이 오기에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거실과 부엌이 보통은 중문으로 분리되어 있는데 세 번째 집은 리모델링 과정에서 중문을 떼서 더 넓은 공간을 강의실로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엄마, 나 이 집으로 할래."


엄마도 월세가 다른 곳보다 조금 비싼 것 말고는 괜찮은 것 같다고 말했다.


"주인한테 한번 연락해 볼게요."


부동산 아주머니는 전화를 걸었고 마침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던 집주인이 10분 내로 왔다. 대학생 딸 명의로 집을 산 건데 지금 아이는 올 수 없어 어머니께서 대신 오신 듯했다.


"공부방을 할 거라고요?"


혹시 세 들어 사는 집에서 공부방 운영하는 것을 싫어하시나 싶어 걱정했는데 그런 건 아닌 듯했다. 집주인아주머니는 몇 가지를 내게 묻더니 자신의 딸과 남편 이야기도 했다. 남편이 연세대를 나와서 수학을 굉장히 잘하는데 집에서 소수정예로 과외를 하는 식으로 돈을 꽤 많이 벌었다고 했다. 계약서를 쓰는 과정에서 부동산 아주머니가 이것저것 확인을 시키시더니 몇 장 사인을 하라고 했다. 몇 장의 사인을 하고 돈을 입금하니 계약은 금세 끝나있었다. 잔금은 나중에 치르면 된다고 했다.


"이 주변에 공부방 하는 사람이 6단지에도 있고, 2단지에도 있어요."


"젊은 사람인데 중앙대 나와서 저기 6단지에서 한다고 그러더라고."


부동산 아주머니와 집주인이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그들도 별다른 이야기를 내게 더는 묻지 않았고 나도 딱히 대화에 끼어들 마음이 들지 않았다. 들으면서 생각한 것보다 주변에 공부방이 꽤 많이 있었구나 싶었다.


'집을 계약했으니 뭐 어떻게든 되겠지.'


이사하기 전까지 남은 2주 동안은 홍보에 온 힘을 쏟아보자 생각했다. 공부방으로 구한 집은 본가에서 걸어서 20분 정도에 있었다. 아 학생은 진짜 어떻게 구하지. 이제 정말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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