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의 이삿날,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by 김시현

월셋집을 구하고 입주일까지 매일 어떻게 가구와 물건을 배치할지 고민했다. 다른 공부방은 인테리어를 어떻게 하나 싶어 인터넷 검색을 했는데 나처럼 집 하나를 통째로 공부방으로 꾸민 경우는 드물었다. 보통 거실과 부엌에 책장과 의자를 두고 벽이나 구석에 학습용품을 배치하는 식이었다. 레퍼런스를 찾아볼 시간에 차라리 내 식대로 고민해 꾸미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검색은 그만하고 A4용지를 꺼냈다.


우선 거실에는 화이트보드칠판과 중고등학교에서 쓰는 책걸상 6세트를 사서 들여놓기로 했다. 큰 방에 긴 탁자와 작은 책상 하나, 의자 5개를 두고 나면 작은 방이 2개 남았다. 그중 방 하나는 내가 잠을 자고 생활하는 공간으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자주 입는 옷가지를 다이소에서 파는 커다란 부직포 가방에 쑤셔 담고 매트리스와 이불 세트로 짐을 간소히 꾸렸다. 또 다른 방은 상담실로 쓰기로 했는데 작은 책장과 프린트기를 올려둘 접이식 책상에 의자를 두어 개 같이 놓기로 했다.


준비를 마치고 대망의 이삿날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이삿날 나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몇 달 전부터 준비했던 네팔 선교로 해외에 있었다. 타지에서 일하는 아빠는 대구까지 오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삿짐센터를 부르기는 짐이 너무 적어서 당근마켓에서 용달차 서비스를 운영하시는 분께 연락을 드려 이사를 하기로 했다. 남동생은 당시 교회에서 고등부 선생님이었는데 같이 준비하는 청년들과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오전에만 용달로 짐 옮기는 것을 도와주고 다시 교회에 가봐야 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지. 이삿날을 미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바쁜 가족들을 붙잡고 떼를 쓸 수도 없었다.


용달차 아저씨가 오시자 동생과 나는 짐을 1층으로 옮겼다. 애당초 많지 않은 짐이라 엘리베이터를 2-3번 이용하니 끝나 있었다. 큰 책상을 옮기는 것은 꽤 힘들었는데 용달차 아저씨께서 도와주셔서 다행히 모두 차에 싣을 수 있었다. 새로 이사 가는 집의 1층까지만 짐을 옮겨주시면 되는데 친절히 집 안까지 물건들을 나르는 것을 도와주셨다. 일손 하나가 귀하던 차에 도와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집주인은 입주청소 업체를 부르는 대신 아는 사람이랑 둘이서 입주 전날에 청소를 해주시겠다고 하셨는데 덕분에 내부는 크게 더럽지 않았다. 짐을 모두 옮기고 용달차 아저씨께 돈을 입금해 드리고 동생을 교회로 보낸 뒤 나는 부동산으로 갔다. 잔금을 치르고 동사무소에 가서 입주 신고를 했다.


짐을 새 집까지 옮기긴 했으나 사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책상과 의자들은 모두 거실에 쌓여 있었다. 방마다 다시 배치해야 했다. 의자와 책상을 들어 계획한 대로 옮기고 혹시 몰라 깨끗해 보이는 곳도 한번 더 닦았다. 책상 위에 올라가 커튼을 달고 다이소에 갔다. 공부방을 꾸밀 용도로 쓸 물건들을 이것저것 샀다. 디퓨저 4세트와 청소용 물걸레대, 공부방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각종 필기구, 인테리어를 위한 액자도 4개 정도 샀다. 짐이 워낙 없어서 새로운 집은 꼭 화장실에 있는 것처럼 말할 때 소리가 울렸다.


“야 너 지금 화장실에서 나랑 통화하냐.”


당시에 저녁마다 통화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걔한테 억울하다고 몇 번이나 해명했던지. 다이소에서 정말 필요한 것만 담았는데 10만 원 정도 나왔다. 집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서 10분 거리였는데 무거운 짐을 양손에 쥐고 걸으니까 가는데 20분이 넘게 걸렸다. 청소하느라 안 그래도 피곤한데 무거운 짐까지 들고 다시 집까지 걸어가려니 너무 힘들었다. 오전부터 아무것도 못 먹고 청소를 했던 것이다.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니까 힘들다고 누구를 탓하면 안 되는 걸 아는데 서러웠다.


"언제 마쳐?"


횡단보도에 서서 짐을 바닥에 내려놓고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녁 8시가 다 되어가는데 얘는 아직도 안 끝났나 보다.


"나 집에서 가져올 것도 몇 개 더 있고 아직 청소도 조금 덜 했는데 좀 도와줘"


"음 아직 덜 끝났긴 한데. 10시쯤 끝날 듯?"


전화기 뒤로 깔깔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짜증이 훅 솟구쳤다. 나도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동생이 잘못한 건 하나도 없는데. 내가 벌인 일이니까 스스로 다 하는 게 맞는데. 왜 그때는 그렇게 교회수련회 준비한다고 하루 종일 나가 있는 동생이 미웠는지 모르겠다.


"차 좀 빌리자. 한 번만 태워줘."


"어...... 지금?"


"야, 그래도 가족이 오늘 이삿날인데 넌 꼭 10시까지 밖에 있다가 와야 되냐."


교회에 일할 사람이 너밖에 없어? 그 말까지 했다. 나도 내가 잘못한 거 안다. 속으로 기도도 했다. 회개기도.


'하나님. 오늘 저 많이 힘들었던 거 아시잖아요. 잘한 거 없는 거 알아요. 근데 힘든 거 어떡해요. 쟤도 아무리 교회일이 중요해도 누나 이사 도와줄 사람 한 명도 없는 거 뻔히 알면서 10시까지 나가 있는 건 좀 그렇잖아요. 하나님 쟤 편드실 거죠? 알아요. 아휴. 회개합니다. 진심이 아니라 죄송합니다. 하나님. 힘들어요. 너무.'


전화를 끊고 쪽팔렸는데 길에서 울었다. 힘들고 피곤했다. 그래서 결국 짜증을 냈다. 동생이 다시 전화가 왔다.


"30분 내로 정리하고 최대한 일찍 가볼게. 일단 쉬고 있어라."


편의점에 가서 라면이랑 김밥을 샀다. 집에 먹을 물도 한 병 없어서 페트병으로 생수도 담았다. 눈물을 닦고 새 집에 가서 바닥에 앉아 라면을 열심히 먹었다. 약속한 대로 곧 동생이 왔고 우리는 남은 청소를 같이 마무리했다. 그렇게 이사가 끝났다. 여기서 1월부터 공부방을 열 것이다. 그날은 참 고된 하루였고 해야 할 일들은 여전히 많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푹 잠을 잤다.




인생 최고로 열심히 살았던 공부방 창업썰

https://youtu.be/cMqL-C0IGo0?feature=shared


약대 2달 다니고 느끼는 점

https://youtu.be/UyCfx_9-A_g?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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