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냇물_9
팥도 고르고 콩도 고르던 내가
다섯 가지 곡식 불리고 뜸 들여
고운 한상으로 아들에게 주었다.
어른이 되었구나. 나는.
어른이 될 너도 오늘이 기억나겠지.
그 어떤 날에 물어봐 준다면,
네가 골라낼 줄 알면서
콩도 넣고 팥도 넣던 어떤 날은
너를 더 많이 생각한 날이었다고.
골라내는 너의 젓가락 끝을 보며
양은 밥상에 앉은 갈래머리 나를 만났다고.
그리하여 감사했다고.
나는 콩을 싫어한다. 정확히는 잡곡을 싫어한다. 지금도 하얀 쌀밥이 제일 좋다. 그런 나에게 보름에 먹는 오곡밥은 얼마나 고역이었는지 모른다. 맛있는 나물은 하얀 밥에 비벼야 제맛인데, 팥물이 든 오곡밥에서 나는 밤만 골라서 먹고는 했다. 엄마는 그런 나를 위해 잡곡을 한쪽으로 몰아서 밥을 하시고는 잡곡 없는 쪽을 내게 주었다. 오곡밥, 부럼, 보름나물.. 왜 이런 걸 먹어야 하는지 그때는 알고 싶지 않았다. 명절인 듯 명절 아닌 명절 같은 날.. 엄마는 지금도 보름이면 찰잡곡밥을 한다. 엄마의 잡곡밥을 먹지 못한 이 날은 내가 밥을 했다. 엄마처럼 잡곡을 잘 고르고 불리고 찹쌀을 적당히 넣어서.
내 입맛을 꼭 닮은 금동이는 그날의 나처럼 젓가락을 깨작깨작. 우습기도 하여라. 알면서도 나는 골고루 잡곡을 섞어 아이에게 주었다. 내가 듣기 싫어했던 말들과 함께.
나보다 순한 내 아이는 웃으며 먹는다.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