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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장인최씨 Jul 13. 2016

첫 월요일 그리고 시드니 CBD

생각보다 차갑지 않은 공기의 겨울

이런저런 핑계는 꾸준한 글쓰기에 그리 도움이 안된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매거진을 만들었지만 꾸준하게 나오질 않는다. 그래도 너무 몰아치면 힘도 금방 빠지고 머리도 금새 식어버린다. 그래서 이제 세 번째다. 내용이 꽤 많을 것이다.


금요일 이른 오후에 도착한 내게 모든 것은 처음이다. 첫번째 월요일을 맞이했다.


형님은 내게 2주 정도는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이곳 사람들은 뭘하면서 살아가는지, 무엇을 살아가는지 보라고 하신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그냥 외국 관광객으로 온 것이 아닌 이곳에서 '사는 사람' 으로 있고 싶었다. 군대에 처음 갔을때도 그랬듯 빨리 적응해서 그곳의 일원이 되는 편이 좋았다.


흔히들 말하는 시드니의 모습은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승화된 오페라 하우스, 시원하면서 아기자기한 하버 브릿지 그리고 푸른 바다이다. 이 모든 것이 있는 곳이 시드니 CBD(Sydney Central Business District: 시드니 중심 업무 지구) 다. 많은 사람이 말하는 '너 시드니 있다면서?' 하며 상상하는 곳은 시드니 시티를 말하는 것이다. CBD 를 흔히들 이곳에서는 그냥 시티라고 한다.


시티에 볼일이 있으시다면서 같이 나가자고 하시는 형님을 따라 시티에 갔다. 내게 혼자 한 번 다녀보라고 하신다. 윈야드 역에 내려주셨다. 내리막 길을 따라 내려가면 하버 브릿지와 오페라 하우스가 있는 곳이 나올거라고.


아직 대구에서의 여름을 몸이 잊지 못한 듯 시드니의 겨울은 아주 춥지는 않았다. 그래도 쌀쌀한 기운에 차에서 내려 얼마 가지 않아 카페가 보였다. 따듯한 롱블랙을 한 잔 시켰다. 커피를 마시며 길을 따라 내려가니 바다가 보인다. 도로를 건너 좀 더 가니 다리가 하나 보인다. 하버 브릿지다.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멋 모르고 길을 따라 가는데 미술관이 하나 보인다. 그 앞으로는 빨간색 모자와 옷을 입은 아이들이 일렬로 쭉 앉아있다.

유치원생들 소풍을 나온건가 했더니 나중에 알고보니 프라머리 스쿨(한국의 초등학교) 학생들이다. 워낙 직사광선이 강하다보니 모자는 필수라고 한다. (참고로 호주는 소아피부암 발병률 1위)


옹기종기 앉아있는 아이들도 귀엽고 신기해서 사진을 찍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원하다. (글 커버 사진이 이때 찍은 것이다.)


그리고 반대편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오페라 하우스가 보인다. 가슴이 뛴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TV 와 사진으로나 보던 오페라 하우스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발걸음은 빨라졌다.


아주 맑은 날씨는 아니었다. 구름이 잔뜩 꼈지만 그 사이로 해가 간간히 비친다. 꽤 괜찮은 사진이 나왔다.


TV 와 사진으로 보던 오페라 하우스 사진을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시드니에 와서 처음보고 찍은 사진이니 그래도 보정없이 올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너그럽게 넘어가주세요. ㅎㅎ


더 가까이 갔다.


경악했다. 왜냐면 멀리서 보던 오페라 하우스는 그렇게 웅장하고 멋졌는데 가까이서 보니 지붕이 엉망이다.

새들이 다녀간 흔적과 오랜시간 지붕청소가 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많은 것들.


멀리서 볼수록 아름다운 것은 오페라 하우스구나. (가까이 보면 예쁘진 않습니다.)

충격과 공포를 뒤로하고 반대편을 보니 하버 브릿지가 멋들어지게 보인다.

구름이 잔뜩 꼈다. 환상적인 시드니의 랜드마크 사진이 되지는 않았지만 첫 만남의 떨림으로 정신없이 찍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괜찮다.


혼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거닐다가 출출해졌다. 이제 시드니에서 허세를 부려볼 차례다.

온갖 여유있는 척을 다 부리며 치킨파이를 주문하고 병콜라 하나를 잡았다.


서큘러 키 부근 여유있는 척 하는 남자. 다분히 타인을 의식한 사진각도다. 보아라. 내가 시드니에 왔노라. (ㅋㅋㅋ)(사실 사진을 찍고나서 혼자서 많이 웃었다.)


파이를 다 먹고 남은 병콜라를 들고 또 움직였다. 구글맵 하나로 쏘다니기 시작했다.

처음봤던 미술관으로 돌아갔다. 예술작품을 볼줄도 몰랐지만 일단 들어갔다.


뭔가 핑핑 돌아간다. 작품설명을 찾을 수는 없는데 그냥 신기해서 찍었다. 생각없이 찍어서 지금도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 그냥 예술작품이니까 넘어가자.


멍하니 돌아다니다가 미술관을 나왔다. 나와서 보니 꽤 오래된 건물들로 보이는 돌로 만든 길이 이어진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영국에서 호주로 넘어온 사람들이 처음 정착한 곳이라고 한다. 더 록스라고.


아주 천천히 걷는 새 한마리와 마주쳤다. 그리 깨끗하지는 않은데 아주 천천히 걷는다. 이것 역시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호주에서는 동물을 발로 걷어차면 어마어마한 벌금을 물게된다. 대략 한국돈으로 50만원 가량.


우연찮게 자연광으로 꽤 괜찮은 그림이 나왔다. 천천히 걷는 이 새를 보다가 신기해서 찍었다. 가서 한 번 건드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느렸다.


근처 관광안내소가 있었다. 잠시 들렀다가 다시 정처없이 걸었다. 고층빌딩이 많은 비즈니스 지구를 가로질러 가니 뉴 사우스 웨일즈 주립 도서관이 있다. 이곳 도서관은 어떨까.


카메라 셔터소리 탓에 실내사진은 일부러 찍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곳 도서관은 아~주 시끄럽게 굴지만 않으면 어느 정도의 소음은 허용된다고. 현대적인 느낌으로 멋들어지게 만들어 뒀었다. 도서관보다는 약간 문화센터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그리고 와이파이가 잘 된다. 간단한 절차만 거치면 사용가능하다. 관광을 가시거든 와이파이가 급히 필요하면 이곳에 가시길.


도서관을 나와서 걸으니 공원하나가 보인다. 커다란 건축물 하나가 보인다. 뭔가 의미있어 보이기에 들어갔다. 우리나라 현충기념관과 같은 ANZAC 기념관이다. 호주와 뉴질랜드 참전용사를 기리는 기념관.


지하로 내려가면 데스크에 참전용사 할아버지들이 돌아가며 근무를 한다. 처음만난 참전용사에게 인사를 했다. 내가 한국에서 하사로 근무했었다는 얘기를 하자 반가워한다. 기념주화와 엽서 등을 내게 쥐어주신다. 고마운 마음에 기념관 운영기금통에 얼마를 넣었다. 기분좋게 건물을 나섰다. 그러면서 마음으로 경례를 한 번 했다. 고마운 이들에게.


기념관을 나서서 지도를 봤다. 달링 하버가 근처에 있단다. 가보자. 가는 길에 꽤 오래된 건물이 있다. 알아보니 경찰서란다. 근 100년이 된 건물이라는데 아직도 경찰서로 사용중이라고 한다.

100년 동안 여전히 실제 경찰서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 이 사진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면 다들 옛날에나 쓰던 공공기관 건물 정도로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지금도 경찰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하면 꽤나 놀란다.


열심히 걸어서 달링 하버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내가 본 곳은 코클 만이다.

구름이 끼고 해가 없어 아름다운 그림은 아니다. 그래도 좋다. 모든게 처음이니까.


한참을 앉아서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윈야드 역에서 에핑 역으로 가는 기차를 타면 된다던 형님의 말을 되새긴다. 지도에 윈야드 역을 찍어서 걸었다.


저녁식사 시간을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윈야드 역에 도착해 표를 끊었다. 한국에서 대중교통 승차권을 구경못한지 꽤 됐는데 이곳 호주에서 본다.


끊고보니 왕복권이다. 뒤늦은 후회. 리턴 티켓이기에 돌아가는건가 했다가 당했다. 영연방에서의 리턴 티켓은 왕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엄한 5.20 달러를 날렸다. 이래서 사람은 뭐든 알아야 당하질 않는다. 그래도 호주에서 처음 산 티켓이다.


첫 번째 월요일, 시드니 시티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끝났다. 무사히 에핑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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