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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장인최씨 Jul 20. 2016

축구, 축구, 축구

호주는 축구보다 럭비더라

부족한 글을 챙겨봐주시는 분들이 계심에 감사함을 전합니다. 대단한 필력을 가지진 않았지만 언젠가 지금까지 쭉 써온 모든 글로 책 한 권 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잠깐 해봅니다. 수익 목적은 아니고 기념으로 남겨두는 정도로.


시간 순서대로 하루하루를 글 하나로 담게 되면 365개의 글을 써야한다. 이만큼은 아니더라도 최대한 자세하게 써보고 싶다. '살아본 것' 과 그냥 '있다가 온 것' 은 다르니까.


첫 번째 화요일이다. 여전히 모든 것이 처음인 나는 본능적으로 악기를 판매하는 가게가 있을까 했다. 칼링포드쪽에 악기사가 하나 있다고 한다. 지도상에서 버스로 15분 정도 거리란다. 시드니에서의 거리에 대한 감각은 전혀 없었던 나는 걸어가 보자고 한다. 겸사겸사 일 할만한 곳이 있는지도 발로 뛰어서 찾아보려고 했다.


사실 내가 살던 집 브릿지 스트릿, 에핑에서 칼링포드 로드를 따라가는 길을 거쳐 만날 수 있는 이 악기사는 엄청 먼 거리다. 나는 그저 '무식하면 용감하다.' 라는 말을 실제 행동으로 옮긴 것 뿐이다. 이런 무리수는 두지마시길.

지도를 따라 가라는대로 걸었다. 걷기에 그리 춥지도 않은게 딱이다. 카페에 들러 롱블랙 한 잔을 사들고 나섰다. 카페에서 나와 내리막길을 따라간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챙이 긴 밀짚모자(어렴풋한 기억이다.) 를 쓴 여자 하나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인사를 한다. 나도 멋쩍지 않게 인사를 받아줬고 발걸음을 멈춰 잠시 얘기를 나눴다. 펀드 레이징을 하는 곳이란다. 쉽게 말해 기부를 약속받는 일이다. 소아피부암 어린이를 위한 기부활동을 하는 곳인데 본인도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왔다고 한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그저께 퀸즈란드(호주의 여러 주들 중 하나, 시드니가 위치한 뉴 사우스 웨일즈에서 북쪽으로 한시간 반 거리다. 비행기 기준) 에서 시드니로 왔다고 했다. 나보고 같이 일하자고 한다. 


매니저 내지 팀장정도로 보이는 사람과 얘기를 나눴다. 꽤 진전이 있었다. 인터뷰 시간까지 잡아놓고 길을 가려는데 바로 옆에 또 이탈리아 남자가 하나 있다. 처음 본 사람과 같이 온듯하다. 수입도 괜찮은 일이고 호주 여기저기를 다닐 수 있단다. 그러다가 이탈리아 얘기가 나왔다. 참 아름다운 나라라고 칭찬했다. 나폴리는 특히 아름답다고. 근데 가지말란다. 아주 위험하다고. 축구 얘기도 나왔다. 다행히(?) 언쟁은 없었다. 모두가 알 듯 이탈리아와의 16강전 때문이다. 기분좋게 인사하고 나는 다시 길을 나섰다.


한참을 걸었다. 15분 정도 계속 걸었을까. 지도를 봤다. 아뿔싸. 내가 잘못했구나. 돌이킬 수 없었다. 지도상으로는 애매한 위치다. 그냥 걸었다. 시드니는 겨울의 한가운데 있었지만 햇살은 상당하다. 웬만한 봄 날씨 정도였고 나는 입고 있던 외투를 벗었다. 땀이 꽤 난다. 멋모르고 또 계속 걸었다. 겨우 도착하니 40분 정도 걸었던거 같다.


악기사에 들어갔다. 이것저것 보다가 스틱 한 조를 잡았다.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하면서 슬쩍 물어봤다. 일자리 있냐고. 예상대로 없단다. 돌아서서 나왔다. 규모를 봐도 빈자리가 있는게 이상했다. 다음 목적지는 파라마타를 연고로 하는 축구팀인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의 홈구장.


이번엔 버스를 타기로 했다. 도저히 걸어갈 거리가 아니였다. M54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를 올라타고 늘 그랬듯 지도를 붙들고 연신 정류장을 확인했다. 그러다가 기사 아저씨에게 파라마타 스타디움 가려면 언제 내리냐고 하니 얘기해주겠다고 한다. 참 친절하다. 얼마나 갔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아저씨가 정류장에 멈추고 내게 내리라고 한다. 그러더니 내려서 한블럭 걸어내려가서 오른쪽으로 꺾어서 쭉 가면 나온단다.


그랬더니 진짜 나왔다.


지도를 보고 따라 나머지 길을 걸었다. 경기장이 슬슬 보인다. 주차장도 있고. 평범한 공원같다.


첫 번째 사진은 우승 기념 동상이다. 축구팀 우승이 아닌 파라마타 연고의 럭비팀인 파라마타 일즈의 리그 첫 우승 기념동상이라고 한다.


경기장 앞에 잠깐 서성거리는데 관계자들로 보이는 몇몇이 내게 무슨일이냐고 묻는다. 벌건 대낮에 아시아인 하나가 경기장 앞에 있으니 이상할 법도 하다. 경기장 안에 들어가 볼 수 있냐니 지금 작업중이라 안된다고 한다. 축구 얘기를 꺼냈다. 내게 한국에서 왔냐고 물었다. 포항 스틸러스와 웨스턴 시드니 경기 얘기를 내게 한다. 내게 포항은 상당히 좋은 팀이라고 했다.


이윽고 다른 사람이 럭비는 좋아하냐고 물었다. 안타깝게도 잘 모르기도 하고 관심이 그리 없다고 했다. 그래도 곧 시즌이 개막하니 한 번 보러오라고 한다. 그래보겠다고 대답했다. 당시 웨스턴 시드니는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4강에 진출했었다. 하지만 홈구장에는 이들의 흔척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채 발걸음을 돌렸다.


웨스턴 시드니의 구단 용품이라도 사볼까 싶어서 스토어를 찾아봤지만 럭비팀 스토어 뿐이었다. 축구팬으로써는 계속 아쉬움의 연속이다.


집으로 가야겠다 싶어서 가까운 버스정류장을 찾았다. 그런데 출출하다. 정류장을 찾아 가는 길에 맥도날드가 하나 보인다. 호주땅에서 처음으로 맥도날드를 들어가본다. 애써 어색하지 않은 척해본다. 눈을 씻고 봐도 세트(Set) 라는 말이 없다. 에라 모르겠다. 주문을 했다. 주문을 받는 점원이 밀(Meal) 로 하겠냐고 묻는다. 아, 세트로 시키겠냐는거구나 싶어서 얼른 그렇게 달라고 했다. 알고보니 영연방에서는 세트가 아닌 밀이라고 하더라. (햄버거 하나는 식사가 아니라는 것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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