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의 인생 시 필사 노트의 고정희 작가의 시.
알록달록한 단풍의 화려함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지금, 꼬맹이 너는 너의 별에서 잘 지내고 있니?
아마도 넌 계속해서 무지개다리를 건너오는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느라 바쁘겠지?
그렇다면 다행이다. 워낙 소심한 너였기에 지구에서는 친구들을 잘 사귀지 못했는데 그곳에서는 명랑하게, 활발하게 잘 지내고 있을 거라 생각해.
그리고 요 며칠 바쁜 일들이 있어서 너에게 그간 소식을 전하지 못했는데 되도록이면 자주 근황을 전하도록 할게.(나에게서 편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지금 이 글 보고 기분이 좋아서 활짝 웃고 있지? 그렇다고 말해주길~)
참, 요새 내가 필사를 하고 있거든?
그래서 추천받은 필사책이 나민애 작가님의 <단 한 줄만 내 마음에 새긴다고 해도>라는 필사책이야.
또 필사를 하기 위해 필사 노트도 마련했어.
필사책을 펼치고 나서 경건한 마음으로 시를 천천히 읽거나 음미하면서 한 자 한 자를 정성 들여 필사 노트에 꾹꾹 눌러서 쓰고 있는데 그렇게 필사를 하다 보면 마음에 팍 박히는 시를 만나곤 해.
그런데 말이야, 오늘 그런 시를 만났지 뭐야.
고정희 작가의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라는 시야.
이 시를 읽는 순간 딱 꼬맹이 네가 떠올랐어.
시에 나오는 것처럼 사람은 아니지만 나에게 있어 너는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존재였어.
그래서 네가 그리우면 울었지.
나처럼 먼저 떠나보낸 반려동물이 있는 보호자들이 제법 많을 거야...
어찌 그립지 않겠어... 어찌 울지 않겠어... 수없이 보고 싶고 수없이 그리운데...
하지만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 걸 어쩌겠어.
남아 있는 기억 속에, 추억 속에서 만나는 수밖에.
어쩌다 운이 좋으면 꿈에서 만날 수도 있겠지.
오늘 이 시를 필사를 하고 나서 마음이 울적하더라.
그래서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밖에 나갔어.
늘 가는 공원에 갔는데 그곳은 여전히 가을 흔적이 남아있었어.
이 가을 풍경을 너와 같이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일부러 그런 마음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걸었어.
그렇게 걷다가 낙성대 공원의 길고양이 장군이를 만났지.
수북이 쌓인 낙엽 위에 앉아서 날 쳐다보는 장군이.
가을 분위기를 한껏 즐기고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는데 장군이는 그런 분위기를 내가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저렇게 쳐다봐서 얼른 자리를 비켜줬어.
한참을 걷고 또 걷고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어느 정도 마음이 차분해짐을 느끼고 돌아오는 길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장군이가 있는 곳으로 갔더니
장군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서 가을을 즐기고 있더라.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버렸다.
동시에 가을 정취를 잘 알고 있는 추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꼬맹이도 가을을 좋아했었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어.
꼬맹이 너도 가을이 되면 떨어지는 낙엽 위로 걷는 것을 좋아했었어.
가을볕에 잘 마른 낙엽들 위로 걸었을 때 바스락바스락 하는 느낌이 좋았는지 넌 그런 낙엽들을 골라서 걷곤 했었지.
가끔은 산책하다가 장군이처럼 저렇게 수북이 쌓인 낙엽들 위에 앉아서 쉬기도 했었는데 기억나니?
이제 11월 하순으로 접어들면 첫눈 소식이 들려올 거야.
그럼 나는 그 첫눈을 맞이하러 밖으로 나갈 텐데 그 첫눈을 보며 너를 떠올리겠지.
그렇게 떠올린 너를 그리워하겠지... 그리고...
이렇게 첫눈이 오던 날 너에게 눈을 보여주려고 너를 안고 나갔던 그날을 떠올릴거야.
어린 강아지였을 때는 눈을 좋아했었던 것 같은데 성견이 되어서는 눈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더라.
그래도 가끔은 하얗게 쌓인 눈 위를 걷곤 했는데 그렇게 함께 했던 시간들이 아득하다.
오늘 필사를 한 시가 오래도록 남는 걸 보니 네가 많이 보고팠나 보다.
나의 이 애달픔을 안다면 좀 찾아와 주지 않으련?
이 무심한 녀석아.
에효... 나의 공허한 메아리려나...
아니다. 네가 잘 지내고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되니까 나의 이런 말들에 신경 안 써도 돼.
그냥 넌 잘 지내고 있으면 돼. 지구에서보다 훨씬 더 행복하고 즐겁게 지내고 있으면 돼.
나만 너 그리워해도 돼.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숙명이라면 말이야.
늘 그립고 그리운 존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