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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시간은 짧았고 나의 시간도 짧아져 간다.

미야의 브런치 글빵연구소 10강 숙제

by 보니또글밥상

"이제는 준비하셔야 합니다."

그녀가 내게 한 '준비'라는 말이 내 두 귀를 통과해 나갔지만 아직은 아무런 느낌이 없다.

그러나 이내 그 뜻을 알아차리고 나의 눈동자는 잠시 흔들린다.

그 말을 듣는 내 마음은 쿵쾅쿵쾅 요동을 친다.

잠시 숨을 고르며 떨리는 손을 가슴에 얹고 조금이라도 진정을 시키려 애쓴다.

"준비라고 하시면... 저번에 말씀하신?"

이런 나의 물음에 그녀는 이젠 어쩔 수가 없다는 듯한 눈빛을 안경 너머로 나에게 보낸다.

이내 눈물로 흐려진 나의 눈을 보며 다시 말한다.

"꼬맹이가 너무 아파요. 꼬맹이의 온몸에 암세포가 퍼졌어요. 어느 동물 병원에서도 꼬맹이한테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어요. 그러니 안락사를 고민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꼬맹이를 진료해 온 제가 꼬맹이를 안락사를 시킬 테니 마음의 결정이 서시면 데리고 오세요."


동물병원 진료실 테이블 위에는 막 항생제 주사를 맞은 꼬맹이가 힘없이 엎드려 있었다.

그런 꼬맹이를 사이에 두고 수의사와 나는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꼬맹이는 자신을 두고 이런 대화를 오고 간 것을 들었을까? 아마도 못 들었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청각이 많이 안 좋아진 꼬맹이다.

그러니 수의사와 내가 조용히 나눈 이 대화를 듣지는 못했을 것이다.

정적이 흐르는 진료실에서 꼬맹이는 이내 낑낑대기 시작했다.

차가운 공기가 수의사와 나와 자신을 휘감고 있는 것이 못내 불편했나 보다.

자신을 안아달라고 버둥대는 꼬맹이를 두 손으로 앉는 순간 불안감이 꼬맹이에게 들러붙은 탓인지 꼬맹이가 진료실 테이블 위에다 똥을 쌌다.

난 얼른 한 손으로 꼬맹이를 안고 테이블 위에 있던 휴지로 꼬맹이가 싼 똥을 치웠다.

수의사 선생님은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괜찮다고 하셨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그런 작은 소란 속에서 빠져나온 나는 꼬맹이를 안고 집까지 걸어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꼬맹이는 무서움이 가득한 병원에서 나온 것이 좋은지 자신이 걸어가겠다고 내 가슴팍에서 발버둥 쳤다.

"그래, 네 좋을 대로 하렴."

하는 수없이 나는 꼬맹이의 네 발이 땅에 닿도록 내려주었다.

그러자 힘없이 늘어져있던 꼬맹이의 볼품 없어진 꼬리가 하늘로 향했다.

꼬맹이의 기분이 좋은지를 알려면 꼬리를 보면 된다.

꼬리가 하늘로 향해 있으면 기분이 좋다는 표시다.

근육이 많이 빠져 걷는 것이 힘들어 보였지만 꼬맹이는 천천히 잘 걸어갔다.

그러나 이내 기운이 빠졌는지 걷다가 날 돌아본다. 그럴 때는 안아주어야 한다.

걷다가 날 보는 것은 안아달라는 둘만 아는 무언의 대화였다.


수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들을지 채 한 달도 안 되어 꼬맹이는 자기 별로 떠났다.

하필 비가 많이 온 날 떠나서 아니 떠나게 해서 마음이 아팠다.

환한 햇살이 온 사방에 비치는 날, 천사들이 무지개다리를 건너오는 꼬맹이를 향해 환영의 노래를 불러주는 날에 보내줬어야 했는데 그렇게 보내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설마 비 맞고 무지개다리를 건너지는 않았겠지? 내가 비 맞지 말라고 온몸을 감싸주고 예쁜 수의까지 입혀줬는데 무사히 잘 갔겠지?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꼬맹이는 지구에서의 17년간의 견생을 마무리하고 떠났다.


꼬맹이를 떠나보낸 날, 꼬맹이의 물건들을 정리했다.

인터넷으로 사망신고를 하고 남은 사료와 간식들은 주변에 개를 키우는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그렇게 꼬맹이의 흔적을 지워나갔지만 마음에는 그리움만 커져갈 뿐이었다.

꼬맹이를 처음 만난 날을 기억으로 꼬맹이의 입양 취소와 파양 됐던 일, 그래서 얼떨결에 꼬맹이를 키우게 되면서 겪었던 다양한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바쁘다는 핑계로 꼬맹이를 혼자 있게 했던 많은 시간들, 꼬맹이를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았던 경험.

멀미를 하지 않고 차 타는 걸 좋아해서 전국을 같이 돌아다녔던 기억들.

활발했던 강아지 때부터 성견으로 자라는 과정과 노견이 되어가는 과정들을 나와 같이 했다.

큰 수술 이후 치매가 온 꼬맹이는 날 힘들게 했지만 꼬맹이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꼬맹이를 안락사로 보내고 나서 오랫동안 펫로스 증후군에 시달렸다.

오랜 시간을 같이한 존재가 이젠 곁에 없으니 느껴지는 공허함이었겠지만 나의 결정으로 불쑥 자기 별로 가게 된 꼬맹이에 대한 미안함에 더 힘들었었다.

어쩌면 꼬맹이는 자기 별로 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텐데 보호자인 나의 의견으로 보낸 것 같아 죄책감이 컸다.

주변 사람들은 잘 보내줬다고 꼬맹이도 잘 보내줘서 고맙게 생각할 거라고 나를 위로했지만 그 위로를 받는 나의 마음은 고통으로 가득 찰 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약이라고 차츰 그 고통이 조금씩 사그라졌고 꼬맹이가 떠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난 꼬맹이가 없는 봄을 경험했고 현재는 여름을 경험하고 있으며 다가올 가을과 겨울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꼬맹이의 지구에서의 견생이 짧았듯이 지구에서의 인간인 나의 삶도 이제 점점 짧아져가고 있다.

앞으로 내가 경험할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신도 모를 것이다. 몰라도 괜찮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중요한 건 내가 꼬맹이한테 갈 수 있는 시간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이니까.

꼬맹이의 생은 이미 다했으니 나의 생이 다하게 되면 꼭 꼬맹이 너를 찾으러 가겠다고 다짐한다.

무지개다리가 있는 천국의 다리 입구에서 내 이름이 적힌 피켓 들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텔레파시로 전해본다.

우리 꼭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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