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일주일을 돌아보며...
너가 퇴사를 했다고?
장난치지 마. 너처럼 보수적인 애가?
니 성격에 퇴사할 리가 없는데?
어제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에게 퇴밍아웃을 했다.
15년 가까이 나를 알고 있는 그들이기에 위와 같은 반응을 보인 것이다. 나처럼 소심하고 내성적이고 보수적인 사람이 그런 하이 리스크 선택을 할리가 없다고 생각해서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친구들 반응이 당연하다.
불과 1~2년 전만해도 나 또한 보수적인 성향이라고 생각했다. 퇴사를 꿈꿔본 적도 없고 오직 정년퇴직과 국민연금만 바라봤을 뿐이다.
그렇다면 소심하고 내성적인 나는 왜 공기업을 퇴사했을까?
먼저 친구들의 추측. 회사 일이 그렇게 힘드냐는 것이다(이때까지만 해도 나의 계획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힘드면 나 같이 내성적인 아이가 퇴사를 했냐는 뜻이다. 그렇다면 나는 진정 그런 이유로 퇴사를 했을까?
NEVER.
회사는 좋은 편이었다. 직장동료와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워라밸도 참 좋았다. 업무 난이도도 낮은 편이라고 한다. (그래도 연봉은 아쉬웠다.)
수백 대 일을 뚫고 입사한, 사람들이 선망하는 공기업을 퇴사한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 그 본질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 지인들은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해 퇴사한다고만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본질을 찾아 떠나보자.
놀이다. 오락이다. 퇴사 후 내가 하고있는 것들 말이다. 나는 이 것을 일, 그러니까 work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을정도로 나에게는 유희다. 유튜브를 하고 글을 쓰며 강의를 기획하는 등 이는 결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새벽에 일어나 세수를 하며 집 나간 정신을 탑재하고 정적이 흐르는 책상 앞에 앉아도 그저 좋다. 그럼 이런 놀이를 할 때 하나도 스트레스를 안 받을까?
당연히 받는다.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기에 받는 것이다. 이는 내가 더 성장하기 위한 욕구, 그러니까 인간으로서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스트레스 받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보자. 어렸을때 친구들과 축구를 한다. 학교 수업 시간 중 기다려지는 체육. 모두가 기대하는 수업시간이다. 그러나 막상 게임에서 패배하게 되면 울분을 가진 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때 패스를 하지 않고 슛을 때렸어야하는데'라며 스트레스의 끝에 성찰이 오기 때문에 꼭 스트레스가 나쁘다고만 볼 수 없다. 즉, 세상의 어떤 유희도 스트레스는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오늘로써 퇴사한지 8일차이다. 그러나 하나씩 내가 하고 싶은 일들, 내 머리 속에 계획하고 있던 것들이 성과가 생기니 재밌다. 사실 퇴사 전에는 겸직 금지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제한되니 재밌을 것 같다라고만 생각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다양한 곳에서 여러 제안을 받으면 내 심장이 쿵쾅쿵쾅 뛴게 느껴졌다. 설레임. 뜨거움. 이런 감정들은 단순 work에서는 느끼기 힘든 것들임에 분명하다.
누군가는 말한다. 퇴사하고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는다고. 고생한다고. 미안한 이야기지만, 고생은 커녕 그저 즐겁다.(아, 솔직히 유튜브 편집은 노가다라서 덜 즐거운 편에 속한다.). 한번 생각해보자. 내가 꿈꿔왔던게 내 마음을 훔쳤던 것들이 점점 현실화가 된다. 게임으로 비유하면 한계가 봉착해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지 못하는데 내 노력으로 한 단계 한 단계 스테이를 깨부수는 것이다. 어찌 재미가 없을 수 있을까?
즉, 일보다 지금 하는 것들이 내 마음을 더 설레이게 했기에 난 퇴사한 것이다.
내 사명은 이렇다.
자본주의에서 꿈을 잃지 않는 세상을 만듭니다.
내 명함의 한 가운데 적혀 있는 나의 사명(使命)이자, 1인 기업의 사명(社命)이다. 간단하지 않다. 쉽지 않다. 평범한 사명이 아니다. 그래서 나의 사명. 그러니까 내가 살아가는 이유. 나의 본질을 찾고자 회사를 떠났다. 누군가는 비웃을 것이다. 유튜브 구독자 좀 있다고, 책 좀 쓴다고 그럴싸한 사명을 만들었냐고. 평범한 사람이 꿈꾸기에 너무 큰 사명이 아니냐고.
글쎄. 일론 머스크는 화성 이주를, 제프 베이조스는 우주도시 건설을 꿈꾼다. 그리고 점점 현실화 되어가고 있다. 그들에 비하면 나의 꿈은 작은편이다. 그들과 나는 같은 사람이다. 놀라운 사실은 그들보다 내가 훨씬 어리다. 나와 같은 사람인 그들의 꿈은 나보다 훨씬 높다. 즉, 내 사명이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다.
그럼 회사에서 나의 사명을 다할 수 없었을까? 나는 자본주의에서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중 하나다. 부인하고 싶어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팩트다. 내 사명의 구체적인 방법 중 하나는 이렇다.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꿈이 있고 노력하는 아이들 1,000명을
경제적, 정신적으로 지지하기
그들을 경제적으로 돕기 위해서는 당연히 돈이 있어야 한다. 회사 월급. 월 200 중반대로는 어림도 없는 수준이다. 겸직이 금지 되어있기에 회사를 다니며 직장 외 소득 창출은 한계가 있다. 회사 밖은 기회. 돈 버는 기회들이 있으니 내 사명을 따라 퇴사를 선택한 것이다.
부인할 수 없다. 더 많은 부를 추구하기에 퇴사를 했다. 물론 더 많은 돈에는 퇴사 같은 리스크가 따른다. 그러나 내 계산으로는 수십 수백 번 시뮬레이션을 돌려봤을때는 퇴사하고 내 유희거리를 하는게 더 돈을 벌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기 위해 약 2.5년 동안 유튜브를 운영했고 책을 집필하며 기반을 마련한게 포인트다.
'역시 앞에서는 고상한 척 글을 썼지만 결국은 돈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난 돈의 무게를 부정하고 싶지 않다. '밥이냐 존재냐'를 논할때 당연히 밥이 먼저다라고 이야기한다. 내 배가 든든하고 등이 따스워야 한다. 나의 가족들이 풍족해야 한다. 그래야 내 사명을 흔들림 없이 실현할 수 있다. 가족들은 궁핍한데 사회에 기여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그냥 존경심을 충족하고자 하는 행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경제적 자유를 찾아야 내 사명도 굳건하게 지킬 수 있는 것이다.
2022년에 못해도 연봉 1억 원을 넘을 것이다. 내 계획대로라면 충분히 달성할만한 목표다. 직장 소득만으로 내 사명을 실현할 수 없기에, 직장을 다니며 직장 외 소득을 늘릴 수 없기에 퇴사를 선택한 것이다.
덧, 내가 퇴사한 이유는 광야에서 생존할 만한 기반이 갖춰져 있었으니 오해하지 말아달라.
퇴사 후 지금 이 시점, 퇴사한 진짜 이유를 돌이켜봤다. 지인들에게는 퇴사 이유를 '내 일을 하고 싶어서'라고 간단히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
덧붙여 나의 성격은 보수적에서 진취적으로 변하였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더 넓은 세상을 알게 되었기 때문. 지금으로서는 매일 매일이 즐겁고 기대된다. 한달, 1년 뒤 내가 어떻게 변해있을지 궁금하다. 하나의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며 글의 마침표를 찍겠다.
대문에서 그는 나를 가로막으며 물었다.
"어딜 가십니까, 주인어른."
"모른다."
내가 대답했다.
"그냥 여기를 떠난다. 그냥 여기를 떠난다. 그냥 여기를 떠나 내처 간다. 그래야 나의 목표에 다다를 수 있으니라."
"그렇다면 나리는 목표를 알고 계시는 것이지요?"
그가 물었다.
"그렇다."
내가 대답했다.
"내가 여기를 떠난다고 하지 않았느냐? 떠남이 나의 목표이니라."
"주인어른께서는 양식도 준비하지 않으셨는데요."
그가 말했다.
"나에게는 그따위 것은 필요 없다."
내가 말했다.
"여행이 워낙 길을터이니 도중에 무얼 얻지 못하면 나는 결국 굶어 죽고 말 것이다. 양식을 마련해 가봐야 양식이 이 몸을 구하지는 못하지. 실로 다행스러운 것은 이야말로 다시없는 정말 괴장한 여행이라는 것이다."
- 프란치 카프카, <돌연한 출발>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