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진단을 받은 다음 날부터 몸이 이상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속이 울렁울렁, 메슥거린다. 뭐지? 화장실에 달려가 변기통을 붙잡고 헛구역질을 해댔다.
화장실에서 나온 나는 남편에게 달려가 말했다.
"오빠! 나 위에 전이된 것 같아!"
이상하게 하루 종일 뇨의가 느껴지지 않는다. 화장실 안 간 지 한참 됐는데.... 남편에게 다시 말했다.
"오빠! 나 방광에 전이됐나 봐! 방광에 느낌이 없어"
갑자기 머리가 심하게 아파온다. 두통이 이렇게 심했던 적이 없는데 깨질 것 같이 아프다.
'나... 뇌까지 전이된 건가...'
하루 종일 거실에 앉아 생각하는 거라곤 세상 모든 걱정과 내 몸 어딘가에 있을 암세포들뿐.
물만 먹어도 구토하는 나를 보며 남편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증상 놀이 해? TV를 보든가 책을 보든가 뭐라도 좀 해~ 누가 보면 다음 달에 죽는 줄 알겠다... 자꾸 그런 생각하니까 몸이 따라가는 거잖아. 그만 좀 생각해."
단지 '암세포가 나왔다'라는 말만 들었다.
암세포가 어디까지 침투되어 있는지 다른 장기의 상태가 어떤지, 몇 기인지 그런 것은 전혀 알 수 없었다.
내가 들은 것은 "보통은 자궁경부에 생기는 암세포인데 나오기는 자궁내막 쪽에서 나왔어요. 이게 자궁경부암인지 자궁내막암인지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암세포 종류가 많은데... 좋은 세포는 아니에요"였다.
그저 암세포. 암세포가 내 몸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 들었을 뿐 다른 정보는 전혀 없었다. 내 몸의 정확한 상태는 앞으로 있을 정밀검사를 통해서나 알게 될 일이었다.
그런데도 내 몸은, 마치 온몸에 전이라도 된 듯이 반응하고 있었다. 온몸의 세포들이 나도 아프다고 비명을 질렀다.
성격이 차분한 남편은 언제나 나를 진정시키려 한다. 정신을 놓고 있던 내 옆으로 슬그머니 와 말을 걸었다.
"자기야. 두 달 전에 게실염 때문에 자기 복부 CT 찍었잖아. 병원에서 이상 소견 없다고 하지 않았어? 전이가 있었으면 그때 보였겠지~"
"어... 나 두 달 전에 CT 찍었는데 암인 거 발견 못했잖아."
"워낙 작아서 안보였겠지. 그리고 자기 작년에 위내시경 하지 않았어? 재작년에는 복부랑 흉부 CT 둘 다 찍었잖아. 얼마전에 갑상선 검사도 했고. 아무 이상 없었는데 뭘 그렇게 걱정을 해?"
"..."
그랬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몸이 약해져 1년에 한 번씩은 응급실에 갔고 2년에 한 번씩은 입원을 했다. 때문에 집 근처 대학병원을 안 가본 곳이 없다.
폐결핵, 폐렴, 게실염, 위경련 등으로 병명은 매번 달랐지만 진단을 하기 위한 검사는 대부분 비슷했다.
CT, 피검사, 내시경, 초음파 등등.
그렇게 매년 검사를 받아왔고, 암 진단 두 달 전에는 복부 CT와 갑상선 검사도 했다.
'이 정도면.. 설마. 전이가 되기도 전에 어딘가에서 걸렸겠지. 이렇게 검사를 하는데... 그랬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물 한 모금이 목구멍으로 편하게 넘어갔다.
아. 이런 거였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게.
난 역시 영혼이 강한 사람이라며 스스로를 대견해 할 때쯤... 다시 깨달았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물 한 컵을 다 들이켜기도 전, 이내 머릿속은 두려움으로 차올랐다. 그리고 허상 일지 모르는 증상들이 다시 나타났다.
'그럼에도 난 암환자가 되었네.' 라는 생각과 함께.
생각이 몸을 지배한다던데.
내 몸은 언제까지 머리에 끌려다니게 될까. 과연 나는 두려운 생각을 멈출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을 고쳐먹고 고쳐먹어도 불안은 끊임없이 쫓아왔고 나는 계속 부탁했다. 내 머리에게.
머리야.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마.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아무 명령도 내리지 마.
그냥 좀 쉬자. 아무것도 하지 말고...